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콜라, 커피…. 식음료는 사람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필수품이다. 일상적인 제품이라는 것은 오히려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까다롭다는 얘기도 된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제품들이 ‘충성 고객’을 확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대신 고객의 입맛을 확고하게 굳힌 경우엔 이탈 고객도 잘 없다는 것이 식품업계의 특징이다. 농심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라면시장과 미국 패스트푸드의 제왕 맥도날드, 콜라의 대명사 코카콜라 등이 그 예다. 이 때문인지 식품업계에서는 좀처럼 넘기 힘든 1등 기업의 벽을 광고를 통해서라도 깎아내리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맥도날드 vs 버거킹, ‘패스트푸드 왕좌’ 두고 티격태격 맥도날드는 수년 전부터 버거킹의 디스(‘깎아내리기’ 의미의 유행어) 대상이었다. 명색이 ‘왕(King)’이라는 이름까지 내걸고 패스트푸드 왕좌를 노리고 있는 버거킹이지만, 여전히 패스트푸드 업계의 1등은 맥도날드다.
버거킹의 강점은 맛과 크기에 승부를 거는 ‘버거’ 그 자체에 있다. 소비자들에게 각인된 버거킹의 광고 슬로건 또한 “맛있잖아, 버거킹”이다. 유독 고기가 많이 들어가고 사이즈가 크다는 것은 소비자들 또한 이미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버거킹은 이를 최대 라이벌인 맥도날드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더욱 강조했다. 한 광고에서 버거킹은 맥도날드의 심벌인 ‘M’ 마크를 ‘미디엄(midium)’ 사이즈에 비유하고, 자사의 햄버거 패티를 XXL에 비유하는 광고를 제작했다. 광고 카피는 ‘75% 더 많은 고기(75% more meat)'였다. 중짜밖에 안 되는 맥도날드 햄버거에 비교한다면 버거킹의 특특대짜 패티가 훨씬 양질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버거킹은 맥도날드의 상징 캐릭터인 ‘로날드’가 버거킹을 사먹는 장면을 연출한 광고를 제작하기도 했다. 버거킹이 너무 맛있어 라이벌 업체의 상징마저 반해버렸다는 메시지다. 버거킹 광고 중에서는 맥도날드의 ‘M’ 마크를 성난 사람의 입으로 묘사한 지면 광고도 있다. ‘맥도날드는 불만족스럽다’는 이미지다. 맥도날드의 상표명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맥도날드를 깎아내리는 메시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지면광고다. 업계의 절대강자 맥도날드도 이런 도전을 좌시할 리 없다. 맥도날드가 강점으로 내세운 것은 햄버거가 아닌 감자튀김이다. 광고의 내용은 이렇다. 한 꼬마아이가 맥도날드 감자튀김을 사들고 오자, 또래 친구들이 몰려들어 다 뺏어 먹어 버린다. 감자튀김을 사는 족족 친구들에게 뺏겨 버린 이 꼬마는 마지막에 묘안을 하나 낸다. 버거킹 포장지로 가린 채 맥도날드 감자튀김을 먹는 것. 버거킹 감자튀김은 아무도 뺏어 먹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그야말로 절묘한 ‘디스’다. “코카보다 펩시가 맛있어”…2등의 끝없는 어필 펩시와 코카콜라의 경우도 비슷한 맥락이다. 특히 양사의 광고 열전은 펩시의 거의 일방적인 전력투구라고 봐도 크게 무리는 없다. 펩시는 그간 ‘코카콜라보다 펩시가 더 인기있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던져왔다.
꼬마 아이가 자판기에서 코카콜라를 두 캔 뽑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펩시의 영상광고가 대표적이다. ‘펩시 광고에 왜 코카콜라를 사는 모습이 나오지’라는 의문은 금방 풀린다. 아이는 마시기 위해 코카콜라를 뽑은 게 아니었다. 너무 높은 곳에 위치한 펩시 버튼을 누르기 위해 계단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아이는 한 캔에 한발씩 올려놓고 펩시 버튼을 누른다. 결국 아이가 뽑아간 것은 펩시콜라 한 캔. 이 광고에서 코카콜라는 펩시를 마시게 해주는 도구에 불과했다. ‘베컴의 굴욕’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펩시의 TV광고도 유명하다.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출연했다. 이 광고에서 경기를 끝내고 들어오던 베컴은 펩시를 들고 있는 한 아이를 발견한다. 목이 말랐던 베컴은 아이에게 펩시를 건네받아 벌컥 벌컥 마셔버린다. 클로즈업된 아이의 얼굴은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콜라를 다 마신 베컴은 펩시 캔을 다시 아이에게 돌려주고 걸어간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펩시를 바라보던 아이는 베컴을 붙잡고 윗옷을 벗어주면 안 되냐고 말한다. 베컴은 흐뭇한 표정으로 흔쾌하게 옷을 벗는다. 이때 광고의 반전이 드러난다. 아이가 베컴의 유니폼으로 그의 입이 닿았던 캔 입구를 닦아낸다. 축구 영웅의 유니폼을 간직하려던 게 아니라, 캔을 닦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이다. 어이없다는 듯한 베컴의 표정은 유니폼을 돌려받으며 금세 허탈한 미소로 바뀐다. 그만큼 아이에게는 펩시가 더 소중하다는 메시지다.
사실 이 광고는 1982년 방영된 코카콜라 광고를 패러디한 내용이다. 코카콜라 광고도 경기를 마치고 들어온 선수가 한 아이와 마주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펩시 광고에서는 베컴이 먼저 콜라를 달라고 했다면, 코카콜라 광고에서는 역으로 아이가 선수에게 음료를 마실 것을 권한다. 아이의 권유에 선수는 여러 번 거절하지만, “코카콜라예요”라는 아이의 말에 ‘마지못해’ 콜라를 건네받는다. 그런데 내켜하지 않던 처음과는 달리, 코카콜라를 맛본 그는 그 자리에서 한 병을 다 마셔버린다. 만족스런 미소를 짓던 선수는 어깨에 걸쳐놓은 자신의 유니폼을 아이에게 던져준다. ‘원샷’ 할 정도로 맛있는 콜라를 맛보게 해준 보답이었다. 좋아하던 선수의 유니폼을 갖게 된 아이는 뛸 듯이 기뻐한다. 베컴의 유니폼으로 캔을 닦던 펩시 광고의 아이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코카콜라 직원이 남의 눈을 피해 펩시를 먹는다는 내용의 광고 또한 웃음을 자아냈다. 이 광고에서 코카콜라 직원은 주위의 눈치를 보며 펩시를 코카콜라 캔에 옮겨 담는다. 직원이 입은 작업복엔 코카콜라 로고가 선명하다.
또 다른 지면광고에서 펩시는 자사 자판기 앞의 카펫만 수없는 발길로 잔뜩 닳아 있는 장면을 보여줬다. 반면 코카콜라 자판기 앞의 카펫은 흔적 없이 깨끗하다. 비슷한 장면으로 폭설이 내린 후의 자판기 모습도 있다. 이 광고에서 펩시 자판기 앞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눈이 다 녹아 있는 데 반해, 코카콜라 앞은 쌓인 눈이 그대로다. 수십 년간 펩시의 코카에 대한 네거티브 광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이런 펩시의 전략에 “귀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네거티브가 아니라 위트를 섞은 덕이다. 국내 디스광고는 너무 무거워? 반면 올 상반기 국내 식품업계에서 진행된 디스 광고는 다소 무거운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게 믹스커피의 프림을 유유로 하느냐, 카제인나트륨으로 하느냐에 대한 남양유업과 동서식품의 광고 대결이다. 올 초 동서식품은 ‘맥심 화이트골드’를 출시했다. 지난해 남양유업이 우유를 넣었다며 내놓은 ‘프렌치카페 카페믹스’에 대한 동서식품의 카운터 펀치였다.
동서식품이 자사와 똑같은 콘셉트의 ‘우유 포함’ 제품을 내놓자, 남양유업은 우회적인 비판을 담은 일간지 광고를 지난 1월 내보냈다. “몇 십 년을 꼼짝 않던 커피회사가, 프림에 우유를 넣는 남양의 신기술을 따라한다고 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1등 업체의 따라하기를 꼬집은 것이었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커피믹스를 출시하면서 “커피는 좋지만 프림은 걱정된다” “화학적 합성품인 카제인나트륨을 뺐다”는 광고 메시지를 내세웠다. 사실상 인체에 전혀 해롭지 않은 카제인나트륨을 위험한 성분인 것처럼 강조한 남양유업의 광고 전략은 커피믹스 업계의 영원한 1위로 꼽혔던 동서식품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두 회사의 광고전에 일부 소비자들은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상대 기업을 마냥 깎아내리기만 하는 모습이 싫다는 반응이다. 이른바 디스 광고뿐 아니라 미국 광고의 특징은 유머를 잔뜩 섞는다는 점이다. 방송 중간에 삽입되는 광고는 기본적으로 짜증 섞인 반응을 초래하기 쉽기 때문에 최대한 재미있는 영상, 유머러스한 내용으로 부담을 줄여주는 노력이다. 그렇기에 ‘심각한 디스’를 해도 표면적으로는 귀엽고 우스운 내용인 경우가 많다. ‘심각한 내용을 웃으면서 말하기’가 디스 광고의 요체인 셈이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디스 광고는 늘어날 수 있다. 광고주가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인상을 주려면 한국의 디스 광고도 좀 더 명랑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정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