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순간을 잡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아서다.” 전쟁을 싫어한 종군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1913∼1954)를 상징하는 사진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은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전선에서 돌격하려던 그의 친구가 머리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병사는 순교자처럼 팔을 벌리고 찡그린 표정으로 무너져 내리기 직전의 순간을 카파가 포착했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애인이었을 그가 막 세상과 작별하는 찰나의 시간을 렌즈로 담아낸 것이다. 그의 사진은 늘 우아하면서도 비장하다. 마치 풍경화를 흑백의 담백한 붓 터치로 그려낸 듯하다. 로버트 카파(본명 앙드레 프리드먼)는 1913년 10월 22일 헝가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31년 정치적 박해와 반유대주의자들을 피해 베를린으로 피신한 후 사진 에이전시 데포트의 암실조수로 취직하면서 사진과 만나게 된다. 이후 로버트 카파로 개명한 그는 스페인 내전부터 노르망디 상륙작전, 인도차이나 전쟁 등 20세기 현대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쟁터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자기희생과 위험을 무릅쓴 취재정신의 대명사가 된 ‘카파이즘’도 그의 치열했던 작가정신의 산물이다. 그는 치열했던 삶만큼이나 유명인들과 당대의 교류도 활발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윈 쇼, 존 스타인벡과 함께 전쟁터를 누볐고, 피카소와 마티스 등 화가들과 예술적 교감을 나눴다. 또 스페인 내전 당시 탱크에 치여 숨진 첫사랑 게르다 타로와의 뭉클한 사랑이야기도 유명하다. 뛰어난 외모와 예술가적 풍모 때문에 세계적인 여배우 비비안 리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고, 잉그리드 버그만의 청혼까지 뿌리친 일화도 있다. 그의 치열한 사진 정신은 훗날 영화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반부에 나오는 전투장면은 스필버그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찍은 카파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1954년 5월 25일 카파는 라이프 잡지의 다른 사진작가를 대신해 한 달 동안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기로 했다. 전쟁을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고 프랑스군은 후퇴하고 있었다. “단 한 곳이라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난 무조건 그곳에 갈 거야”라던 카파는 호송차량이 잠시 멈춘 사이, 길에서 벗어나 병사들과 아주 가까이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는 대인지뢰를 밟고 숨졌다. 베트남에서 죽은 최초의 미국 종군 기자였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아서다”. 마흔 한 살의 나이로 세상과 작별했지만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세상을 살았던 예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로버트 카파가 남긴 명구는 단지 사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당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로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총알이 나를 빗겨가 물을 때리고 있었고 나는 가장 가까이 몸을 숨겼다. 좋은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 이르고 어두웠다. 하지만 잿빛 하늘은 군사들이 히틀러의 반침략 작전이 가져온 초현실적인 상황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1944년 6월 6일 이른 아침,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2000명의 군사들이 ‘오마하 해변’이라는 작전명으로 미 육해 합병군이 프랑스 쪽 노르망디 해변에 상륙하는 것을 카메라에 담은 전설의 사진가 로버트 카파가 현장의 분위기를 설명한 것이다. 카파가 담은, 유럽을 위한 운명의 전투사진은 흥분한 조수의 인화 과정에서의 실수로 거의 대부분의 필름이 망가졌다.
베트남전쟁서 전선 누비다 아깝게 별세 겨우 남은 10장의 사진은 오마하 공격시 최악의 시간을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게 기록한 유일한 사진이었다. 전쟁을 싫어한 전쟁 그의 사진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전쟁에 대한 혐오가 내포돼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저널리즘 사진의 속성인 충격적인 고발과 폭로로 흐르는 것을 막아주었고, 그가 신화로 자리 잡는 데 일조했다. 누구나 사진기를 휴대하고 다니는 시대, 그 서막의 선봉에서 카메라를 들고 전쟁터를 누볐던, 또 끝내 그 전쟁터의 한가운데서 짧은 삶을 마감한 로버트 카파. 그는 현대 사진역사의 새 경지를 개척했으며, 평생지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비드 시모어와 손잡고 다큐사진가 모임 ‘매그넘’을 만들면서 저널리즘 사진의 지존으로 우뚝 섰다.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거장 카파의 사진들이 한국 전시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로버트 카파 탄생 100주년 사진전’(robertcapa.co.kr)이 8월 2일부터 10월 28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다. 로버트 카파 탄생 100주년과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기념해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로버트 카파 기념재단인 뉴욕 국제사진센터가 소장한 160여점의 오리지널 프린트가 전시된다. 또 로버트 카파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과 로버트 카파의 다양한 소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