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 앞마당에 '개 같은 형태'의 조각이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마치 제프 쿤스의 조각을 연상케 하는데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브론즈로 캐스팅한 대형 조각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작품의 이면에 날카로운 현실 비평을 가미해 대칭적인 놀라운 세계를 제시한 김홍석(49)의 작품이다. 3월 7일부터 5월 26일까지 개인전 '좋은 노동 나쁜 미술'전에 출품된다. 김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미술, 겪었던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이야기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며 "작품을 통해서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즐거워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필연적인 문화 번역의 현상에 주목해 온 작가는 번역과 차용, 공공성과 개인성의 문제를 조각과 회화,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의 작업으로 다루어 왔다.
이 과정에서 매체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작품의 가치나, 작가의 존재와 결과물로서의 작품 사이에 놓인 무수한 여백에 주목한다. 이후 현대미술의 관심 영역 밖이던 윤리의 문제에 대해 질문한다. 또한 현대미술에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작품을 지적하고 작품으로 선보인다. 자신의 작업을 위해 외부의 조력자들을 활용해 비용을 지불했지만 결과적으로 작가의 이름만 전면에 나서는 불투명한 현실, 예술가들의 거짓말을 왜곡되게 만드는 것을 적나라하게 비튼다. 전시의 제목인 '좋은 노동 나쁜 미술'(Good Labor Bad Art)은 서로 다른 두 영역이 윤리적으로 가치 평가하는 의외성을 제시한다. 네 개의 단어를 구분 없이 나열함으로써 차별화된 영역들 사이의 잠재적인 공간을 만든다. 또 그것들의 교환과 공존의 가능성을 탐구해 온 작가의 작품세계를 함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현대미술 ‘소외’ 작품에 대한 지적과 성찰 이번 전시에서는 현대무용가와의 협업이라 주장하지만 다만 그의 노동을 감소시키기 위해 전시용 조각으로 만들었다는 '미스터 김'이 출품된다. 이밖에 위태롭게 쌓아 올린 종이 상자와 낡은 침낭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겁고 값비싼 레진으로 돼 진짜와 가짜의 혼돈을 주는 '기울고 과장된 형태에 대한 연구-LOVE' 가 관람객들을 놀라게 한다. 공공미술에 대한 작가의 작품 제안서이자 매뉴얼을 보여 주는 '공공의 공백' 등이 함께 전시된다. 작가는 속임수를 쓰는 트릭스터와 같이 모순되고 역설적인 태도로 순간 순간마다 농담을 걸어오지만, 그 심연에는 우리의 현실과 현대미술을 존재하게 하는 상황에 대한 신랄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김홍석 작가는 서울대 조소과와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현재 상명대학교 공연영상미술학과 전공교수로 있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2007년 광주 비엔날레, 2009년 후쿠오카 트리엔날레 등 다수의 국내외 비엔날레에 단골로 참가해 '비엔날레 작가'라고 불릴 만큼 해외 큐레이터들이 주목하는 작가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