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제와 관련해서는 몇 가지 경험이 있다. 우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초기에 이라크 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금발의 미녀 여군 제시카 린치 일병의 웨스트버지니아 팔레스타인 시골 집을 찾아갔던 취재 경험이다.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 산골 중에서도 산골인 팔레스타인의 린치 양 친구들 중에는 현역 군인이 많았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서 고교(미국에서는 고교까지 무상교육)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군에 자원입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지에서 만나본 미국 시골 젊은이들은 ‘군을 통해 대학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은커녕 고마워하는 태도였다. "대학 가는 길은 군대뿐"이라는 미국의 가난한 젊은이들 두 번째 경험은 미군의 사기 또는 '사고 적음'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에 살다보면, 한국식의 권위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컨대 대학 강의실에서 사람 머리만한 큰 컵에 청량음료를 담아 와서는 신발 신은 다리를 앞 좌석에 턱 걸쳐 놓은 채 콜라를 빨아먹으며 강의를 듣는다. “나 같으면 이런 분위기에선 도저히 교수질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렇게 권위주의가 없는 곳에서 어떻게 ‘권위주의-계급으로 유지되는’ 군대가 별 사고 없이 유지될 수 있는가가 궁금했다. 그래서 미군 경험자들에게 물어보니 “기본적으로 대우가 좋고, 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자진해서 가기 때문에 더 적응을 잘 한다”는 대답이었다. 사람은 자고로 강제로 시키면 좋은 일도 짜증내기 쉽고, 자신이 골라서 하면 험한 일도 재미있어 하는 동물이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군인에 대한 처우개선, 그리고 군대 내 사고방지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한국도 모병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미국에 살면서 계속 했었다. 그런데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니 미국의 사정이 꼭 그렇지도 않았다. 샌델 교수는 ‘로마는 시민이 바로 군인이었기 때문에 제국이 유지됐다. 군인을 돈으로 사는 용병제가 시작되면서 로마는 망했다’는 요지로 썼다. 정치인의 자제들이 군인이 아니기 때문에 직전 부시 대통령 등이 쉽게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며, 그래서 징병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샌델 교수의 주장이었다. 경제민주화, 금융민주화, 임금민주화 필요한 것처럼 군 민주화도 필요 이런 세 가지 경험을 거치면서 가지게 된 생각은 “그래도 징병제를 유지해야 하고, 대신 군 입대자에 대한 대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국제적인 양상이 많이 바뀌고 있다. 9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만 군 입대를 하되 징병제를 유지했던 독일이 최근 모병제로 돌아섰고, 한국에 앞서 국방개혁을 성공적으로 진행함으로써 앞서 말한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군 입대자에 대한 대우를 대폭 개선한’ 대만도 모병제로 전환할 예정이다. 모병제 전환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상이다. 모병제가 좋으냐, 징병제가 좋으냐에 대해서는 끝없는 논란이 가능하다. 그러나,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에 따르면 ‘군인 숫자는 크게 줄이되, 군인 처우를 개선한다’는 한국 군의 국방현대화 계획, 국방부가 스스로 마련한 정책이 이명박 정권 들어와 완전히 도루묵이 돼 버린 배후에는 군인들의 자리욕심이 있다고 한다. 예비군 사단 등의 존재 이유에는 퇴역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측면이 크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한국에서 징병제를 실시할 이유는 충분하고, 징병제가 더 정의로운 제도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징병제는 많이 병들어 있고, 부조리도 많다. 정부 고위층 상당수가 군 면제자라는 사실에서도 ‘제도는 징병제이되,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현재 경제민주화를 필두로 사회 모든 분야에 대한 민주화 논의가 뜨겁다. 고졸자 이하를 차별대우하는 금융을 민주화해야 한다는 금융민주화, 이른바 '신의 직장'과 비정규직 사이의 터무니없는 임금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임금민주화 논의까지 다양하다. 이런 마당에 국방 또는 군 민주화 논의 역시 빠질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군만큼 중요한 부분이 따로 없고, 모든 분야가 그렇듯 민주화가 이뤄져야 더 건강하고 굳건해지기 때문이다. 군 개혁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차원에서, 김두관 후보의 모병제 정책이 군 개혁 논의의 시발점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