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캔버스에 이름 모를 들풀들이 자라고 있다. 은색의 바탕 위에 흰 꽃, 목단과 목련이 활짝 피었다. 왠지 모를 깨끗함과 순수함 그리고 생명이 샘솟는 기분이다. 단순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화면에서 소중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생명을 주제로 버려진 풀 등에 대한 조형적인 맛이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해요. 그리고 우리 옛것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우고 싶어요. 하찮은 것들을 조명하고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말이죠. 동양적 여백을 살리며 작품에서 동양화적 느낌을 찾고자 연습 중이에요.” 서울 대흥동 작업실에서 만난 김태화 작가는 버려진 풀이나 우리가 무심코 잊고 지나치는 옛것 그리고 생명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이미 죽은 풀이나 오랜 세월 잊혀진 우리문화는 다르지만 생명을 잃고 그리고 잃어감에 있어 같다고 생각했다. 이에 그림을 통해 생명을 부여하고 소생시키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의 작업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고 느끼지 못하는 생명이기도 하다. “시골 출신으로 살다보니 하찮게 버려진 풀 등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하게 됐어요. 풀은 많이 봐왔고 나와도 잘 맞는 것 같아요. 넝쿨이나 갈대 형상을 단순화 시킨 작업도 했었는데 최근에는 그 형태가 변하기도 했죠. 풀 작업과 함께 민화에 대한 작업을 시작했어요. 서양화를 그리지만 동양화적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죠. 캔버스에 유화로 먹의 느낌을 내려고 연구했고 지금도 진행중이에요.”
고교시절 사학에 관심, 전국 꽃 탐구 풀을 그리는 걸 좋아한다는 그는 풀이 꽃보다 매력이 있다고 한다. 흔히 생각하면 꽃이 더 예쁘고 보기 좋을 텐데 그만의 이유가 있었다. 꽃은 많은 사람이 그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그는 민화에 대한 작업을 하면서 목단이나 목련을 그리는데 현대화적 느낌으로 그리고 있다. 생명이라는 테마는 여전하면서 소재만 바뀐 것이다. 옛것에 생명력을 다시 부여해보자는 취지로 동양화에 대한 낮은 가치를 다시금 돌아보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현대미술작품들과 비교하면 동양화나 우리 것에 대한 가치가 너무 낮고 쉽게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아쉬움이 컸어요. 이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리고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제가 풀을 그리며 생명을 얘기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죠. 또 풀은 이 시대 소외된 인간이나 등한시 되는 것들에 비유해서 표현해요. 캔버스에 옮겨졌을 때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모습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모두 각자만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얘기를 전하죠. 민화 작업을 통한 꽃은 생명력보다 소멸되고 있는 우리 옛것의 소생 의미를 담았어요.”
그는 풀을 비롯해 매화나 목련, 목단 등을 그리는데 직접 현장에서 촬영을 해온다. 버리진 풀들은 작업실로 가져와 그리기도 하는데 꽃은 그 시기가 지나면 모두 시들고 변하기에 가져와서 그리기가 힘들어 사진으로 촬영을 해온다. 특히 고교시절 사학과가 꿈이기도 했던 그는 국내 많은 곳을 돌며 꽃이 유명한 지역은 대부분 알 정도라고 한다. 고등학교 때 미술에 대한 생각이 크지 않던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그림을 그려보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받아 시작했는데 얼떨결에 미술부까지 들어갔다. 그리고 방학 때 서울로 올라와 미술학원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며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당시 미술학원은 대부분 대학생들이 운영하는 화실이었어요. 그렇게 그림을 하기로 마음먹으며 군대 제대 후 제대로 그림을 그려보자 했고 서울로 올라와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15년 정도 2명의 선배들과 함께 미술학원을 운영했죠. 사실 미술학원을 하면서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는 힘들었어요. 그러다 함께 하던 선배들도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자 했고 미술학원을 다른 분이 맡으면서 2000년 중반부터 정말 나만의 작업을 하게 됐죠.”
그의 그림은 서양화 재료를 쓰면서 동양화 여백과 화면의 맞춤과 구성 등 단순해보이지만 생각과 고민의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바탕은 캔버스의 흰 바탕을 그대로 하기도 또는 펄(은색)을 주로 쓴다. 펄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기도 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아크릴과 유화를 모두 사용하는 그는 둘의 장단점이 있어 가벼운 느낌과 깊이를 나타낼 때 등 때에 따라 맞춰서 쓴다. 풀에서 생명의 신비 탐구, 맛과 멋 살려 평면회화인 그의 그림은 원근감이나 입체감이 나타나기도 한다. 밑작업을 먼저 하고 다시 덮고 위에 또 그려 입체적 느낌이 나도록 했기 때문이다. 컬러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중첩되는 작업으로 시간이 더 소요되지만 깊이감이 있어 잔잔하면서도 차분하게 동양적인 느낌을 나타낸다.
풀은 평생 그려나가며 민화 작업도 당분간 병행하겠다는 그는 아직 우리 옛것의 맛을 살리는데 부족하다며 옛 그림이 가진 맛과 멋을 찾고 다가가고자 노력중이다. 그림은 그냥 일상이라는 그는 하루라도 작업실에 들리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할 정도라고 한다. 그림에 많은걸 담을 수는 엇지만 해보고 싶은 것들을 표현하고 알리고 싶다며 풀과 민화를 통해 하찮고 잊혀진 것들을 조명해주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돌아보고 생각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 김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