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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고민, ‘밀당 레슬링’으로 풀어볼까

새로운 청소년극을 시도한 ‘레슬링 시즌’의 서충식·손진책·최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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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7호 김금영⁄ 2012.06.04 11:31:13

요즘 청소년들의 여가 시간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거의 지배하고 있다. 밖에 나가 뛰놀기보다는 앉아서 키보드와 터치패드를 두드리기에 바쁘다.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세계의 다양한 정보를 접하니 세상이 넓어진 것 같지만 사실 집구석에서 전자기기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실질적인 소통이 줄어든 세상에서 청소년들은 고민을 토로하기보다는 혼자 안고 갈 때가 많아졌다. 지난해와 올해 들어 유독 불거진 청소년들의 연이은 자살과 왕따, 학교 폭력의 실태는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런 청소년들의 고민을 활동적인 레슬링을 통해 풀어보는 연극 ‘레슬링 시즌’이 서울 서계동 (재)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5월 31일부터 6월 10일까지 공연된다. 국립극단의 두 번째 청소년극 ‘레슬링 시즌’은 왕따, 성 정체성, 동성애, 폭력 등 청소년들이 부딪히는 민감한 문제들을 레슬링으로 형상화해 보여주는 공연이다. 원작은 작가 로리 브룩스의 작품으로, 2000년 케네디센터 뉴비전 프로젝트에서 처음 공연됐다. 국내에서 초연되는 이번 공연은 한국 청소년들의 상황에 맞게 각색됐다. 극 중 레슬링부 절친인 민기와 강석은 우정을 쌓는다. 하지만 같은 레슬링부 영필과 기태는 그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일부러 악의적인 소문을 낸다. 소문에 괴로워하는 민기에게 같은 반 친구 소진은 소문을 덮을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지만 또다시 불거진 새로운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레슬링으로 표현하는지, 극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서충식 연출과 손진책 예술감독, 최영애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소장의 말을 들어봤다. - 이번 공연을 기획한 이유와 공연의 특징은? 손진책 감독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극은 중요하다. 요즘처럼 청소년 문제가 이슈가 되는 시점에 심성을 기르는 소재로서 연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청소년들의 고민을 공유하고자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 지난해엔 청소년극 ‘소년이 그랬다’를 선보였는데 현재 서울 공연이 끝나고 호평을 받아 전국 순회공연 중이다. ‘레슬링 시즌’은 두 번째 청소년극으로 서울 공연이 끝나면 전국 순회공연 또한 검토할 계획이다.” 최영애 소장 “지난해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를 조명한 ‘소년이 그랬다’를 선보였다면, 이번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자체적으로 자신들의 사회를 조직하고 그 안에서 개인이 어떻게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청소년들이 어른이나 사회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가운데 나름대로 견고한 사회조직으로 나가려는 단계를 볼 수 있다.” 서충식 연출 “일단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소년들이 흥미롭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감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작품 구조 자체는 딱 결론이 나와 있진 않다. 청소년 시기에 겪었거나 또는 성인이 된 지금도 부딪혀야 하는 소문, 사랑, 좌절, 정체성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 이어진다. 단순한 교훈극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공연 뒤 관객과 대화를 하는 포럼이 이어지는 형식으로 꾸렸다. 또한 이번 공연의 큰 특징은 레슬링 기술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배우들에게 ‘연기는 서툴러도 좋지만 레슬링 기술은 완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웃음). 2개월 동안 배우들이 정말 땀 흘리며 열심히 연습했다.”

- 극 중 레슬링을 하는 과정에서 다소 섹슈얼한 부분이 연출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학생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서 연출 “안 그래도 미리 중고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리허설을 했다. 반응을 보니 중학생들은 어느 부분에서는 표현이 과하다고 했다. 그런데 고등학생들은 넉넉한 마음과 표정으로 좀 약하다고 표현하기도 하더라(일동 웃음). 그래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극 중 생략한 부분도 있다. 청소년들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더 어렵다. 그들의 언어와 몸짓에 맞춰 이해하기 쉽도록 많은 조율을 거쳤다.” 손 감독 “청소년극을 만들기가 쉬워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매일 드라마를 보고 미디어에 익숙해진 청소년들은 생각보다 극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다. 그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극을 만들면 초등학생에게도 유치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어떻게 학생들의 실생활 문제를 진솔하게 꺼내고, 상의해볼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 원작이랑 비교할 때 차별화된 부분은? 최 소장 “미국에서는 레슬링 부분이 자연스럽다. 레슬링 시즌이라는 고유명사가 있을 정도로 미국 아이들에겐 레슬링이 활성화돼 있다. 그런데 한국에선 그렇지 않다. 중고등학교 때 국영수 위주로 수업을 받고 밤늦게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며 공부하기 바쁘고 체육 시간은 거의 없다. 레슬링을 빼면 극 자체가 성립 안 되기 때문에 레슬링을 극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다. 그래서 상징적인 의미를 강화했다. 레슬링부 학생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레슬링부가 아닌 일반 여자 학생들도 레슬링복을 입고 등장한다. 단지 레슬링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과 입시에 대한 비유로서 레슬링을 연극적 장치로 적극 활용했다. 그 외에는 작가가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말투, 외계어라 불리는 빠른 속도감의 축약어들을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게끔 대사를 많이 바꿨다.”

- 학교 폭력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입시 문제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서 연출 “입시 문제 또한 담겨 있다. 청소년들이 가진 문제는 워낙 다양하다. 나도 고2 아들이 있어 늘 지켜보며 고민들을 살펴보는데 입시와 왕따, 폭력 문제가 많더라. 이번 극 중 입시라는 단어 자체는 많이 나오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배제한 것은 아니다. 극 중 민기는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체중감량을 해 체급까지 낮추고, 수학 공부도 강석에게 도와 달라 한다. 그런 모습에서 입시에 대한 학생들의 열망이 그려진다. 어떤 하나의 문제만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고 하루하루 일어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다양하게 담고자 했다.” 손 감독 “입시 문제도 대단히 중요한 이슈다. 하지만 고민을 백화점 식으로 이것저것 모두 나열할 수는 없기에 왕따와 학교 폭력, 소문 등으로 큰 틀을 잡고 진행했다. 다음 청소년극에서는 입시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룰 수도 있을 것 같다. 국립 어린이 청소년 극단을 창설해 청소년극을 만드는 데 더 힘쓰려 한다.” 누군가를 따돌리고, 왕따의 대상도 되기도 하고, 소문을 만들기고, 소문의 대상도 되는 학교폭력의 일상이 ‘레슬링 시즌’의 레슬링판 위에 거침없이 까발려진다. 자신을 괴롭히는 소문을 한판승으로 뒤엎어버리는 찬스를 엿볼 수 있는 연극이다. [현장 스케치]“안다고 생각하지만 넌 나 몰라” 프로급 레슬링 향연에 녹아든 대사들 심판을 제외한 모든 배우가 레슬링복을 입고 등장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레슬링 선수들의 땀과 결실, 우정을 그리는 전형적인 스포츠극인가 했더니 고등학생들 이야기란다. 5월 16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스튜디오 하나에서 30분 시연된 청소년극 ‘레슬링 시즌’의 현장을 확인해봤다. 레슬링부 절친인 민기와 강석은 레슬링 연습에 한창이다. 특히 대학을 가기 위해 우승이 목표인 민기는 한 체급을 낮추는 무리한 체중감량을 한다. 평소 강석과 민기의 사이가 괜히 꼴 보기 싫었던 같은 레슬링부의 영필과 기태는 “강석과 민기가 성적인 접촉을 하는 관계”라는 헛소문을 퍼뜨린다. 헛소문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민기에게 같은 반 친구 소진은 여자 친구를 만들어 그 소문을 덮으라 하지만 소문은 또 다른 소문을 낳으면서 점점 커져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소문이 퍼지는 과정이다. 소문을 퍼뜨리는 아이들은 죄책감이 없다. 소문에 휩싸이는 당사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소문이 사실인지 여부는 안중에도 없고 깔깔 웃는다. 그저 장난일 뿐이다. 하지만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그들의 철없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겐 얼마나 무서운 무기가 되는지 극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극의 큰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넌 나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넌 나를 몰라”라는 대사는 배우들의 레슬링 동작과 어우러지면서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강조된다. ‘레슬링 시즌’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화려한 레슬링 기술들이 극 내내 등장한다. 고등학생들이 데이트를 하는 장면에서도 서로 밀고 당기는(이른바 ‘밀당’) 등 연애 기술이 레슬링 기술로 형상화돼 펼쳐져 독특한 느낌과 웃음을 자아낸다. 서충식 연출은 연기보다 웨이트 트레이닝에 신경 쓰라고 할 정도로 배우들에게 레슬링 트레이닝을 강조했다는데, 그 결과가 고스란히 무대 위에 드러난다. 민기 역을 맡은 배우 안병찬은 “레슬링은 정말 힘든 운동이다. 잦은 부상으로 고생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소문을 듣고 민기와 강석을 놀리는 같은 반 친구 혜리 역의 하지은은 “여자 배우로서 레슬링복을 소화하는 게 가장 부담스러워 다이어트 시도도 했다”며 “힘들었지만 서로 몸을 많이 부딪치다 보니 팀원들끼리 빨리 친해졌다. 앞으로 레슬링 경기에 계속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다”고 에피소드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배우들의 열연 끝에 탄생한 프로 못지않은 레슬링 실력은 지켜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전막 시연이 아닌 30여분 펼쳐진 하이라이트 시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본 공연에선 연극을 보고 난 뒤 소감을 자유롭게 나누고, 직접 한 장면을 시연해보는 열린 포럼도 이어진다고 하니, 극을 통해 소통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바르고 올바른 모습만 보여주면서 훈계하지 않고, 학교폭력과 왕따 등의 문제를 피하지 않고 거침없이 보여주면서 메시지를 스스로 찾아가게끔 하는 게 ‘레슬링 시즌’의 방식이다. 이를 청소년들이 유치하다고 느낄지, 아니면 깊이 공감할지는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6월 10일까지 확인할 수 있다.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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