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미국 출신의 젊은 작가 스털링 루비(41. Sterling Ruby)가 스프레이 회화 연작 및 도자기 브론즈 조각 작품인 Basin 시리즈, 그리고 골판지 콜라주 작품을 4월 11일부터 5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 펼쳐 놓는다. 전시장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캔버스는 스프레이페인트를 겹겹으로 중첩시켜 만들어낸 색 면들이 마치 환영으로 채워진 대기를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화면을 보여준다. 구체적인 형상이나 오브제도 없다. 작가가 살았던 미국 LA 갱들이 출몰했던 슬럼가에서 보았던 유리창에서 얹은 이미지이다. 매일 저녁 스프레이로 칠해진 도심이 아침이면 하얀 페인트로 다시금 칠해지는 것을 본 것이다. 세세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가 바라본 현대사회의 풍경화를 그 만의 시선으로 풀어낸 것이다.
루비의 작품 속에는 아름다움이나 형이상학적인 의미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이 생활하던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버려진 물건들을 손으로 주물어 만들어낸 수조처럼 만든 공간에 아무렇게나 집어넣는다. 멀리서 보면 특별한 형태를 하고 있는 모습이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마치 부서진 잔재들을 모아놓은 무덤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내 작품들은 재료나 기법에서 서로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모두 사회학적으로나 역사학적으로, 자전적으로 일맥상통 한다"고 설명했다. 작품들 중에는 커다란 골판지와 천 조각들로 기워진 콜라주 작품이 눈길을 모은다. 이 골판지들은 작가의 작업실에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었던 것이나, 이 골판지 표면에 묻어있는 발자국, 먼지 등을 작가만의 새로운 해석으로 작품으로 선보이게 된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먼지나 버려진 사진들 속에서 발견한 것은 교도소의 모습을 담은 오래된 장면이었다. 루비는 이 폐쇄된 공간을 현대에서 볼 수 있는 고고학적 장소로 규정했다. 사회에서 격리된 공간이지만 또 다른 발전을 이루어내는 독특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한 것이다.
거대한 대야처럼 보이는 도자기에 금이 가거나 부서지고 터진 도자기 조각들을 담아 놓은 듯 한 최신작들도 선보인다. 이번에 선보인 도자기 시리즈는 "12년 넘게 도자 작업을 진행했는데, 최근 새로운 형식으로 변화한 것 이다"며 "나에게 도자기 작업은 심리치료이고 치유의 의미를 가져다준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대표적 작품들은 시각적 표면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재료와 그것이 지닌 물성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