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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석원 작가, 두텁게 바른 물감은 마르지 않는 생명력

100여 폭포 유람하며 소리까지 캔버스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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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5호 김대희⁄ 2012.05.21 10:50:37

봄은 온데간데없고 벌써 여름이 찾아온 듯 햇살이 뜨거운 5월. 캔버스 위로 새하얀 물줄기가 쏟아지는 장엄한 폭포가 두 눈을 사로잡는다. 마치 산 속에 서 있는 듯한 느낌으로 폭포의 시원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폭포는 산의 심장이에요. 심장이 약하게 뛰면 건강하지 않은 것처럼 폭포도 그 소리가 웅장하지 않으면 산 전체가 건강하지 않다는 거죠. 폭포의 생동감을 표현하고 싶었고 강한 붓질로 폭포의 소리까지 그리고 싶었어요.” 사석원 작가가 2010년 외국인 노동자의 메시지가 적힌 칠판에 원초적 생존의 땅 아프리카의 동물이나 유기견을 결합한 작품으로 생존과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하쿠나 마타타’ 전 이후 국내에서 2년 만에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지난 2년 반의 시간 동안 전국 100여 개의 폭포를 답사하며 명폭이 주는 감동과 기운을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인 두터운 마티에르와 동양화 붓으로 캔버스에 담았다. 한때 수묵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다가 서양회화의 기법을 도입해 동양화의 특징을 살리면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것이 사석원 작업의 정형이 됐다. 그는 팔레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동양화 전공자로서 서양화 재료를 다루는 것에 익숙지 않고 튜브의 물감을 섞지 않고 반복해서 화면 위에 올리는 작업 형태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동양화의 먹에서 볼 수 없는 색채의 변주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됐고 역동적인 붓질과 원색의 절묘한 조화는 경쾌하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한편 흐뭇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평소 만나기 힘든 ‘산중미인’ 명폭포 찾아 2년여 동안 전국 유람 절경을 이루는 대부분의 폭포는 산 속 깊이 숨어 있기 때문에 등산을 하면서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가 많아 일부러 찾아 가려면 노력과 시간이 들기 마련이다. 사석원은 평소 여행을 좋아하지만 걷기를 즐기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폭포 시리즈를 위해 장마철에 깊은 산 속까지 답사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장마철에 산을 찾는 것은 폭포의 장관을 보기 위해서다. 평소 물이 많지 않던 폭포도 이때는 산 속에 숨었던 미인이 지상으로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 등산을 싫어하는데 강원도 철원의 삼부연폭포는 길옆에 바로 있어 좋았어요. 겸재도 삼부연폭포를 그렸는데 저는 동양화적으로 그렸죠. 부벽준법(동양화에서 뾰족하고 험악한 바위의 표면이나 깎아지른 산의 입체감과 질감을 표현할 때 쓰는 방법)을 쓴 뒤 양옆의 부분에 유화의 마티에르를 줬어요. 주로 비올 때 갔기 때문에 폭포에서 스케치를 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서 앨범으로 만들어 보관했어요. 장백폭포를 답사했을 때는 마침 30년 만에 홍수가 나 집들이 떠내려가는 피해가 있었지만 폭포는 제대로 봤죠.” 그의 말처럼 폭포의 장엄한 풍경이나 그 울림을 들으려면 비가 일정 이상 내려야 한다. 이 때문에 깊은 산 속 폭포를 찾아가는 길은 더욱 험난해진다. 그가 험난한 길을 밟아 폭포의 웅장함을 느끼려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을 만나는 두근거림 때문이었다. 산 속에 존재하는 호랑이, 사슴 같은 동물이나 개나리, 벚꽃, 소나무 같은 식물들 그리고 거대 암석 등으로 표현되는 역동적인 두근거림은 산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는 폭포가 주는 인상에 따라 기법을 달리했다. 에너지를 표현하고 싶은 폭포, 색을 표현하고 싶은 폭포 등 저마다 매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충복 제천 용담폭포에는 싸움소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으며 계룡산 은선폭포는 사실적으로, 경상남도 밀양 호박소는 추상적인 기법으로 표현했다. 여름과 봄의 구룡폭포를 파란 폭포와 노란 폭포로 다르게 표현하기도 했다. 파란 부분과 노란 부분은 화강암으로 돼 있지만 감정을 넣어 색으로 표현했다. 그는 물감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캔버스를 눕혀 놓고 수십 개의 물감을 짠 뒤 붓질을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 때문에 작업실에는 빈 튜브가 산처럼 쌓여 있다. 정말 두텁게 발라진 물감이 그의 작업을 짐작케 한다. 그는 한번 붓을 잡으면 폭발하는 에너지를 뿜으며 즉흥적으로 완성을 한다. 작업에 몰두하면 밤이 새는 것도 모를 정도로 집중한다.

물감을 뿌리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그는 “물감 튜브를 들고 그대로 캔버스에 뿌리기도 하는데 한 번에 한 통이 그대로 다 빠져나가요. 세게 하지 않으면 물감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하죠. 동양화는 흰색을 표현할 때 먹을 쓰지 않고 비우는 방법을 쓰지만, 구룡폭포는 서양화이기에 ‘폭포의 소리’를 그리고 싶어서 흰색을 더욱 두껍게 사용했죠. 동양화 붓과 서양화 붓을 섞어서 그렸어요. 선적인 요소를 강조할 때는 둥근 동양화 붓을 쓰죠”라고 설명했다. 신작의 공통된 배경인 폭포는 조선시대 사대부 풍류문화의 주요 장소이다. 그림을 업으로 하지만 사람 만나기를 즐기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며 분위기에 취하는 한량이기도 한 사석원에게 풍류는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편으로 그의 그림에는 형태와 색의 과장, 해학적인 모습들이 다분히 담겨 있어 민화적인 색을 띤다. 국내의 수많은 폭포 모두가 멋진 모습이지만 대청봉 공룡능선이 시작되는 초입의 천불동계곡 맨 꼭대기에 있는 오련폭포는 꼭 권하고 싶은 폭포라고 말하는 그의 다음 작품은 무엇이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김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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