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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큐레이터 다이어리 ①]슈퍼스타K가 큐레이터에게 눈물 흘리게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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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05호 박현준⁄ 2012.12.17 13:47:50

슈퍼스타K 시즌 4 준결승전에서 최후 생존자 3인의 비하인드 스토리로 가족들의 영상편지를 준비했다. 그 장면들은 참가자와 시청자에게 모두 눈물을 쏟게 했다. 나도 어떤 감정이 복받쳤는지 폭풍눈물을 쏟았다. 아마도 참가자들의 현재 모습과 나에겐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음악과 미술 분야는 부모들, 세상 사람들의 인식에는 먹고 살기 힘든 직업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거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기 전까지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길에 다다를 때 까지는 모험과 기대와 절망의 연속을 견뎌내야 하고 행하는 내내 남들보다 행복한 일,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자신을 위로하며 버텨나가야 한다. 일이 끝나고 퇴근하면 일을 잊고 쉬는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 잠이 드는 순간까지도, 걷는 순간에도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민해야 한다. 세상을 움직이고 싶은 열정에 잠 못 드는 날이 많았다.

열심히 한 만큼의 가시적 성과가 대체로 빠른 시일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내가 소모했던 시간의 공허함이 밀려온다. 그 때 내가 세상의 아웃사이더나 마이너 같다가도 때로는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밀려와 뿌듯하기도 하다. 극과 극의 감정이 공존한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가족과 친구들이 그 열정에 응원을 시작하는 모습에서 나도 갤러리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존중받고, 응원 받는 인간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지내왔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미술계의 1차 시장인 갤러리가 나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끓어오르는 피를 분출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무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모두가 갤러리 큐레이터 일을 반대했다. 마치 가수가 되려는 자녀를 열렬히 반대하는 모습과 흡사할 정도였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 예술 사랑으로 자리매김 누군가의 추천이나 도움에 전혀 기댈 곳이 없었기에 소위 맨땅에 헤딩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헝그리 정신만이 살길이었다. 하필 가장 추운 날씨에 처음 일하게 되었던 그때는 그 어느 겨울보다 혹독하게 추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갤러리에서 쭈그려 앉아 화장실 바닥을 닦던 시간, 얼음 같은 물에 손을 떨며 손 씻던 순간들도 행복했다. 홍보를 해보겠다고 무작정 신문사를 돌아다녔던 일, 싸늘한 기자들의 시선에 긴장감을 해소하고자 청심원을 먹고 웃음으로 일관하며 전시 좀 봐달라고 머리를 조아렸던 일, 그 결과 일간지 주간지 모두 통틀어 20개 이상의 매체에 전시 기사가 나갔고,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온 분에게 처음 작품을 판매했던 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내 인생의 한 장면들이다.

아트페어 현장에서도 열정을 다하다 보니 그곳에서 초롱초롱한 나의 기운을 알아봐준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인연이 얽히고 발전하여 현재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갤러리의 실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가족들에게 일 때문에 바쁘다는 의사표시를 해야 할 때면 괜히 내가 미안한 상황에 놓여 있다가 몇 년이 지난 어느 순간 바쁜 내 시간을 존중하고 미안해하며 오히려 나를 배려해주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잘 하고 있다는 말, 자랑스럽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로 가슴이 뭉클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슈퍼스타K 가 되려면 머나먼 준결승전의 시간을 이겨나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슈퍼스타 K 의 오늘 방송은 힘겹게 얻은 응원과 인정을 잃지 않기 위해 더욱 긴장하고 씩씩한 모습을 보이려 하는 지금의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계기와 동시에 잠시 나를 어루만지도록 해주었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나는 계속해서 더 큰 꿈을 꾸게 된다.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가족들의 가슴에 감동을 주는 미술계의 슈퍼스타 K가 되는 것이다. - 신 민 진화랑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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