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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나의 꿈 나의 길 ④]숨겨진 보석 같은 은둔 고수를 만나다

차가운 도시형 큐레이터보다 친구같은 동반자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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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09호 박현준⁄ 2013.01.14 13:28:22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개월간 이뤄지는 전시… 어느 순간 작품을 보며 감동하고 공감하는 큐레이터가 아닌 기계적으로 ‘해치우는’ 전시장 스태프가 돼버린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온다. 귀신같은 작가들은 어김없이 이를 알아보고 서운함을 토로한다. 깊이 미안함을 느끼고 충분히 이해하는 것은 개인전은 작가들에게 결혼식과 같은 마음일 테니까. 나에게는 일 년에 수 십 차례, 더 특별할 것도 덜 중요할 것도 없는 일상의 반복이자 처리해야 하는 업무 중의 하나지만 정작 작가에겐 그간의 치열했던 과정을 보여주는 한 번의 발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성하고 다잡으며 일하는 동안 때로는 인간적으로 때로는 스승으로 내편이 되어준 작가들도 있고, 영영 놓쳐버린 사람도 있다. 지난 수년간 크고 작은 전시를 하며 알게 된 많은 작가들, 관계자들은 지금 돌이켜 보면 더없는 재산이 됐다. 소위 말하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빤한 미술계’라는 수식이 무색할 만큼 일을 하면 할수록 훌륭한 작가도 많고 존경스러운 관계자들이 정말 많음을 느낀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가나 기획자는 많지만 숨겨진 보석 같은 ‘은둔 고수’를 만나는 것은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큰 기쁨 중 하나다.

나이 많고 적음을 떠나, 그들이 보이는 여유와 관조는 단단함을 넘어 내공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분들을 만날 때면 닮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세상이 이런 분들을 빨리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든다. 그런 사사로운 마음들이 어느새 나에게는 좋은 작품을 고르는 하나의 기준이 돼버렸다. 물론 세상 어디에도 좋은 작품, 나쁜 작품이라는 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이게도 그저 내 귀에 꽂히는 노래가 있듯이 내 마음에 꽂히는 작품들을 추려내는 데 조건이 더해진 것뿐이다. 결국 좋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각자에게 달려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조언을 구하시는 분들에게는 내 경우를 예로 들어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곤 한다.

첫째는 avant-garde(아방가르드). 많은 분들이 ‘아방하다’ 라고도 표현하는데 새로운 시도를 일컫는다. 전에 없던 형식이나 새로운 화제, 신선한 소재 등이 기존의 작품들과 차별화 될 때 시선이 가기 마련이다. 둘째는 Contemporary(컨템포러리). 동시대성이다. 제아무리 새로운 시도라 해도 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누구도 얘기하지 않았던 현상을 수면위로 올려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매개가 되어 주는 작품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마지막으로는 작가의 카리스마이다. 고독한 예술가의 카리스마가 아니다. 지속적으로 작품을 해나 갈 근성이 있는 작가인가 하는 질문이다.

좋은 작품 고르는 안목 넓히는 계기 마련 관심이 가는 어떤 작가의 다음 작품이 어떻게 발전해 갈 지 궁금해진다면, 외부의 어떠한 물리적 고달픔에도 꾸준히 작업을 해나갈 수 있는 저력과 성실함이 바탕이 된 작가인가 하는 질문은 앞의 두 조건을 차치하고라도 반드시 필요한 기준이라 생각한다. 한 개인으로서 보여주는 진정성과 인간적인 배려, 존중이 곧 성장의 밑거름이라 믿기 때문이다. 가끔은 철저한 데이터베이스 보다 함께 고민하며 나눈 시간이 더욱 가치를 발하는 순간이 온다고 믿는다. 새해를 맞아 이제 6년차 경력자가 되었건만 날마다 얼마나 모자란 사람인지 깨닫는다. 초보 아닌 초보 큐레이터의 새해 바람은 세련된 카리스마를 내뿜는 도시형 큐레이터가 되기보단 같이 공감하고 깊은 위로가 되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 고경 갤러리 산토리니서울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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