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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빈 작가 “살짝 바꾼 가짜 명품에도 슬레이브처럼 굴복하는 우리”

베어브릭으로 소비문화의 이면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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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81호 김대희⁄ 2012.07.02 20:26:26

프랑스 출신 작가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가 곧 현대사회를 분석하는 열쇠라고 규정했다. 그는 현대사회를 소비사회로 지칭하면서 현대인은 생산된 물건의 기능을 따지지 않고 상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위세와 권위, 곧 기호를 소비한다고 주장했다. 소비문화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사회 안에서 형성되고 대량생산·전달을 매개로 한 상품의 형식으로써 소비자에게 누려지는 문화를 말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이미 명품 산업은 시장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다. 루이뷔통, 구찌, 프라다 등으로 대표되는 명품 브랜드들은 오래 전 개인 공방에서 시작해 이제는 세계 시장을 움직이는 시장의 주도자가 됐을 정도다. ‘세일’도 안 하는 이들에게 소비자들은 여전히 열광하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비 형태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요즘 명품은 예전과 달라요. 소위 말하는 상류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제 누구나 구입하는 대상이죠. 그만큼 명품을 사는 사람들도 많아졌어요. 쉽게 구입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몇 달 동안 돈을 모은다든가 아르바이트를 한다든가, 명품을 사기 위해 노력해요. 다른 시각으로 보면 명품에 얽매이는 사람들이죠. 이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이러한 소비 형태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해요.” 훤칠한 키, 깔끔한 외모 등 풍기는 분위기에서 느껴지듯 술보다는 커피를 선호하고 쇼핑하는 걸 좋아한다는 임지빈 작가. 그는 베어브릭이라는 곰 인형을 모태로 한 조각 작품으로 현대사회 속 소비문화의 이면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때문에 그가 자주 내세우는 단어가 바로 ‘슬레이브(slave: 노예)’다. 예전에는 노예라고 직접 쓰기도 했지만 너무 직설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물론 슬레이브도 같은 말이지만 우리말로 직접 받아들이는 것하고는 차이가 있기 마련. 이렇듯 명품이나 소비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그는 다시금 생각해보자는 얘기를 건넨다.

“우리 사회는 겉모습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강해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얘기를 하면서 서로 알아가고 관계를 형성해 갔었지만 요즘은 겉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죠.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등 돈으로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 같아요. 돈이 필요요소지 필수요소는 아니잖아요.” 처음에는 ‘노예’로 표현했지만 지금은 슬레이브 임지빈은 초기에 명품 로고를 소스로 작업했다. 언뜻 보면 루이뷔통이나 구찌 등의 명품로고 같지만 자세히 보면 아니다. 비슷하게 가짜로 만들어 인간들의 허영심을 얘기했다. 특히 베어브릭 곰 인형이 그의 주된 작품으로 다양한 색과 형태를 가진 작업을 한다. 물론 베어브릭과 유사하게 만들었을 뿐 실제 베어브릭은 아니다. 베어브릭이란 일본 최대의 아트토이 컴퍼니인 메디콤토이에서 발매한 곰 모양의 소장용 장난감이다. 첫 번째 베어브릭은 2001년 5월 27일 발매됐는데 첫 발매 시 곰 모양의 플라스틱 장난감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으나 이후 베어브릭은 많은 아티스트, 디자이너들이 참여하며 유명 메이커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하게 됐다. 이로 인해 아트토이 마니아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상업 캐릭터를 제 작품에 가져왔어요. 베어브릭뿐 아니라 미쉐린이나 프링글스 등의 캐릭터 작업도 있어요. 이들은 모두 소비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였죠. 그 중 명품 브랜드들과 협업도 많이 하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형태는 그대로면서 옷만 바꿔 입는 베어브릭이 제 눈에 들어왔어요. 베어브릭은 고마운 존재에요. 지금의 작품은 베어브릭이 있었기에 태어날 수 있었죠. 어떤 이들은 장난감 아니냐고 하지만 장난감이 장난일 수도, 장난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가 있어요. 한 예로 해외 유명 작가가 만든 장난감은 엄청난 고액에 팔리죠. 장난감이지만 금액이 장난이 아닌 경우에요.” 그는 흙(찰흙)으로 작업해서 석고로 틀을 만들고 그 안에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를 발라 형태가 나오면 사포질을 하고 색을 칠하는 작업으로 작품을 만든다. 이렇게 만드는 베어브릭에는 눈, 코, 입이 없다. 한 가지의 표정에만 갇히지 않고 많은 생각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머리 위에 핸드폰 고리를 만들었다. 핸드폰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필수 제품으로 그 고리를 현대인으로 표현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것저것 보여주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자신이 만들어서 보여주기를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기보다 만드는 것에 매력을 더 느껴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장학금 및 학비를 직접 벌어서 다녔던 그는 미술을 그만하고 회사를 가려고 하던 차에 공모전에 곰 작업을 출품해봤다.

그때 조각 최우수상을 받았고 2009년 대학 4학년 때 부산에서 열린 호텔아트페어에도 참가했다. 당시 행사 중 한·중·일 미술계 유명 인사들이 참여한 심포지엄에서 좋은 이미지로 평가받아 상하이현대미술제에도 초대받으며 다시금 작업에 열중하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한다. 어린 나이부터 소비에 물드는 현대인 그의 주된 작업은 조각이지만 사진이나 페인팅, 그라피티까지 할 정도로 다방면에 능숙하다. 때문에 여러 기업들과 협업도 많이 진행했다. “작품이 어렵지 않고 대중에게 어필하기 좋기 때문이 아닌가 해요. 소통이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즐길 수 있어야죠. 기업들도 이런 점을 많이 선호했던 것 같아요. 베어브릭 작업은 많이들 재밌어 하고 귀엽다는 반응이에요.” 또한 그는 다른 캐릭터도 만들어보라는 얘기도 많이 듣는데 자신은 캐릭터를 만드는 게 아닌 내용적인 면으로 작업하는 작가임을 강조했다. 베어브릭이 메인 작업이면서 생각날 때마다 가끔은 미쉐린이나 프링글스처럼 다른 캐릭터가 나올 수 있음도 시사했다. 욕심과 욕망에 얽매이는 현대인들을 이야기하는 그는 “사회가 너무도 빠르게 변하는 현상이 한 몫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빠르게 변하는 만큼 사람들과의 관계도 예전과 달라지고 요즘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소비에 물들기 시작하죠. 이런 현상들을 막을 순 없지만 조금이라도 더디게 변해갔으면 해요”라며 바람을 전했다. 작품을 통해 급격하게 변해가는 사회현상에 대해 짚어주고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고자 하는 그가 기본적으로는 조각가로서 상황에 맞춰 다양한 작업을 펼치며 보여줄 앞으로의 긴 여정을 지켜봐야겠다. - 김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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