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의 연기 변신이 충무로에서 활발하다. 최근 개봉한 ‘후궁: 제왕의 첩’에서 조여정이 파격적인 노출 연기로 점차 내면의 변화를 보이는 후궁을 연기하고, ‘돈의 맛’에서 관록의 배우로서 새로운 도전을 한 윤여정이 돈과 젊은 남성을 탐닉하는 도발적인 모습으로 변신했다. 평소 점잖아 보였던 배우들이 선보인 대범한 모습은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번엔 반대로 평소 아주 호탕하고 당당해보였던 여배우 고현정이 소심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찾는다. 또한 이런 고현정과 로맨스를 이루는 배우가 있으니, 꽃미남 배우도 아닌 개성파 유해진이다. 평소 사랑 앞에서 한없이 수줍거나 외면 받는 역할을 맡았던 그는 화려한 액션 연기와 더불어 고현정에 대한 순애보를 불태우며 터프한 로맨틱 가이로 거듭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며 색다른 호흡을 자랑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박철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미쓰GO’에서 시작된다. 고현정은 극 중 최악의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소심한 여인 ‘천수로’로 분한다. 천수로는 수상한 수녀님의 심부름 한 번에 500억짜리 범죄에 휘말리고 어쩌다 만난 다섯 남자들 때문에 일명 ‘미쓰 고’로 불리며 인생이 뒤바뀌게 된다. 유해진은 천수로가 만나는 첫 번째 남자로, 미쓰 고를 사랑하는 스파이 ‘빨간구두’로 등장한다. 구두에 피 마를 날 없는 냉혈한이지만 속마음은 미쓰 고를 사랑하는 숫총각으로서 로맨스를 이끈다. 여기에 까칠하고 수상한 경찰 ‘성 반장(성동일 분)’, 완벽한 말더듬이로 속을 알 수 없는 ‘소 형사(고창석 분)’, 아는 거 없는 마약조직 보스 ‘사영철(이문식 분)’, 폼만 잡는 범죄조직 최대 갑부 ‘백봉남(박신양 분)’까지 미쓰 고를 둘러싼다. 개성 있는 실력파 연기 배우들이 모인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지만 최고 관심의 대상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모습을 연기하며 색다른 변신을 시도하는 고현정과 유해진이다. 6월 21일 개봉을 앞둔 ‘미쓰GO’의 박철관 감독, 배우 고현정과 유해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이 대단한 배우들을 모두 어떻게 캐스팅 했나요? 박 감독 “사실 모든 감독님들이 이 배우들과 같이 작품을 하고 싶어 하는데 저는 한 작품에 이 모든 배우들과 함께하게 돼서 영광이었습니다. 아마 이런 기회가 다시 있을지 모르겠지만 행복한 작업이었습니다.” - 영화 ‘미쓰GO’를 선택한 계기는? 고현정 “대인 기피증이란 병을 앓고 있는 캐릭터가 새로웠어요. 제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영화 속에서 경험하고 싶었지요. 또 시나리오 마지막 부분에서 심각하지 않고 유쾌하게 끝나서 좋았던 것 같아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명랑하고 경쾌한 분위기였고 그 안에서 보이는 연기의 패턴은 이전과 달랐기 때문에 선택했습니다.”
- 이번 영화에서 맡은 역할에 대해 소개하자면? 유해진 “‘빨간구두’라는 역할입니다. 원래 형사지만 조직의 스파이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건을 추적하면서 ‘미쓰 고’를 만나게 되고 신발에 피가 마를 날이 없을 정도로 싸움을 잘하는 캐릭터죠. 고현정 씨와 로맨스도 있습니다(웃음).” - 작품을 까다롭게 선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 영화에서 자신의 캐릭터에 만족하나요? 고현정 “만족합니다. 저 그렇게 까다롭게 고르지 않아요(웃음). 다들 대본이 많이 올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많이 오지 않는 것 같아요. 이번 천수로 역할은 기대도 많이 됐어요. 그런데 만족스럽냐고 질문하신다면 조금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말씀 드리는 것이 맞는 것 같네요. 천수로는 사랑스러운 여자인데 제가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잘 연기했을까 싶어서요. 그 점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 4명의 남자배우와 호흡을 맞췄는데, 각각의 특징 또는 장점이 무엇인지? 고현정 “유해진 선배는 존재감이 없는 듯하면서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고, 다른 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시는 것 같아요. 성동일 선배는 정말 재밌어요! 차에서 내리는 모습만 생각해도 막 웃음이 날 정도로 유쾌하게 해주시죠. 심각한 장면일 때도 지루하게 생각하지 않게끔 해주세요. 고창석 선배는 굉장히 섬세하고 여리세요. 연기할 때 ‘어떻게 저런 부분까지 생각하지?’ 할 정도로 연기를 보여주셔서 감동받았어요. 이문식 선배와는 정말 힘든 장면을 찍었어요. 비 오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대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화 비슷하게 해야 하는데 너무 잘하셔서 그 덕을 본 것 같습니다.” - 영화 속에서 액션 연기에 도전했는데 어땠나요? 유해진 “이전 영화들에서는 대부분의 큰 액션이 빠지거나 아니면 막 싸우는 것이 많았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시나리오 상에서 싸움 잘하는 사람으로 나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액션을 잘하지는 않아요. 예전 ‘무사’ 때는 칼을 휘두르는 것이 자신 있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액션을 많이 걱정했는데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제가 생각해도 ‘좀 폼 나는데?’ 하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네요(웃음).” - 연기생활의 밑거름이 된 학교생활에서 했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고현정 “아무래도 졸업 작품 ‘갈매기’가 기억에 남아요. 여기서 마샤 역을 맡았는데 소극장에서 공연을 했어요. 등장하면서 불을 켜야 했는데 소품을 담당하는 친구가 호롱불만 갖다 놓고 성냥을 갖다 놓지 않은 거예요. ‘불이 없어서 어떻게 켜지?’ 하고 있었는데 관객에게 달라고 했어요. 분위기가 밝게 시작되면 안 되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관객들이 계속 웃으셔서 공연이 이상하게 됐던 적이 있어요(웃음).” - 캐릭터를 잡을 때 어떻게 접근을 하는지, 따로 노하우가 있나요? 유해진 “제가 존경하던 선생님이 항상 하는 말씀이 있었는데 ‘대본에 다 있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하우 면에서는 연극이 많이 도움 됐던 것 같습니다(웃음).” - 천수로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재미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고현정 “다른 작품에서는 거침없이 표현하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천수로 역할은 거의 표현을 하지 않는 캐릭터여서 오히려 그게 답답하다기보다는 재미있었어요(웃음). 그리고 천수로 대사를 보면서 ‘왜 이 여자는 바보같이 사나?’ ‘그냥 이렇게 하면 되지 않나?’ 라고 대입시키면서 혼자 재미있다고 느꼈던 것 같네요(웃음).”
- 영화 속에서 꽃미남 배우들과 주로 호흡을 맞췄는데 유해진 씨와 로맨스를 찍은 소감은? 고현정 “진지하게 촬영했어요. 갑자기 유해진 선배가 ‘미안하다’고 그러길래 ‘뭐가 미안하냐’고 물었어요. 그럴 정도로 너무나 감정이입이 잘 됐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작품에서는 그들이 저를 좋아하는 감정이 있어서 이끌림을 당하는 것이었는데 ‘미쓰GO’에서는 천수로가 빨간구두에게 굉장히 반해서 의지하게 되는 면이 많아요. 그리고 빨간구두가 어떤 것을 하면 천수로가 ‘우와~우와~’ 하며 감탄하는 장면이 많죠. 그런 와중에 이루어지는 로맨스 장면이어서 극중에서 자연스럽게 몰입이 잘 됐다고 생각해요(웃음).” -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와 더불어 고현정씨와 호흡이 어땠는지? 유해진 “저도 사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꽃미남이 할 줄 알았습니다(일동 웃음). 그런데 저에게 빨간구두 역할로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읽었을 때 시나리오가 묘하다고 생각했어요. 전체적인 분위기도 묘했고 매력 있다고 생각해서 출연하게 됐습니다. 저는 이렇다 할 로맨스가 없었는데 이번 영화에선 약간 진지하게 다가가는 로맨스가 다뤄져 걱정을 많이 했어요. 옛날부터 고현정 씨는 스타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걱정을 했는데, 고현정 씨가 현장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편하게 많이 도와줘서 걱정했던 것보다는 무사히 잘 끝났던 것 같습니다.” - 다섯 분의 배우 중 현장에서 누가 대장이었나요? 박 감독 “제일 연장자이신 성동일 선배가 항상 이끌어 주면서 괴롭혔던 것 같네요(일동 웃음).” - 카리스마 있는 역할을 많이 맡았던 고현정 씨가 정작 현장에서는 막내였다는데…. 유해진 “막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웃음). 만약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야, 막내야’ 라고 부를 정도가 되는데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네요.” - ‘미쓰GO’에서 배우들의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나요? 박 감독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입니다. 저는 현장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선배님들이 쉽게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과 그들의 자연스런 연기를 이끌기 위해서 연출을 했습니다.” 극 중 소심한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는 천수로 역의 고현정은 인터뷰 현장에서 오히려 대범하면서도 털털했고, 터프가이 역을 맡은 유해진은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 성격-이미지와 전혀 다른 배역을 연기한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배우가 느껴졌다.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