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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만으로 살기 힘든 화가의 자화상, 정직성의 ‘어떤 조건’

한국에서 화가로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적 고뇌 담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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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23호 왕진오⁄ 2013.04.28 20:59:02

한국에서 화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치열한 생존의 문제인지를 말보다는 붓의 커다란 흔적과 캔버스에 굵은 선으로 그려낸 그림들이 인상 깊게 눈에 들어온다. 도시, 회화, 추상이라는 세 가지 화두를 모티브로 도시가 가진 공간성에 대해 탐구하는 정직성(37) 작가의 그림들이 걸린 강남구 청담동 주택을 개조한 전시공간에서 바라본 첫 느낌이다. 정 작가의 12번째 개인전 ‘어떤 조건’과는 사뭇 상충되는 넓고 안락한 주택가에 위치한 전시장에 놓인 그의 그림들은 추상으로 그려낸 우리 사회의 현실과 이면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에게 ‘어떤 조건’은 다름 아닌 새로운 작업실을 구하기 위해 서울 외곽과 수도권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바라봤던 현실세계의 공간의 이미지들이다.

500에 30이라는 조건을 가지고 찾아다닌 도시 공간은 전업 작가로서의 제한된 경제력과 작업을 원활이 하기 위한 작업 환경을 찾기 위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화가로서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이 겪고 있는 주택난과 마찬가지로, 작가에게도 안정적인 작업실을 구한다는 것은 생계와 직결된 현실이다. 하지만 녹녹치 않은 삶으로 인해 그림을 그리기 보다는 예산에 맞는 공간을 찾아 돌아다녀야 하는 것이 한국에서 화가로서의 삶이 그리 여유롭지 않다는 사실도 상기시킨다. 과거 ‘주택’ 연작을 통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연립주택이나 복잡한 골목길 등 무질서해 보이는 도시 공간을 나름의 회화적 질서로 구현하는데 집중한 작가는 2009년 이후 파괴와 창조, 정돈과 무질서가 공존하는 도시의 내밀한 작동 방식을 추상회화로 그려냈다. 이번 전시에는 작업실을 구하기 위해 보냈던 시간에 목격했던 반지하, 창고 등과 같은 공간들의 특성을 추상적으로 집약시킨 신작 드로잉과 유화 30여 점이 함께한다. 회색빛 스프레이가 난무하는 작품들은 도시의 거대하고 개방적인 구조들을 시원스럽게 드러냈던 전작들에 비해 도시 주변부에 숨어있는 폐쇄적 공간들의 구조들을 드러낸다.

역동적인 붓놀림이 특징인 정직성의 추상회화는 견고한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고 다시 정형화되는 과정을 반복하는 도시와 그 속의 현대인들의 경험하는 단절과 불안을 예술가의 비판적 시각으로 훌륭하게 표현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자신의 생생한 경험으로 날 것 같은 느낌을 가져와 붓으로 그려낸 정직성의 회화는 보이지 않는 어떤 세계를 표현하는데 적합하다는 평가와 함께 삶의 무게가 치열하게 녹아 있는 우리시대 화가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전시는 4월 26일부터 5월 25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이유진갤러리에서 펼쳐진다. 02-542-4964.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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