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5호 왕진오⁄ 2013.07.15 11:33:53
161㎞ 강속구·통산 124승을 자랑하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40), 야구만 할 줄 아는 그가 예술에 빠졌다. 스포츠스타의 야구인생과 조형예술이 접목된 새로운 형태의 전시가 미술계에서 주목 받고 있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1호로 개인 통산 124승을 기록하며 아시아 출신 선수 최다승 신기록을 세운 ‘코리안 특급’ 박찬호. 그의 화려한 족적과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문화사적 관점에서 되짚어보고, 조형예술과 스포츠 컬렉션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전시 장르를 개척하는 전시다. 박찬호는 7월 11일부터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더 히어로-우리 모두가 영웅이다’란 제목으로 자신의 야구인생과 미래의 꿈을 펼쳐 놓고 있다. IMF 금융위기 시절 국민에게 희망을 준 박찬호의 야구 역정을 통해 그의 꿈과 고독, 영광의 순간들을 돌아보게 된다. 권오상과 강익중, 김태은, 뮌(MIOON), 송필, 유현미, 이배경, 이현세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 박찬호가 물감을 던져 만든 작품, 야구인생을 함께 한 야구용품 등으로 꾸며진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조각가 권오상이 만든 ‘무제의 박찬호’가 서 있다. 박찬호는 “고교시절부터 미국 프로야구 LA다저스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사진을 붙여 만든 것”이라며 “당시 당당함과 자신감이 들어있는 모습을 권오상 작가가 유니폼을 통해 풀어냈다”고 소개했다.
사진가 유현미의 11분25초짜리 영상작품은 박찬호가 직접 참여해 눈길을 끈다. 사진, 회화, 영상이 결합한 것으로 남루한 야구복을 입은 채 왕관을 쓴 박찬호의 모습은 왕자와 거지의 두 가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려한 성취와 영광에 가려진 박찬호의 고독과 갈등을 담고 있다. 작품에 등장한 그의 손에는 공이 없다. 박찬호는 “집착을 버리기 위함”이라고 답했다. “공은 내가 언제든지 잡고 싶을 때 잡고 놓고 싶을 때 놓아야 집중력이 생기는 것 같다”는 것이다. 박찬호 “야구도 예술이란 것을 알았다” 박찬호가 직접 만든 작품 ‘투화(投花)’도 주목할 만하다. 박찬호가 캔버스를 향해 컬러볼을 던져 만든 작품으로 추상표현주의의 거장 잭슨 폴록(1912~1956)의 액션 페인팅을 연상케 한다. 박찬호가 조카 박성호와 함께 어린 시절을 재현한 영상은 박대민 CF감독의 도움을 받아 제작했다. 여섯 가지 볼 종류를 박찬호의 손을 빌려 석고로 캐스팅한 설치물, 손 모습을 X레이로 찍은 필름 등도 걸려있다. 박찬호가 주로 사용한 체인지업과 패스트볼, 커브 등의 그립을 볼 수 있다. 박찬호의 정면과 측면 투구 자세와 정면 타격 자세를 촬영해 여섯 장의 투명 필름에 인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더 플레이어’, 만화가 이현세가 박찬호를 모델로 한 단편만화, 꿈을 주제로 한 3인치(7.62㎝) 크기의 아이들 회화와 우리 강산, 포석정을 형상화환 강익중의 오브제 등 다양한 작품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박찬호 야구 컬렉션으로는 메이저리그 승리구 124개를 비롯해 유니폼 50여벌, 모자 50여개, 배트 10자루, 헬멧 4개, 야구화 2켤레, 글러브 20여개, 기타 야구기념품 100여점 등 360여점이 전시됐다. 박찬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야구도, 스포츠도, 모두 예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동안 일구일구를 던지는 것이 예술적 감각이었다”며 “나도 여태까지 예술을 하고 있었구나, 뭔가 창의력을 갖고 노력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전시를 앞두고 지난 10주간 예술경영 강의를 들으며 예술에 대한 이해력이 생겼다고. “예술경영 강의를 통해 삶이라는 게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다. 육체적인 생활방식에서 이제는 뭔가 감각적인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술 세계에 대해서도 경험하고 느끼게 됐다. 영화와 음악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예술을 통해 감각이나 의식을 갖게 되면 풍요롭고 즐거워질 것이다.” ‘영웅’이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우쭐대기도 하고 영광스러웠지만, 사실 부담스럽고 불편했다”고 고백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에게 영웅이라고 불러줬던 모두 분은 자기 안에 영웅이 있었던 것 같다. 박찬호나 박세리의 경기를 보면서, 지금은 류현진을 통해 용기와 꿈,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 영웅이라고 생각하면 서로에게 좋은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승리에 대한 집착도 많았지만, 이 역시 늘 괴롭고 불편했다. “행복해지고자 이기고 싶었는데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이 불안했고, 또 다른 승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나고 나니 너무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라며 “승자나 패자 모두 땀과 열정이 묻어있는 스포츠의 모습을 이번 전시에 풀어냈다”고 덧붙였다. 전시 기간에 박찬호와 지인들의 애장품을 모아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아름다운 자선 경매 바자’를 연다. 박찬호의 도슨트 투어와 강연회도 예정됐다. 전시 수익금 일부는 ‘사랑 나눔 프로젝트-베트남 어린이 심장병 수술 돕기’에 사용한다. 베트남 어린이 9명이 입국해 부천 세종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전시는 11월17일까지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