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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 종묘스토리 - 21]인심 얻고 하늘 도움으로 두만강 강물을 갈랐다

조선 태조 증조부, 태조실록 총서에 당시 상황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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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41호 박현준⁄ 2013.08.26 11:25:15

산성 안을 다 둘러보아도 여진의 군사는 보이지 않았다. 늙고 연약한 부녀자들만 있었다. 익조는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약속한 날이 지났어도 오지 않는 여진의 군사들. 익조는 백성이 기다리는 알동(斡東)으로 급히 말을 몰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익조는 심하게 갈증을 느꼈다. 마침 길에서 한 노파를 만났다. 노파는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손에는 한 개의 주발을 들고 있었다. 익조는 물을 청했고, 노파는 주발을 깨끗이 씻어 물을 떠 올리며 말했다. 여몽 연합군 일원으로 일본 원정 “공(公)은 알지 못합니까? 여진인들은 공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장차 공을 없애려고 군사를 청하러 간 것입니다. 사냥을 핑계댄 것입니다. 이들은 3일 후에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귀공(貴公)의 위엄과 덕망에 감읍하기에, 감히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익조는 조선 태조의 증조부다. 이름은 이행리. 함경도 덕원에서 태어나 아버지 목조에 이어 천호(千戶)를 하고 있었다. 익조는 아버지 목조처럼 이웃한 현성(峴城)에 영향력을 미쳤다. 여몽 연합군의 일원으로 일본 원정을 다녀온 익조의 용맹함과 지혜로움을 여진인들은 부러워하고 있었다. 특히 고려와 몽골에서의 정치력도 여진인에게는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익조는 1281년 일본 원정길에 고려 충렬왕을 뵈었다. 익조는 “목조가 전주를 떠나 북방으로 간 것은 호랑이의 입 같은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함이었다”고 설명했고, 충렬왕은 “그대는 본디 사족(士族)이니 어찌 근본을 잊겠는가”라고 목조와 익조의 도망을 용서했다.

현성의 여러 여진 천호와 다루가치들은 능력이 뛰어난 익조와 모두 교제하기를 원했다. 천호들은 소와 말을 잡아서 연회를 베푸는 등 예절을 다해 접대했다. 익조도 알동에 오는 천호들은 정으로 대했다. 교류가 계속되면서 익조의 위엄과 덕망을 사모해 좇는 여진인들이 늘었다. 이에 천호들은 “이행리(익조)는 본디 우리의 동족이 아니다. 지금 그의 형세가 계속 뻗어나가니 우리에게 이롭지 못할 것이다. 이웃 여진인들에게 군사를 요청해 이행리를 제거하고 그의 재산을 빼앗자”고 모의했다. 이들은 익조에게 거짓으로 고했다. “북쪽 땅에서 사냥을 하고자 하니 20일 동안 떠나기를 청합니다.” 익조의 허락아래 여진 천호와 다루가치들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자기들의 동조세력을 규합하러 간 것이다. 여진 노파로부터 커다란 함정임을 들은 익조는 황급히 알동으로 돌아왔다. 집안 사람과 백성들에게 두만강 하류에 있는 섬 적도(赤島)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적도는 알동이 있는 경흥부에서 동쪽으로 60리에 있는 적도는 마치 거북이가 엎드린 것과 같은 형상으로 붉은색 바위가 많았다. 여진 병사 따돌리고 두만강 건너 익조가 부인과 함께 산에 올라 보니 알동의 들에는 적병이 벌써 가득히 차 있었다. 그들의 선봉 3백여 명은 거의 뒤를 따라왔다. 익조는 부인과 함께 말을 달려서 적도(赤島)가 바라다 보이는 강의 북쪽 언덕에 이르렀다. 물의 넓이는 수백 미터이고 강의 깊이도 알 수가 없었다. 약속한 배는 오지 않았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상황.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다. 태조실록 1권 총서에는 두만강의 길이 열리는 상황이 묘사돼 있다. “갑자기 강의 폭이 1백여 보 가까이 줄고, 수심도 바닥이 보이게 드러나게 얕아졌다. 익조는 부인과 함께 백마(白馬)에 올라가 강을 건넜다. 백성들도 말을 타거나 걸어서 강물을 건넜다. 뒤따라온 여진 병사들이 강에 도착했을 때는 신비롭게도 강물이 다시 불어 폭이 넓어지고 수심이 보이지 않았다.” 그후 이 신묘함은 1백여 년이 지난 태조 때까지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전해졌다. 사람들은 말했다.”익조를 강을 건너게 한 것은 하늘이 도움이지, 사람의 힘이 아니었다.” 멀리 내다보다 능력과 사려가 깊은 이행리는 훗날 태조에 의해 익왕, 태종에 의해 익조로 추숭됐다. 익(翼)은 사려심원(思慮深遠)을 의미한다. 생각과 사고가 깊고 깊어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 이상주 역사작가 글쓴이 이상주 ‘세종의 공부’ 저자다. 조선왕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전례위원으로 종묘대제, 사직대제, 왕릉제향 전승자다. 세종왕자 밀성군종회 학술이사, 이상주글쓰기연구소(www.이상주글쓰기연구소.kr) 대표다. 지은 책으로는 ‘왕의 영혼, 조선의 비밀을 말하다’, ‘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 ‘공부열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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