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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군자 장계향 순례길 스토리텔링]장계향의 삶에서 이 시대 여성상을 찾다

여중군자 순례길 시리즈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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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98호 박현준⁄ 2012.10.29 11:07:09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이하 개발원)의 ‘여중군자 장계향 순례길’에 동행한 것은 수은주가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던 지난 7월 30일. 책으로만 만났던 ‘여중군자(女中君子)’, ‘정부인 안동장씨’ 장계향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다는 설렘이 발길을 앞섰다. 개발원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순례길을 조성함으로써 현대인들이 여중군자의 삶과 철학을 더욱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오래전부터 이번 사업을 기획했다. 그동안 학술 위주로 조명됐던 장계향의 삶을 문화적 콘텐츠로 끌어올리는 의미가 큰 시도다. 개발원 선양사업팀의 박희택 객원연구위원과 신경진 주무, 경북여성팀 정일선 실장과 김명화 연구위원이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 섰다. 여중군자 태생지에서 순례길 첫 발을 내딛다 2박 3일 순례길의 첫 걸음은 한국의 여중군자 장계향이 태어난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서 시작됐다. 첫날부터 폭염 속 강행군이 시작됐다. 자주 찾았던 안동 곳곳에 그렇게 많은 여중군자의 삶이 깊숙이 스며 있는 줄 몰랐다.

봉정사 방면으로 접어들어 학봉종택을 지나 장계향이 태어난 안동 서후면 금계리에 차를 세웠다. “위대한 어머니상으로 추앙 받고 있는 대한민국 여성의 큰 별이 태어난 곳인데….” 번듯한 문화유적지를 상상한 터라 조금 실망스러웠다. 천부적 재능을 겸비한 예술가이자 이웃을 보살폈던 사회사업가, 이론보다 생활 속 실천을 더 중요시한 교육가, 400년 전 이미 감성과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준 장계향의 생가터는 말 그대로 ‘공터’였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경당 장흥효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광풍정과 그 뒤 거대한 자연 암석 위에 우뚝 서 있는 제월대를 보는 순간 실망감은 녹아내렸다. 강학이 끝나면 마을이 한 눈에 보이는 제월대로 올라가 시를 읊으며 ‘경(敬)의 철학’을 생각했을 경당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하다. 상상력이 시간을 거슬러 역사 속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찰나, 주위를 둘러보니 개발원 순례길 답사팀이 땡볕 아래서 구슬땀을 흘리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박희택 연구위원은 온 몸이 땀으로 젖은 채 광풍정 마루에 걸려 있는 현판의 내용을 수첩에 옮겨 적고는 관리가 필요한 곳을 꼼꼼하게 챙겼다.

장계향의 삶과 철학을 연구한 이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을 찾고 있는 박 위원이 한참 만에 말문을 열었다. “여중군자 생가터 주변은 소나무 숲이 참 좋고 광풍정과 제월대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을 겁니다. 생가를 복원해 이곳을 널리 알려야 됩니다.” 숨겨진 보물을 찾는 심정으로 시골 마을의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서후우체국을 지나 경당 장흥효의 경당고택. 기계로 찍은 듯 단정하게 쌓은 장작더미, 풀 한포기 허투루 나지 않은 뒤뜰 등 종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명품 종가체험으로 경당고택을 꼽는 이유가 짐작됐다.

마당 깊은 경당고택은 대문이 열린 채 비어 있었다. 미리 연락하면 찜통더위에도 손님맞이에 나설 종손과 종부의 수고를 덜기 위해 소리 없이 찾아온 탓이다. 개발원 답사팀은 ‘접빈객’을 도리로 아는 종가의 전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서둘러 둘러보고 장계향의 묘소와 남편 석계 이시명이 아이들을 가르친 단고서당으로 향했다. 안동과학대학교 앞 굴다리를 지나자 ‘여중군자 장계향 묘소’ 안내판이 갈림길마다 손짓으로 길을 안내했다. 가는 곳마다 안내판이 제대로 설치됐는지 놓치지 않고 확인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차에 올라타 석계의 업적이 새겨진 유허비와 갈암금양강도지를 찾았다. 갈암 이현일은 장계향의 셋째 아들이자 숙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영남학파의 거두다. 답사팀은 석계의 후손을 만나면 ‘역사 속에 묻혀 있는 보석’이라도 찾는 냥 들뜬 표정으로 장계향의 얘기를 물었다. 해질 녘, 대구에서 열린 종부 모임에 참석하고 돌아온 경당 장흥효의 11세 종손 장성진(73) 씨의 전화를 받고 다시 경당고택으로 향했다. 박 위원이 종일 장계향의 발자취를 따라 밟으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종가 문화 보존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얼마나 얘기를 나눴을까. 밤이 깊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하는 길에 위원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항상 종손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문제와 어려움을 먼저 물어보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정부의 지원과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으로 속상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어요.” 평온함과 빼어난 경관은 ‘덤’ 이튼 날, 안동댐 월영공원의 장계향 시비에서 답사를 시작했다. 가는 길에 잠시 남자현지사 생가에 들리고는 곧장 영양 두들마을에 도착했다. 평온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두들마을을 개척한 사람이 바로 장계향과 그의 부군이다. 석계고택에서 석계 종손을 만나 장계향의 전인적 완덕(完德)의 삶의 얘기를 들으며 두들마을을 돌았다. 세심대(洗心臺)와 낙기대(樂饑臺), 정부인 안동장씨 유적비와 예절관, 음식디미방 체험관 등 가는 곳마다 여중군자와 관련이 있다. 특히 장계향의 애민과 구휼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유적비 옆 큰 도토리나무들을 보니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산책하듯 평온한 두들마을을 돌다보니 어느새 여중군자의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까지 가슴 속에 담아갈 수 있었다. 장계향 내외가 20년간 지낸 영양 수비면 신원리의 수산유허비로 출발하는데 석계 종손이 흔쾌히 답사팀 가이드를 자처했다. 순례길 코스에 빠져서는 안 될 존재종택과 갈암고택을 돌면서 장계향이 친정 가는 길에 넘었을 고갯길을 추적했다. 길이 막힐 때면 동네에 있는 석계 후손들이 발 벗고 나서 해답을 찾아줬다.

영양권 일정을 마치고 시원스레 펼쳐진 넓은 들과 병풍처럼 에워싼 산을 감상하며 마지막 순례길인 영덕으로 향했다. 여중군자의 발자취를 찾아 그의 빛나는 삶을 따라다니며 종일 눈에 담을 수 있는 빼어난 자연 경관은 운 좋은 덤으로 느껴졌다. 한 곳도 빼놓을 수 없는 영덕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갈암종택에서 3일째 순례길 답사를 시작했다. 송홧가루와 꿀로 만들었다는 시원한 종갓집의 음료가 무더위와 이틀간의 강행군으로 지친 몸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갈암 이원흥 종손과 박희택 연구위원이 장계향의 교육철학이 잘 나타난 ‘홍범연의’의 가치에 대해 얘기했다. 박 위원이 새로운 숙제가 생긴 듯 수첩에 메모했다. 종손을 따라 갈암종택 인근에 있는 갈암의 태실 자운정과 우계종택에 들리고 운악종가 충효당 그리고 향나무가 운치를 더했던 경수종택 등을 살펴봤다. 어디 하나라도 장계향 순례길에서 빼놓을 수가 없음을 새삼 확인했다. 장계향이 전부인 소생의 여섯 살배기 상일을 매일 같이 업고 다녔다는 일화로 유명한 난고종가를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답사팀은 인산서원 터를 살펴보고 3일간의 장계향 순례길 답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스치듯 걸으며 장계향 철학을 느끼다 짧은 시간 83년을 살다간 여중군자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깨달았다. 순례길을 거닐며 여성으로서 ‘군자’라는 호칭을 얻은 이유와 무엇을 본받아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스치듯 가벼운 발걸음일지라도 여중군자 장계향 순례길에 오른다면 오늘날 더 두드러지고 있는 그의 철학과 삶의 향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깨달은 조선여인’ 장계향의 삶을 통해 이 시대의 진정한 어머니상과 여성상을 찾을 수 있도록 장계향 순례길이 널리 알려지길 기대한다. 한 여름의 땡볕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순례길 조사를 마친 박희택 연구위원을 비롯한 경북여성정책개발원 답사팀과 경당, 석계, 존재, 갈암 종손들의 땀과 노력이 보석처럼 느껴진다. <여중군자 시리즈 끝> - 최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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