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언급해 화제가 된 ‘박근혜의 7인회’ 면면을 보면, 7명 전원이 서울대법대-육사 출신이고,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이 둘이다. 그리고 모두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이른바 '개발독재' 시대에 한국의 최고 지도층을 형성했던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의 ‘수구꼴통 7인회’ 비난에 대해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 측은 “당의 원로 모임일 뿐이고, 초청받아 한두 번 오찬에 동참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7인회의 좌장 격이라는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은 “원로는 다 수구꼴통이냐”며 반발했다. 이런 해명과 반박이 다 맞을 수 있다. 7인회라는 모임이 존재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6인회와 비교한다면 여러 차이점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선 6인회는 연령적으로 동년배들이다. 경북 포항 중심의 1935~1945년생 6명이 뭉쳐 대통령을 만든 뒤 만들기 위해 뭉쳤고, 킹메이커 역할을 한 뒤 권력을 누렸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7인회는 박근혜 전 위원장보다 14~28살이나 많은 사람들이다. 출신 지역도 경남이 세 명이나 되지만 서울, 충청, 제주 등도 있어 ‘전국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집권 뒤 권력 분점’이라는 성격을 가진 6인회와 비교한다면 7인회는 이런 성격보다는 ‘원로 자문 그룹’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7인회 멤버 중에는 ‘대통령 박근혜’를 통해 새롭게 권력을 누리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이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한국에서 6인회와 7인회는 상당히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누릴 만큼 누린 7인회 멤버는 한국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나 7인회를 묶어주는 강력한 끈은 학벌과 경력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 넷에다 육사 출신 셋이다. 그리고 그 중 2명은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이다. 박정희 시대 이후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 이른바 ‘개발독재’ 시대에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최상층 엘리트들의 모임임을 알 수 있다. 7인회 멤버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조국을 위한 충정’에서 모임을 만들고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조언을 해 주고 싶을 수도 있다. ‘좋았던 그때’인 개발독재 시대로 한국을 되돌려, 초고속 경제성장을 다시 한 번 일궈내고, 전국민이 잘 사는 한 가족 같은 한민족 시대를 열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747 경제공약의 실패에서 드러났듯, 더 이상 한국은 초고속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나라도, 권력 엘리트의 강압적-계도적 리더십으로 전국민이 새마을운동 하듯 똘똘 뭉쳐 일치단결 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1997년의 ‘IMF 위기’가 한국을 바꿔도 너무 크게 바꿔 놓았다. 박근혜 전 위원장과 7인회와의 관계가 박근혜 측근의 표현대로 “한두 번 오찬에 참가한 정도”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박지원 비대위원장의 지적대로 '이명박 6인회가 같은 킹메이커 모임'이라면 박 전 위원장의 대권 도전과 관련해 심각한 장애요인이 될 수도 있다. 개발독재 시대로의 회귀는 물리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그런 시도를 한다면 국민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