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기록이나 인물을 바탕으로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 한 편이 시작된다. 한 컬렉터의 방주가 예술품을 가득 싣고 가다가 좌초되어 먼 훗날 발견되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11월 30일부터 12월 30일까지 종로구 사간동 16번지에서 진행되는 최해리(34)의 세 번째 개인전 '비가 내릴 것이다'의 이야기 속에 담긴 내용이다. 작가는 이곳에 역사의 기록을 근거로 상상 속에서 재구성한 가상의 컬렉션을 설정하고 그 안에 포함된 수많은 예술품과 유물을 세밀하게 모사한 회화, 조각 등 다양한 작품 50여 점을 선보이며 마치 박물관에서 접하는 전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시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이야기 속 방주의 주인인 광적인 컬렉터가 소장한 조선시대 후기 동양화 작품들에 대한 내용이다. 특이한 점은 전시되는 작가의 작품들이 조선시대 실제로 존재했던 화가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작품을 복제한 작업이라는 점이다. 2부에서는 이 컬렉터의 청화백자 도자기들이 전시되는데 이것 또한 실제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명 작품들의 복제품이다. 옛 명작을 놀랄 만큼 똑같이, 또는 독특한 변형으로 재현한 최해리 작가에게 ‘복제’라는 행위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역사를 소통케 하는 하나의 퍼포먼스라고 볼 수 있다.
작가가 설정한 가상의 컬렉터, 방주의 주인 역시 실제 인물을 모티프로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바로 송나라의 8대 황제였던 휘종(徽宗, 1082∼1135)과 매우 닮아있다. 휘종은 기이할 정도로 광적인 예술품 수집가였던 것으로 알려지는데 예술품 수집으로 인공산을 만들고 남의 집 담장을 허물 정도였다고 한다. 작가는 이러한 내용에서 힌트를 언어 작은 인공산과 휘종과 같은 컬렉터가 수집했을 법한 심사정의 산수화를 제작했다. 18세기 조선 화가 심사정은 오늘날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과 더불어 사인삼재(士人三齋)로 기억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정선의 진경산수화의 풍속화풍을 따르지 않아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으나 최근에는 작품성을 재평가 받고 있다. 이렇게 12세기의 휘종, 14세기의 청화백자 그리고 18세기의 심사정은 시대를 초월해 최해리 작가만의 컬렉션으로 재탄생 되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최해리 작가는 역사 속에서 발굴한 커다란 방주 안의 회화와 청화백자 복제품, 그리고 작가가 역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낸 작품 등 50여 점을 통해 '무엇이 예술이고, 이 예술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건넨다.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