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다. 적은 사람을 오래 속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없다. 거짓을 논할 때 떠오르는 말이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다. 만고불변의 진리가 다시 떠오른 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5월15일 직권면직) 덕이다. 박근혜 대통령 방미 수행 중 성추행 의혹과 홀로 귀국 후 가진 기자회견의 진정성이 궁금했다. 불미스러운 성추행 의혹은 차치하고 기자회견에서 무얼 말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엉덩이를 만졌든 허리를 감쌌든, 팬티를 입었든 걸쳤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잘못을 뉘우친 사과가 급선무였다. 음모니 날조니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일그러진 처신이 문제다. 제대로 된 국가관과 공직자 윤리는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윤창중 파문은 벼슬의 무상함 일깨운 국격 실종 박 대통령 첫 해외 순방은 결국 국격(國格)이 먹칠됐고 급기야 대통령 사과를 불렀다. 윤 전 대변인 외 일부 방미 수행단의 부적절한 처신도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에 대한 초유의 검찰조사가 별도로 진행 중이다. 대한민국 심장이자 컨트롤타워가 어처구니없게 망가졌다. 최고 권력자의 인사권과 청와대 위기관리능력 부재 논란도 한창이다. 그는 뉴스와 사건을 좇는 기자 출신이다. 이제 역으로 기자들에 좇기는 신세가 됐다. 방미 수행 중 이역만리 동포들에 친밀한 스킨십으로 다가갈 수 없었는지, 언론계 선배로서 와인한잔 쏘며 후배 기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게 그리 어려웠는지, 대변인 매뉴얼은 제대로 숙지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윤창중 파문은 ‘벼슬의 무상함’ 을 일깨워 준다. 원래 논객과 벼슬은 함께하기 어렵다. 견제와 검증의 관계다. 그는 자신의 과거 칼럼에서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권의 얼굴’이라 했다. 박근혜 정부 첫 대변인에 임명돼서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한미동맹 60주년 외교성과를 한 방에 날렸다. 그는 몇 개월 사이 롤러코스트를 탔다. 대통령 당선인 수석 대변인 겸 인수위 대변인으로 ‘전격 발탁’ 된 후 138일 만에 ‘전격 경질’ 됐다. 대통령 취임 후 75일 만의 ‘중도 하차’다. 개인적으로 벼슬의 무상함이겠지만 국가적으론 초대형 스캔들이자 엄청난 손실이다. 스스로 수신하고 되돌아보지 않은(위기지학 爲己之學) 결과다. ‘부여된 역할’ 따라 바꿀 사람·놔둘 사람 분간해야 ‘부여된 역할’ 이란 게 있다. 세상에서 제일 안 되는 게 사람 가르치는 일이다. 사람은 대개 자기가 생각한대로 한다. 배운대로 안 한다. 학습은 보조다. 억지로 어떤 일을 하게 할 수 없다. 날 때부터 주어진 역할이 있다. 시험관 아기의 대부 서울대병원 문신용 교수는 세상에서 제일 뜻대로 안 되는 게 사람과 세포라고 주장한다. 문 교수는 1985년부터 현재까지 시험관아기를 5만여명 탄생시켰다. 모든 생명체와 세포는 자연에서의 위치와 역할이 날 때부터 정해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선택할 수 없고 부여 받는다는 것이다. 일련의 윤창중 파문은 그에게 부여된 역할이 잘못됐음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올해 영국을 국빈 방문한다.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초청이다. 최근 부임한 지 1년도 안 된 영국대사(박석환)의 갑작스런 교체에 말들이 많다. 특별히 잘못도 없는데 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대학후배면 차별을 받아도 되는 것인가. 윤창중 전 대변인은 예외지만. 바꿀 사람과 놔둘 사람 잘 분간하는 게 (지인지감 知人之鑑) 최고 인사권자의 핵심 덕목이다. 제2, 제3의 윤창중이 나오면 나라 망한다. 나라의 불행은 말을 타고 오고 걸어서 나간다. - 김경훈 편집인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