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290호 최영태⁄ 2012.09.07 17:46:57
2009년 1월부터 4월까지 한국민 전체는 성폭력 살인범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성폭행 살인범은 없어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러는 사이 이명박 정권 초기의 최대 참사 중 하나인 용산참사(2009년 1월)는 일반인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2012년 9월, 이번엔 고종석과 그 이후 줄을 잇는 성폭행범들이다. 온갖 성폭력이 언론지상을 뒤덮고 있다. 정치권까지 대통령이 성폭행 사건에 대해 사과를 다 하고, 여당의 원내대표는 “야당 대문에 성폭행이 일어난다”며 비난하고, 궁형(남자의 고환을 잘라내는 형벌)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법안까지 나왔다. 3년 전 그때처럼, 지금 한국은 온통 성폭행이 화제다. 갑자가 한국 아저씨들이 전부 아랫도리를 내리고 어린이 성폭행에 달려들고 있는 듯한 환상을 주는 보도행태다. 3년 전 강호순 사건 때문에 그 난리를 쳤지만, 성폭행 사건은 매년 폭증세라고 한다. 전국민이 넉 달 동안 성폭행 살인범의 얼굴을 까느라고 난리 굿판을 벌였건만 왜 성폭생 사건은 증가일로였을까. 강호순, 고종석… 개인에 조명 집중될 때를 조심하자 스포트라이트 효과 때문이다. 밤거리의 가로등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 강호순을 비추는 사이에 더 어두워진 뒷골목에선 더 많은 성폭행이 벌어진 것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아니, 특정인에 집중하는 사이에 익명의 범인들은 더 활개를 쳤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거판에서 또는 중요한 국면에서 ‘개인에게 스포트라이트 왕창 쏟아붓기 작전’에 한국인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당할 것인가. 대선을 앞두고는 항상 대형 스캔들이 터졌다. 2007년의 신정아 스캔들처럼. 100일 남짓 남은 대선일까지 또 스캔들은 여럿 터져 나올 것이다. 선거판 스캔들의 특징은 사회-경제 ‘현상’이 아니라, ‘개인의 얼굴’을 비추는 게 특징이다. 현명한 유권자라면 말해야 한다. “아니, 거기 말고. 왜 강호순, 고종석 같은 개인의 얼굴에만 조명을 비춰. 그거 말고, 그 뒤의 사회적 배경, 문제, 해결책에 조명을 좀 비춰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