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이자 승려로서, 또한 사찰음식 전문가로, 재즈피아니스트로 독특한 이력을 지닌 정산 김연식(66) 작가가 관조, 명상의 화제를 음악으로 전환했다. 5회 개인전 '드뷔시의 달빛'에 이어 9월 12일부터 24일까지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펼치는 그의 개인전 제목은 '구스타프 말러의 몽유도원도'이다. 제목은 음악처럼 몽롱하지만 작품을 바라보면 섬뜩한 재료에 눈길이 집중된다. 바로 날카로운 면도날이 촘촘히 화면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면도날의 디자인이 맘에 들었어요, 예전에는 메달로 만든 제품이 나와 목에 걸고 다니기까지 했죠. 날카로운 칼날로만 생각하면 두려운 존재이지만 이를 세워서 화면에 배치하니 묘한 실루엣이 드러나요." 면도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작가는 "일반적으로 칼에 대해 터부시 하는 부정적인 인식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칼이라도 강도가 들면 죽음의 칼이요, 요리사가 들면 맛있는 칼이고, 의사에겐 생명의 칼, 여인의 가슴 속에 담기면 순결 정조의 칼이겠지요."
독일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에 대한 일방적인 편견이라기보다는, 어떤 이에겐 죽음의 음률이, 다른 이에겐 장엄하고 희망어린 메시지로 들릴 수 있는 것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면도날은 결코 죽음의 칼이 아닙니다. 죽음이란 것 자체를 나는 열반에 초점을 둡니다. 새로운 완성이자 소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유는 말러가 당시에 이백의 시를 노랫말로 삼아 '대지의 노래'라는 엄청난 곡을 작곡했는데, 그런 것을 봤을 때 이 분은 굉장히 동양적이고 이백을 알면 불교사상도 들어 있지 않나 싶어서 말러의 9번 교향곡을 해석하는 데 몽유도원도가 가장 적합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산 김연식의 이름은 미술계에서는 낯선 이름으로 통한다. 6번의 개인전을 펼쳤고, 30여 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해왔지만 스스로 일반 화가의 역할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10대에 출가해 자연의 색을 채집하면서 익힌 색을 자연스럽게 매니큐어와 연관시켜 색 배합을 하다 보니 무색의 작품에 가장 화려한 매니큐어의 색을 입히게 되었다.
“칼은 죽음인가? 그건 완성이기도 해” 정산의 '말러 사랑'은 고스란히 작품에 배어난다. 그의 교향곡 9번을 해석한 '구스타프 말러의 몽유도원도'는 세로 2m40cm에 가로 11m가 넘는 대작이다. 대형 화면을 약 3cm 간격으로 빼곡하게 채운 것은 다름 아닌 면도날 4만여 개다. 각각의 면도날은 매니큐어와 인조보석 등 여러 재료들로 치장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연출된 이미지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인상을 차용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 사용된 면도날은 모두 7만여 개다. '몽유도원도'가 현실을 지나 동경하는 이상향으로 들어가는 신비롭고 몽환적인 여행이라면, 교향곡 9번 역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희망의 정원이 아니겠는가 하고 되묻는 듯하다. 김연식이 작품의 모티브를 음악에서 찾고, 불교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남다른 이유가 있다. 그는 이미 50여 년 전에 출가한 승려로서, 우리나라 최고의 사찰음식 전문가이며, 재즈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이런 색다른 이력을 바탕으로 프랑스와 미국 등 국내외에서 평면회화, 설치, 행위예술까지 종합적인 예술세계를 펼치고 있다. 그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5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프랑스 샤랑통시 초청 살롱전 특별 개인 초대전 및 시장상 수상(2011), 샌프란시스코 개인 초대전(2012), 2012 태화강 국제 설치미술제 최고 인기 작가상 수상 등 국내외에서 비중 있는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