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를 다룬 기록영화 ‘두개의 문’을 보고난 뒤 ‘심장을 짓눌린’ 기분이 됐다. 심장이 짓눌린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영상의 내용이 찍어 누르는 효과가 있고, 다른 하나는 일반 영화와 같은 ‘재미’ 요소가 완전히 배제된 드라이한 기록영상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생명경시의 무자비한 진압이고, 다른 하나는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을 참는 국민들의 차가운 마음이다. 우선 첫째 생명경시의 진압이다. 용산참사는 철거를 거부하는 세입자들이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지어 농성에 들어간 지 25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일어났다. 정권의 목적에 복무하기 위해 원칙 어긴 성급한 심야진압 명령 2005년 오산 세교지구에서의 철거 반대 농성 역시 경찰에 의해 진압됐지만 그때는 농성 54일 동안 수많은 대화가 시도되고 농성자들도 지치고 화염병 등도 다 떨어진 상태에서 진압이 '안전하게' 이뤄졌다고 영화는 전한다. 1296시간(54일)과 25시간의 차이다. 반대로 용산에선 농성 시작 직후 바로 '무조건 진압' 결정이 내려졌다. 진압경찰들은 심지어 건물 내부 구조도 확인하지 못한 채 불구덩이 안으로 던져 넣어졌다. ‘두개의 문’이란 제목은 옥상을 향한 두 문 중 어느 것을 통해야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은 채 진압경찰이 투입됐다는 현장 사정에서 나왔다. 이명박 정권 초기에 이뤄진 이 진압은 한 마디로 농성자든, 진압경찰이든 국민의 안전이나 생명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오로지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만 복무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이 영화의 메시지다. 두 번째 메시지는 ‘국민이 참으면 폭력은 더 세진다’는 점이다. 농성 25시간만의 진압을 '아주 성공적으로' 이뤄낸 뒤, 비록 농성자 넷과 경찰 1명이 사망했지만, 경찰과 정권은 조용한 국민의 반응에 주목한다. "이렇게 죽여도 되는구나"가 확인됐다고나 할까. 그래서 정권은 1월의 용산참사에 이어 그해 8월 쌍용차 농성자에 대한 ‘몽둥이찜질’에 나설 수 있었다고 영화는 말한다. “나는 아니겠지” 하고 방심하다가 결국 자신이 당했다는 나치 시대의 신학자처럼 독일 나치 당시 한 신학자가 “공산당 → 유대인 → 노조 → 가톨릭 숙청이 이어질 때 나는 공산당이 아니고, 유대인도 아니고, 노조원도 아니고 개신교도여서 안전한 줄 알았는데, 내 차례가 되니 주변에 날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고 했다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내 일은 아냐”고 참는 사이 독재정권의 몽둥이는 당신 곁으로 점점 더 빨리 다가온다는 메시지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보기 즐거운 영화가 아니다. 경찰의 증언과 법정 진술 등 ‘팩트들’이 이어질 뿐 감정을 격발시키는 또는 잠시 쉬어가게 만드는 말랑말랑한 ‘감정’ 부분은 거의 없다. 101분의 가슴 눌림을 참을 수 있다면 이 영화를 보러 가시라. 그리고 보는 내내 힘들 수 있으므로 복장은 최대한 간편하게, 그리고 물 한 병을 꼭 지참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