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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설치 작가를 만나다]양쿠라 작가 “용산참사 등 잊혀가는 사건들 돌아보니…”

작품 통해 무덤덤해지고 획일화되는 문제의식을 꼬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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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2호 김대희⁄ 2012.04.30 14:38:23

도시가 유지되기 위해 끊임없이 일어나는 불편한 일 등 오늘날 도시를 다루는 미술 작가들은 필연적으로 삶의 조건과 마주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일상 사태에 대해 분석하거나 근심하거나 집요하게 기록하고 때론 저항하는 것이 미술의 주요 테마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그동안 예술가들은 수많은 작업을 하면서 끊임없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 중에는 삶과 현실과 싸우는 작가도 있었지만, 타협하는 작가도 있었다. ‘현실인과 창작인 사이의 간극’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예술가들의 고민이 새로운 해법과 지향점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최근 사회 속 현상들을 주제로 삼아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구축하는 예술가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을 만나 동기나 목적 그리고 진행 방향을 들어본다. 2007년 당시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환경적 재앙을 불러온 서해 기름 유출 사건, 2009년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서해 연평도 포격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공사의 문제점 등 정말로 많은 사건과 사고가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발생 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사건은 잊혀가고 있고, 유사한 문제가 또 터질 가능성은 상존한다. 우리의 삶은 이처럼 커다란 사건부터 일상생활 속에서 스쳐지나가는 골목길의 담벼락과 돌멩이, 잡초 하나에까지 연관돼 있다. 당장 나에게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슴 아픈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인간이면서, 또한 인간들에 의해 피해를 보는 사물과 생명체들도 있다. 빠른 도시화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와 자연재해도 그 중 하나다. 사회적인 이슈나 사건은 물론 일상 속 작은 환경, 생명체 하나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양쿠라 작가를 서울 연희동 CNB갤러리에서 만났다. 그는 전하려는 메시지는 하나지만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하나는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는 것으로, 일상 속의 사물이든 생명체든 모든 것이 작업 소재가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설치작업으로, 현재 일어나는 어떠한 상황에 맞춰 텍스트, 영상, 사진 등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법이다.

“일상 속에서 찾는 작업은 ‘워킹 온 더 스트릿’이라는 프로젝트로, 걸어 다니면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나 무심히 그냥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수집하는 겁니다. 사진으로 촬영하기 때문에 항상 카메라를 지니고 다녀요. 이미지를 수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려요. 저에겐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작업에 쓰이는 오브제들이죠. 이런 것들은 사실 만들어지는 건 아니고 인간이 만든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들이에요. 작은 환경과 생명체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해요.” 길을 걸으며 랜덤으로 만나는 스토리들 길을 걸으며 이미지를 찾는 그는 일부러 모르는 길이나 안 가본 길, 골목길 등을 골라서 다닌다. 차는 절대 갖고 다니지 않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이동한다. 그가 길에서 찾는 이미지들은 어떤 것일까? 그의 작품 제목은 ‘바다표범’ ‘궁녀’ ‘백로’ ‘짚신벌레’ ‘코알라’ 등으로 직접적인 이름을 알려준다. 우리가 길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이름도 있지만, 모두 그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담벼락에 긁혀진 모양, 도로 위 차선이 벗겨지거나, 길에 페인트가 흘러내린 형상 등으로 자연스럽게 생성된 모습이지만, 그에게는 이런 것들이 제목을 달면서 형상이 된다. “조소를 전공했는데 10년 동안 학교를 다녔어요. 중간에 휴학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말이죠. 진로를 고민하면서 내가 잘 하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문득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그로 인한 이미지 연상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죠. 그러면서 여행을 통해 여러 가지 이미지를 수집하게 됐고 그걸 작업으로 끌어내고 있어요. 우연성과 무의식의 세계에서 시작해요. 말 그대로 일상 속에서 작업하는 ‘워킹 온 더 스트릿’은 있는 그대로의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이고, 다른 설치 작업은 의도적인 작업이 되죠.”

일반적인 야외 작업은 도시의 있는 그대로를 활용하는데, 최근 사라지고 있는 나비나 반딧불을 소재로 직접 나비를 만들어 길을 따라 여기저기 붙이고 다니기도 하고 반딧불 형상을 비추기도 하면서 무작위로 작업을 한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도심에서 죽어가고 있어요. 도심 속 모든 이미지들을 한번 생명체로 바라보면 알죠. 먹을 것을 찾아 도시로 들어온 달팽이에 대한 작업을 했는데, 잡지 속 광고에 나온 배추를 보고 실제 배추로 착각하고 먹는 것을 표현했죠. 도시에는 화려하고 다양한 이미지들이 있는데 이런 작은 생명체들은 속고 있는 거예요. 집 앞 낡은 담벼락에 마치 바다사자가 연상되는 형상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그 벽이 허물리는 위기를 보고 장비를 동원해 벽을 뜯기도 했어요. 움직일 수 있는 생명체는 변화라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체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죠. 바다사자로 보인 낡은 벽은 단지 이미지가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서 곧 철거될 위험에 놓여 있어 그를 구조하고자 했어요. 바다사자를 갤러리로 옮겨와 전시도 했고 지금은 작업실에서 바다사자를 키우고 있어요.” ‘워킹 온 더 스트릿’과 달리 텍스트와 조형적인 작업으로 진행되는 또 다른 프로젝트는 사회적 이슈와 사건을 주로 다룬다. 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는데 사실 그 모든 일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는, 꼭 다뤄야 한다는 작업이 있다고 했다. 먼저 직접 현장에 가서 보고 작업으로 할지를 결정한다. 작업하려 현장에 갔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있었고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현장에 갔다가 바로 작업이 시작된 경우도 있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답답한 마음에 작업을 했다.

“재개발 지역을 간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여러 가지를 느꼈어요. 재개발로 인해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슬픔에 잠긴 사람도 있죠. 재개발이란 것이 누구에게는 행운의 기회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절망의 시기인거죠. 하나의 공간 속에 이렇듯 여러 가지 감정이 엇갈리고 있어요. 이런 현상을 하나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싶었어요. ‘WITH’라는 텍스트 작업을 했어요. 누군가의 이득을 논하기 전에 서로를 조금만 더 이해한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을 표현했죠. 여기서 중요한 점은 똑같은 상황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최소한 객관화 시키려 하는 것이죠. 작업을 표현할 때도 강하게 하고 싶지만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도록 해요. 어느 한쪽 편만을 들 수 없기 때문이죠. 은유적으로 계속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사실 조금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기도 해요.” 정해진 도구도, 대상의 제한도 없다 이 같은 설치작업에는 정해진 도구가 없다. 조소과를 전공한 덕에 도구는 가변적이라고 그는 말했다. 작업에 따라 페인팅, 영상, 설치 등 그 현상에 잘 맞으면서도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는 야외 작업뿐 아니라 갤러리에서 전시도 한다. 외부로부터 끌고 와서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방식이다. 현재 바다사자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는 방생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며, 이는 워킹 온더 스트릿의 많은 작업 중 하나의 스토리다. 이러한 하나하나의 스토리와 이미지를 풀어놓을 새로운 전시도 계획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 문제를 제시하고 무분별한 다툼과 파괴를 절제해야 함을 말하는 전시다. 무엇보다 큰 사건이 일어나도 그때뿐이고 금세 잊어버리는 현대인들의 의식을 그는 깨우려고 한다. 이런 문제들에 제동을 거는 게 예술가들의 역할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국내를 넘어 캄보디아에서도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캄보디아의 모습이 우리의 과거를 보는 듯하다고 했다. 캄보디아 초등학교에는 미술과 체육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곳에서 미술은 필요 없는 과목이고 아이들은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는 자비를 털어 그곳 아이들에게 한 달 정도 미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앞으로도 1년에 한번 정도는 이런 프로젝트를 하며 나아가 미술을 넘어 음악, 무용까지 예술의 다양함을 알리고 싶다는 바람을 그는 전했다. 그의 작업 소재는 무한정이다.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데다 사람뿐 아니라 사물에 대한 작업까지 하기 때문이다. 작업거리는 많고 어떻게 추스르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생활 속 이야기인 만큼 친근하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들고 싶다는 그는 생활 속에 스며드는 작업을 해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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