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1호 최영태⁄ 2012.09.11 10:36:21
5.16쿠데타, 10월유신, 인혁당 판결 모두에 대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역사의 판결에 맡겨야 한다”거나 “판결이 두 가지가 있지 않느냐”는 발언을 했다. 이 중 박 후보의 말에 대해 고개를 끄떡일만한 것은 5.16에 대한 것뿐이고, 나머지 두 개에 대해서는 강하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5.16쿠데타는 발발 당시 국민이 받아들였다. 혼미한 정국을 당시 최고 엘리트집단이었던 군부가 쇄신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뒤에는 공과 과가 이어졌기에 아직 역사적 판결이 남아 있다는 박 후보의 말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반대하면 빨갱이” 수준을 못 벗어난 한국 보수 본류의 인식 그러나 유신은 처음 시작 당시부터 문제가 많았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의 위협” 등을 거론하며 10월유신을 단행했지만, 주한 미국 대사관의 문정관, 정치보좌관 등을 지낸 그레고리 헨더슨은 “박정희는 북한의 위협이 수그러들고 있는데도 10월유신을 강행했고, 유신헌법은 공산국까지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헌법 중 하나로 독재주의적 괴물이었다. 유신시대의 언론통제는 히틀러 말년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책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에 썼다. 이렇게 취약한 바탕에서 시작한 폭거인 만큼 미국의 카더 행정부는 박정희를 완전히 무시했고, 유신 체제는 1979년 고작 200명 남짓한 YH무역 여공들이 야당 당사에서 농성하는 사태가 발단이 돼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붕괴했다. 정말 허약한 체제였던 것이다. 쉽게 얘기해, 1961년 5.16쿠데타 당시 여공 200명이 야당 당사 농성을 했다 한들, 이런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유신체제에 대해 아직도 미련을 갖는다는 건 놀라울 뿐이다. 인혁당 사건은 사상범에 대해 ‘판결 뒤 하루 만에 사형 집행’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법 테러로 기록돼 있고, 그래서 대법원이 재심을 통해 피해자들의 무죄를 이미 선고했다. 그런데도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가 ‘아직도 판단이 끝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이건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박 후보의 역사인식을 ‘전두환 식 역사인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아직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80년 광주 민주화항쟁은 “빨갱이들의 폭력혁명 시도를 진압해 나라를 바로잡은 결단”이다. “80년대 인식으로 재집권할 수 있다”는 자가당착 한국 사회의 보수 본류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은, 80년대에 멈춰선 인식, 즉 “우리에 반대하면 무조건 빨갱이” 식 인식으로 아직도 재집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박근혜 후보 주위에 몰려들고 있다. 흔히 보수를 개혁적 보수와 수구꼴통으로 나누지만, 한국에는 개혁적 보수가 설 땅이 없다. 수구꼴통이 개혁적 보수에 대해 “너도 빨갱이지?”라고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수구꼴통과 개혁적 보수의 차이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이라는 주장도 있다. 개혁적 보수는 누릴 걸 누리는 만큼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는 차원에서 ‘오블리제’를 말하지만, 수구꼴통은 희생에 대한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지키려고만 한다는 의미다. 박 후보를 지지하는 층은 박 후보가 무슨 발언을 하던 상관없이 견고한 지지를 거두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방향을 가를 것으로 예상되는 중도층 중에는 아직도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 중 누구를 고를까”를 망설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 면에서 박 후보의 “인혁당 사건은 아직도…”는 극히 위험하고 자해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