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나온 전여옥 의원의 저서 ‘일본은 없다’는 정말로 대단한 히트를 친 책이다. KBS 일본 특파원 생활을 한 전 의원이 일본 사람들의 이상한 행태를 고발하면서 “이래서는 일본의 미래는 없다”고 한 이 책의 내용에 한국인은 열광했다. 숙적 일본의 미래가 없다니 일본과의 축구 시합에서만 이겨도 열광에 빠지는 한국인들이 집단-최고급 열광에 빠져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전 의원은 이 히트작에 이어 ‘일본은 없다 2(1995년)’ ‘대한민국은 있다(2002년)’ 등을 연달아 냈으니, 이 책 시리즈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분명했다. ‘일본의 미래는 없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없다’를 너무 재밌게 읽은 필자는 전 의원과 거의 동시에 도쿄 특파원 생활을 한 선배 기자에게 “정말 그러냐. 책에 나온 것처럼 정말 일본인들은 그렇게 이상한 짓들만 하며, 정말로 일본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그 전직 도쿄 특파원의 입에서는 욕이 먼저 튀어나왔다. 일본은 전혀 그런 나라가 아니고, 더욱 큰 문제는 “전 의원이 특파원 시절 일본 정부와 민간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그런 책을 쓸 수 있나. 정말 그러면 안 된다”는 항의 섞인 대답이었다. 공전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면서 전 의원은 당시 일본에 대한 속깊은 정보를 많이 주기도 했지만, 이 동료 도쿄 특파원의 증언대로 ‘어느 한 쪽만을 지나치게 부각시켰다’는 혐의를 받을 수도 있다. 듣고 싶은 것을 들으면 당장 기분은 좋지만 결과는 참담할 수 있다. 전 의원의 책을 읽고 정말 일본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 1993년 상황에서 일본과의 모든 거래를 끊은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은 아마 손해를 보기 쉬웠을 것이다. 책에서는 분명 전혀 미래가 없다고 했던 나라가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사대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는 한국인은 시시때때로 “외세를 좀 이용해 볼까”라는 유혹을 받기 쉽다. 그래서 해외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현지 사정을 전달할 때 왜곡시킬 가능성도 높다. 자신의 목적에 따라 특정 국가를 현실과는 다르게 아주 아름답게(대개 미국에 대해), 반대로 아주 추악하게(대개 일본 등 주변국에 대해) 묘사할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는 말이다. 외국에 대해서는 실체를 최대한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지, 입맛에 맞는 내용만 골라 소개하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 될 수 있다. 90년대 초에 ‘진짜 일본’에 어두웠던 한국인은 20년 뒤 현재는 일본 사정을 제대로 알고 있나? 우리는 아직도 그냥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고 있지는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