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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 역사와 시간에서 중요성을 찾는 작가 강소영릴릴

본질을 잃고 살면 내 인생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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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4호 김대희⁄ 2014.04.29 12:45:46


자신과 주변의 일상 등 현실과 경험을 통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사라진 역사와 시간성에 대해 범위를 넓히며 세상의 본질을 찾는 작업을 만들어가는 강소영릴릴 작가를 만났다. 그녀는 회화,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는데 비디오설치가 주된 작업 방식이다.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많은 전시에 참여했어요. 하지만 항상 같은 방식의 전시와 작품 활동 등에 점점 익숙해져만 가는 기분이었죠. 작가로서 열정을 원했어요. 내가 하고자 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느낀 거죠.” 초창기 작업은 그녀 자신이 여자였던 만큼 여자들과 관련된 일상 속 이야기들을 주제로 영상 작품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여자를 나타낼 수 있는 성형수술이나 핸드백 속 이미지 등을 소재로 드로잉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여기에는 패션회사 디자이너로 근무했던 경험과 영화아카데미를 다니며 습득한 기술이 크게 한몫했다. 직접 촬영에서 편집까지 모두 그녀의 손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었다. “당시 현실비판이기도 한데, 내가 겪은 경험이나 느낌을 갖고 작품을 만들었어요. 결국 나의 현실과 경험에서 작업이 나온 거죠. 기법적으로는 판화로 시작해 애니메이션으로 바뀌었는데, 작업 방식은 정해놓지 않아요. 하고자 하는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기법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회화, 설치, 영상 등 그때그때 여건에 맞춰 작업해요.”

그녀의 작업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판타지적 감성이 담긴 작품이다. 일례로 사진작업을 보면 사진 그대로가 아니라 사진에 드로잉을 한 포토드로잉 작품이다. 사진에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담은 것이다. 그렇다고 몽상적인 작품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자신이 직접 그리는 그림에서는 사진과 달리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2005년 그녀는 연변과학기술대학교에서 조선족 청년들을 가르치기 위해 연변에 잠시 체류했다. 북한의 국경지대를 산책한 후부터 나라 사이의 국경지대와 지나간 흔적들을 쫓는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처럼 작업의 범위와 주제를 넓히면서 강소영이라는 이름 뒤에 릴릴을 붙이게 됐다. “당시 연변과기대에서 청년들을 가르치는데, 밤에는 주로 민족사, 근대사 책을 보며 과거의 시간과 공간을 탐구했죠. 그곳은 정전이 잦았어요. 항상 촛불을 준비해 놓고 있어야 할 정도였죠. 그때 여러 개의 촛불을 형상화한 형태인 liilliil(릴릴)을 스튜디오 및 작가명으로 바꾸게 됐어요.” 이후 그녀는 작가지만 세상에 유익한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2006년 우연히 사막 여행을 하던 중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작업이 아닌 순수한 여행이었지만 돌아와 작업으로 이어졌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 많았어요. 사막은 처음 가봤고 경험했는데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이탈리아인 고고학자와 천문학자 부부로부터 사막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냥 넘길 수 없어 아야스칼라 사막 여행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 설치 작업을 만들었죠.”

국내로 돌아와 있던 중 포털사이트에서 남극기지에 함께 갈 예술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해 선발됐다. 한 달 동안 남극 킹조지 섬을 동행하는 프로젝트였다. 이렇게 그녀는 2006년 한 해 동안 첨예하게 대조되는 사막과 남극을 각각 경험했다. “남극 하면 빙산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데 직접 가보니 빙산보다 역사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신비로움이 있었어요. 지구에서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는 너무나 다르죠. 아직은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지만 결국 사람들이 찾아옴으로써 시끄러워지고 있습니다. 최근 지구 온난화로 빙산이 녹고 남극도 점점 더워진다는 불안감과 느낌, 감정을 작업으로 담았어요. 남극 작업은 아직 다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동안 프로젝트성 기획을 하지 못했다는 그녀는 현재 3가지 테마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첫 번째는 2009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고요한 항해’로, 동아시아 경계의 섬을 이어가는 시간여행자의 발견이다. 한반도 4개 경계의 섬, 금문도 항해를 마쳤고 앞으로는 오키나와로 이어질 예정이다. 두 번째는 2006년부터 올해까지 예정된 ‘사라져가는 풍경’으로 몽골의 남고비 사막, 남극 킹조지 섬의 얼음사막, 칼라카팍 자치공화국(현재 우즈베키스탄)의 모래사막을 거쳐 올해 가을에 북극해로의 항해를 계획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전쟁과 억압의 뒤틀린 역사를 공유하는 기억을 재조명하는 ‘지나간 세월’ 프로젝트다. 서울의 기무사(한국), 2차대전 시 초토화 됐던 도시 하노버(독일), 몰락한 응우옌 왕가의 궁인 후에의 안딘궁(베트남)을 배경으로 다룬다.

“작업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의 삶 가운데 우리의 기억에서 잊히거나 사라져가는 태초의 시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어요. 역사적으로 치열했으나 이젠 묻혀 버린 장소들을 찾아가서 직접 경험하고 이를 애니메이션, 비디오, 사운드, 장치물로 재구성하죠. 전시는 관객에게 내가 채집한 것들을 극대화해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다소 초현실적인 ‘유사 풍경공간’을 제시해요.” 프로젝트는 오랜 시간을 두고 진행하는 만큼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작업을 하기 전 준비할 게 너무나 많다고 했다.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그곳에서 작업을 담아 와야 하기에 여러 가지 서류를 준비하는 등의 사전작업도 무시 못 할 정도로 많다. 작업을 하면서 힘든 점이라면 무엇보다 언어 문제와 역사였다. 하지만 이런 문제 못지않게 촬영 장비들을 들고 이동해야 하는 점도 힘들다고 한다. 반면 작업을 통해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곳까지 오게 됐다는 생각, 세상에 깊은 관심을 갖고 다양한 역사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보람을 느낀다고도 했다. “여러 섬을 다니면서 그곳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많은 걸 배웠어요. 그중 백령도를 천안함 사건 이전과 이후에 각각 방문했는데 그곳 사람들은 우리가 걱정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어요. 너무나 태연하게 생활하면서 현실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봤죠.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고민과 불안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데, 그곳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연 속의 의연함이 느껴졌어요.”

▲사라져가는 풍경-II, 비디오설치, 젊은 모색전, 국립현대미술관, 2008.

사람들과 교감하며 이뤄지는 전시 및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는 그녀는 공간 전체를 아우르며 분위기와 시간을 바꿔주는 역할을 통해 장소와 공간은 바뀌지만 주제는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많은 역사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잘못 알고 자란 것이 아닌가 느껴요. 우리의 본질을 잃고 사는 건 아닌지. 내 인생조차도 없어져 버린 거죠. 무관심으로 가득한 우리 삶에서 화합하고 이를 통해 세상의 본질을 작업으로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잊고 살았던 시간성을 이야기하며 무엇이 중요한가를 되짚어주는 거죠. 힘든 부분이 있어도 작가가 확고한 세계를 구축해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현재 경기창작센터에 입주해 있으며 그림을 넣은 에세이집도 낼 계획이다. 그녀는 “그동안 전시로 보여주지 못한 작업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모든 프로젝트는 결국 시간의 흔적을 더듬어 가는 시간여행자이자 산책자인 나의 직접적인 경험과 우연한 마주침에서 비롯됐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라며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 김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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