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가 화제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연출까지 5년의 준비기간이 걸렸다는 이 영화는 감독의 명성만큼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으며 800만 관객을 넘어 1000만 관객을 모으기 위해 힘찬 질주를 벌이고 있다. 이렇듯 오랜 시간과 노력을 통해 탄생한 작품을 단순히 ‘좋다’, ‘나쁘다’, ‘재미있다’, ‘재미없다’로 평가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이 작품은 관람 후 극명하게 갈리는 호불호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곳곳에 장치된 힌트들이 마치 감독의 의중을 알아채 달라는 노골적인 몸짓 같아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음을 고백한다. 반면 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를 상업성과 문학성을 고루 갖춘 근래 보기 드문 걸작이라 호평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영화가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관객이 영화를 보는 동안 공감대를 느끼고 감독의 의도를 유추해 볼 수 있는 ‘개입의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20세기 미국 포토리얼리즘(또는 하이퍼리얼리즘)의 대표작가인 척클로스는 “작가가 의도한 바와 상관없는 잣대로 작품을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의도주의(intentionalism) 비평의 신봉자입니다. 이 사람의 의도는 무엇이었는가, 그 의도는 제대로 전달되었는가? 무엇이 이슈인지는 작품 자체에서 주워 모을 수 있으니, 작가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한 번 알아내 보려고 해보세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작가와 관람객간의 소통을 위해서는 작가가 의도하는 것들을 관람객이 스스로 인지할 수 있도록 작품 곳곳에 개입의 여지를 두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현대 미술은 어떤 방법으로 관람객에게 ‘개입의 여지’를 제공하고 있는지, 관람객은 작품에 얼마만큼 개입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표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의 내용과 형식이다. 그 다음이 장소성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르게 말해 접근성 또는 친밀성으로 바꿔 말할 수도 있겠다. 근래에는 많은 의외의 장소들 (예를 들면, 자동차 전시장, 옷가게, 카페 등)에서 미술작품이 전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미술작품이 대중의 삶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고 그렇게 되어 가는 중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하는 젊은 작가들을 위한 공간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순수 작품 전시만을 위한 공간은 운영의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인지라 뜻을 가진 한 두 명의 개인이 운영해 가기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반드시 전시만을 목적으로 한 공간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종류의 공간을 작가에게 제공해 주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꺼이 내어준 장소는 작가들의 손에 의해 물리적 공간 자체가 예술 작품으로 변화하는 경험을 하게 될 수 있다. ‘손대지 마시오!’ 가 능사 아니다 더불어 관람자는 일상에서 만나는 예술작품을 통해 수월하게 작품을 인지하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동시에 작가들은 장소에 대한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하루 평균 3000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전시장에 작품을 걸면서 작품에 손자국 남을까 전전긍긍 하는 작가들을 볼 때면, 오지 산간 비바람 치는 파도 앞에 벽화를 그려놓고 어떻게 발길을 떼고 돌아 왔는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작가는 작품의 전시를 준비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장소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며, 이는 작품의 내용과 형식, 심지어 액자의 형태와 재질에도 반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린이 관람객이 많은 전시공간이라면 ‘훼손에 대한 방어’ 보다는 ‘체험을 통한 교감’을 목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관람객의 연령, 지역, 방문자 수에 따라 형식의 변화를 꾀 할 수 있는 프로작가로서의 면모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며, 작가와 관람자를 위한 공간 지원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 그리고 원활한 전시운영을 위한 책임감 있는 관리가 수반되는 것이다. 모든 예술 작품이 그러하듯 관람자가 작가의 의도를 모두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관람자와의 소통을 원한다면, 작가는 자신이 지금 어느 곳에 어떤 관람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누구보다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작품과 관람자가 거리를 두어야 할 때와 손을 맞잡아야 할 때, 눈을 감아야 할 때와 오감으로 경험해야 할 때를 판단하고 자신의 작품이 온전히 관람자의 가슴에 가 닿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늘 염두 해야 할 것이다. - 고경 산토리니갤러리서울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