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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고졸한 멋으로 풀어낸 우리 시대의 민화

진숙정 작가, 전통회화를 현대적으로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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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85-286호 왕진오⁄ 2012.08.06 14:06:08

하얀 화선지 위로 손 떨림이 가득한 붓의 흔적이 지나간 자리에 과거의 영광과 선조들의 숨결이 함께 한다. 과거의 모습들이 하나 둘씩 은은하게 배어나온다. 눈으로 본 풍경이나 주변의 인물들이 아닌 역사의 시간을 오늘의 느낌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통회화로서의 민화, 다양한 유형으로 이뤄진 민화는 생활형식의 오랜 역사와 밀착되어 형성됐다. 내용이나 발상 등에는 한국적인 정서가 짙게 내재해 있다. 민화는 정통회화에 비해 묘사의 세련도나 격조는 떨어지지만, 익살스럽고도 소박한 형태와 대담하고도 파격적인 구성, 아름다운 색채 등의 양식은 오히려 한국적 미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전통적이지만 자신의 색채로 민화를 그려내는 작가 진숙정이 8월 1일부터 11일까지 종로구 경운동 장은선갤러리에서 오래된 것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각으로 창작한, 삶과 함께 호흡하는 생활화로서의 민화를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한다.

대학시절 서양화를 통해 자신만의 미적 감수성을 만들어냈던 작가는 태평양 건너 이국땅에서 생활하면서 그림에 대한 향수를 자극받는다. 다시금 잡은 붓으로 그려낸 화면은 박물관이나 사극 드라마에 등장하며 눈길을 모았던, 우리 옛 선인들이 즐겨 보고 함께 했던 대상들을 담은 그림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선보이는 진숙정의 작품들은 전통회화로서 민화를 대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전달한다. 주제와 의식은 살아있지만 표현감각은 현대적 일견 전통회화로 알려진 민화의 작품들은 대개 그 작업자가 누구든 비슷하거나, 옛것을 잘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진 작가의 경우 서양화에 대한 감각과 현실적인 감각 그리고 작가 자신의 감수성이 혼합돼, 주제와 의식은 살아 있되 표현감각이 현대적이면서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독특한 표현이 완성돼 있다. 그림 그리는 것이 천생의 연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한때 붓을 놓고 일상의 삶 속에서 살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한지를 구하고 박물관이나 오래된 서적에 나오는 옛 그림들을 보면서, 그 안에 담긴 은은한 향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다시금 붓을 잡고 자신만의 색감으로 화면을 채웠다. 완성된 작품에는 민화가 담아내는 다양한 주제들이 등장한다. 군접도, 화접도, 책가도, 문자도, 평생도, 삼국지도 등 그 이름만큼이나 오랜 시간동안 열정으로 화면을 채워나간 흔적들이 나타난다. 또한 자신만의 시각으로 현대적 감성을 보여주고 있는 한글 문자도는 작가 진숙정이 민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작가는 “과거의 것만 고수하면 오늘날에는 외면을 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진숙정의 작품에 드리운 색감은 골동품이나 문화재급으로 귀중히 여기며 전시장에서 보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네 일상 공간 어디에 놓아도 전혀 거스름 없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그러한 색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옛것이 무조건 좋다는 인식보다는 그 당시의 정서와 정신을 작품으로서 완성시키되, 오늘의 시각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시도한다고 볼 수 있는 시도들이다. 전통회화로서 민화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고착된 감상용 그림이 아니다. 민화는 당시에는 일상이 삶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있던 공기와 같은 대상이었다. 이제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무조건 과거 대가의 그림들이 좋다는 식의 사고는 지양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어디에 놓아도 어울리는 우리 그림으로서의 민화, 이를 현대적으로 재현하고 발전시킨 민화작가 진숙정의 고졸하지만 멋스런 그림은 전통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떠올리게 만든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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