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조차 되지 않은 오래된 필름에서 찾아낸 어린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수십 년의 세월을 넘어 21세기 한국인을 쳐다본다. 60, 70년대 발가벗고 사진에 찍힌 그들은 이미 장년이 돼 있을 것이다. 차림은 남루하지만 밝은 미소를 던졌던 이 한국인들은 지금은 행복할까. “끝나버린 주제에 매달리는 이해할 수 없는 작가.” 가난한 모습을 사진에 담는 최민식(85) 작가를 폄하하는 일부 동시대 사람들의 평이다. 어떤 사람은 그를 “분노의 시선에서 가난한 사람을 찍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사진들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인간을 중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퍼져 나온다. 거리에서 품을 파는 아이들의 발가벗은 모습을 분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을 수도 있지만 그 바탕에 깔린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그가 적나라하게 담아낸 서민의 삶은 가난하고 고단하다. 흔히 정치인들은 산업화 세력이니, 민주화 세력이니 하면서 자기들이 다 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다 거짓말이다. 헐벗은 서민이 세계 최장시간 근로를 하며 이 나라 경제를 일으켰고, 몸 바쳐 이 나라 민주화를 이뤘다. 그 힘든 현실도 별 것 아니라는 듯 배시시 웃는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이 그의 사진에서 짙게 풍겨 나온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제 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인 최민식이 1957년부터 현재까지 부산의 자갈치시장, 광안리 해변, 영도 골목, 부산역 등등에서 카메라에 담은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아이들의 모습이 6월 13일부터 7월 8일까지 소공동 롯데갤러리 본점에서 전시된다. 1960년대 아이들과 1980년대의 아이들. 굳이 비교하자면 옷이 조금 더 남루하거나 꾀죄죄하고 얼굴에 땟국물이 흐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판잣집에 기대어 말뚝박기를 하는 아이들의 함성, 남부끄러운지 모르고 홀딱 벗은 채 카메라를 향해 지은 함박웃음, 자신도 꼬마면서 동생을 업고 친구 따라 냅다 내달리는 누이의 악착같음은 세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해도 변할 수 없는 그 무엇일 것이다. 사진 속의 어린이들은 분명하게 최민식 작가의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가 찍은 소년들은 그 시대의 사실이자 진실이었으며, 그 곳에 흐르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이야말로 최 작가가 자신의 사진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한 가지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지금까지 14권의 사진집을 출간했다. 그러나 80대 중반을 넘어가는 오늘날까지도 현역으로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관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진실입니다. 자꾸 꾸며대고 조작하면 안 되고, 정직하고 정확해야 합니다. 그래야 보는 이가 감동하죠.” “제발 사진집 보고 감각을 익히세요. 체험에 바탕한 보는 눈이 없으면 사람 사진보다 차라리 풍경을 찍는 게 나아요” 그는 1955년도에 일본에 미술 공부를 하러 갔다가 1956년 헌책방에서 에드워드 스타이겐의 사진집 ‘인간가족’을 접하게 된다. 전 세계 200여 나라의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한국 관련 사진도 4점 들어 있었다. 감동을 받은 그는 바로 그 이듬해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은 기록인 동시에 역사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사진 밑에는 연도와 장소를 기록해 두었지요. 연도 미상으로 표기된 것도 있지만 그건 국가기록원이 몰라서 해놓은 것 같다”며 “내가 봐도 잘 찍은 사진들”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최 작가의 사진예술관은 확고했다. “작가의 체험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체험이 없으면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가난을 겪어야 한다”는 그는 “요즘 학생들에게는 차라리 풍경이나 찍으라고 조언한다. 이번 사진전을 보면 조금이라도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좋은 사진을 찍는 비결에 대해 그는 “기성 작가의 사진집을 통해 시선-시각을 배우면서 동시에 현장에서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보는 눈과 발견은 체험에서 나오며, 유명 작가의 사진집을 눈으로 익히면서 순간을 잡아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진집을 안 사요. 앙드레 브레송 등 거장의 사진집만 국내에 1만권 이상 출판된 것으로 아는데, 그걸 보고 연구해야 해요.” 그는 집중의 남자이기도 했다. “술, 놀음, 여자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사진에 투자했지요. 그래서 오늘날 사진도 남고 책도 남길 수 있습니다”는 술회에서 잡념 없는 그의 집념을 볼 수 있다. “찍는 순간에 느낌이 온다”고 최민식은 말한다. 인생을 통해 쌓아온 체험과 관찰력이, 대상을 포착하는 감각으로 자연스럽게 살아나온다는 말이었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