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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호 작가, 뇌에서 꺼낸 추억의 아스라함

사진과 회화 사이의 어스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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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84호 왕진오⁄ 2012.07.23 11:23:41

현실 속에서 자신의 눈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광경들을 홀로 바라보는 작가 국대호. 2차원 회화의 평면성과 전통적인 붓질, 그리고 3차원 물질과 공간의 문제를 오랫동안 탐색했던 그가 회화의 종말을 받아들이는 대신 밤과 낮의 모든 빛을 받아 가시화되는 현상들을 다시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다. 햇빛을 받은 자동차의 표면 위에서 섬광처럼 빛나는 반사광선. 햇빛으로 떨리는 나뭇잎. 어스름한 저녁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는 도시의 불빛들은 찰나적이지만 작가의 뇌리 속에 깊이, 그리고 거부할 수 없게 오랫동안 각인된다. 국대호의 작품 속 어둠은, 그 내부로부터 발산된 빛으로 인해, 또는 어둠의 표피에 살포시 머금어진 빛으로 인해, 신비로운 어느 지점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그가 바라보는 도시는 빛이 머무는 지점이다. 그 빛으로 인해 형태와 배경, 나아가 선과 선이 만나는 지점은 명료함을 잃고 회화적으로 일렁인다. 그곳에 무한한 색의 변조와 빛의 무궁함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빛의 시선으로 일관되게 절제돼 있다. 그의 그림을 가까이 바라볼 때는 빛의 눈부심으로 알 수 없는 미로에 빠진 듯하다가, 약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그 빛의 눈부심이 보는 이의 내부로 들어오면서 초점이 정확하게 맞추어지는 역설이 있다.

마치 서투른 사람이 제대로 초점을 맞추지 못해 희미하게 찍은 사진 같은 장면을 캔버스 위에 유화로 표현하는 작가는, 이러한 작품들을 그리기 이전에 1995년경부터 10여 년 동안 회화의 근본 문제를 천착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공부하면서 작가는 붓의 움직임에 의해 형성되는 화면의 평면성과 재현의 문제, 3차원적 물질과 공간과의 관계, 색채의 문제 등에 대한 탐구를 거쳐 현재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국대호는 뉴욕, 파리, 그리고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등을 여행하면서 순간순간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도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왔다.

상상과 재현의 문제로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의 힘 그가 담은 장면들은 그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유명한 장소일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낯선 방문자로서의 작가의 시선에 우연히 들어오는 것들도 있다. 골목의 한 귀퉁이나 아파트의 창문, 지하도 한 구석이나 지나가는 차, 길을 걷는 사람의 모습 등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배경이 아웃포커싱 된 화면에 매료된 이후 그의 시선은 ‘흐리지만 몽환적인 장면’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어 도심의 야경이나 햇빛에 반짝이는 느낌을 강조해 색의 조화를 그만의 필치로 드러낸다. 그의 작업을 대표하는 아웃포커싱에 대해 국 작가는 “여행을 마치고 나면 당시의 기억이 선명치 않은 것 같아요. 어렴풋이 기억 속에 잔상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순간순간의 기억들을 끄집어 낼 때 아웃포커싱으로 화면을 그려내는 것이 가장 잘 표현되는 것 같다”고 했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분이 안 되는 모호함으로 인해 처음에는 낯설다는 반응을 얻기 쉬운 그의 작품들은, 디지털의 차가움과 회화의 따듯함을 모두 보여줌으로써 사진과 회화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세계 각국의 도시를 나만의 시점으로 바라본 작가로 평가받고 싶다”는 그는 누구나 한 번은 가본 곳이지만, 색채나 구도는 자기만의 것을 드러내 보여준다. "예술이란 것이 개인적인 사소함이지만, 낯설음이란 단어에 매력을 느껴 작업의 주요한 모티브로 삼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의도적인 초점 흐리기 기법은 국대호가 주관적으로 바라본 이국적인 도시의 모습을 보편적 이미지로 전환시켜 관람객과의 소통을 부드럽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해외에 여러 지역을 화면에 담아왔던 그가 최근에는 서울의 낯선 거리를 담아내고 있다. 생활 주변에서 미처 보지 못한 기억의 흔적을 발견하려는 그의 노력의 결과가 궁금해진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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