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책’. 선거의 해에 쏟아져 나오는 계절상품이다. 작년 말부터 현재까지 몇몇 정치인들의 책을 읽어봤다. 내용을 떠나 정치인의 책에는 한 특징이 있다. 정치인이 직접 나서 자신의 생각과 계획, 의지를 밝힌다는 점이다. 대중연설을 하듯 책을 내는 방식이다. 침묵에 침묵을 거듭해 “비겁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던 안철수 교수가 사실상의 대선 출정선언이랄 수 있는 책 ‘안철수의 생각’을 내놨다. 출간 당일 서둘러 읽어본 그의 책은, 한 마디로 ‘안철수다웠다’. 여기서 안철수답다는 의미는 ‘나’가 아니라 ‘여러분’을 앞에 놓는 방식이다. "내 밥그릇 얘기는 안 한다. 남 위해 손해보며 말한다" 그는 책에서 자신의 발언 방식을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제 밥그릇과 연결된 얘기,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얘기는 잘 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의 이해타산과 무관할 때, 혹은 제가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에서 발언합니다”고. 사회적 발언은 ‘남’을 위해 한다는 말인데, 이번 책의 포맷(방식)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 펴낸 게 아니라, 듣는 유권자가 알아듣기 쉽도록 하는 포맷으로 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언론인을 활용했다. ‘벼랑에 선 사람들’이란 책을 펴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제정임 교수에게 먼저 전화해 “만나자”고 했고, 대화를 나눠본 뒤 “책을 내자”고 했다. ‘대중을 위한 글쓰기에 달인’인 기자 출신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안철수가 원하고, 기자가 응해서 나온 책 그간 기자가 정치인을 위해 대담집을 낸 경우는 여럿 있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조국 서울대교수와 대담한 ‘진보집권플랜: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포맷은 거의 항상 ‘기자가 부탁하고, 정치인이 응하는’ 방식을 취했다. 안철수는 달랐다. ‘정치인이 부탁하고 기자가 응하는 방식’으로 이번 책이 나왔다. ‘정치인의 연설조 책’보다 훨씬 읽기 쉬운 게 ‘기자의 인터뷰 책’이다. 요점을 정리해 묻고 요점을 대답하는 방식이기에, 그리고 그 문답이 문어체가 아니라 구어체로 이뤄지기에 어려운 내용도 비교적 쉽게 술술 읽힌다. 철학책-자료집이 아닌 이상 정치인의 책이라면 무조건 많이 읽히는 게 최고다. 널리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은 ‘역사에 남을 주옥같은 책’을 낼 필요가 없다. 그런 건, 철학자나 문학가에 맡기면 된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 선거철을 맞아 쏟아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책 중에는 재미있다 싶은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이걸 일반인이 읽으라고 냈나”라고 혀를 차게 만드는 것들도 있다.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것까지는 좋은데, 과연 내 말을 청중들이 제대로 쫓아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는 서툰 방식, 즉 그냥 진도를 나가는 방식의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치인들, 책 낼 때 제발 좀 기자를 활용하라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하지도 않았는데 한때 최고 지지를 받은 안철수에 대해서는 말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 책을 보고 그의 정체를 꽤 많이 안 느낌이다. 그리고 그의 대중에 대한 접근방식, 즉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겁니다’라는 방식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책을 내고픈 정치인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잘난 거는 공지사항이니 연설은 그만 좀 하시고, 책 낼 땐 제발 기자를 좀 활용하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