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들이 책을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옷을 팔아서 책을 산다, 만약 잉크가 책과 옷에 동시에 묻었다면 먼저 책에 묻은 잉크부터 닦아내고 난 다음에 옷에 묻은 잉크를 처리한다. 만약 책과 돈을 동시에 땅에 떨어뜨렸다면 먼저 책부터 주워라.’ 등등의 말은 유명하다. 심지어 유태인들의 주거지인 게토(ghetto)에서는 헌책방을 찾아 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책을 너무나 소중히 여기기에 읽었던 책은 절대 내다팔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책을 소중하게 여기는 유태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들의 기도서인 토라(Torah)이다. 그들은 기도서(성경)를 읽기 위해서 글을 배운다. 그러므로 그들의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잠자리에서 부모들이 읽어주는 토라를 들으면서 꿈의 나래를 편다. 아이들이 글을 익힌 후에도 매일 30분 정도 아이의 베게머리에서 토라를 읽어주곤 한다. 또한 아이들이 처음으로 그들의 지혜서인 ‘탈무드’를 익힐 때 부모는 반드시 꿀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아이들이 거기에 입맞춤을 하게 한다. 그 이유는 탈무드에 대한 애착을 갖도록 하는 동시에 아이에게 독서가 꿀맛같이 달콤하다는 것임을 가르쳐주는데 있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탈무드와 토라에 이어 유태인들이 중요시 하는 책으로 그들의 역사서인 ‘하가다’가 있다. 그 책에는 유태인들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 이야기는 “우리는 이집트의 노예였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서에도 이렇게 굴욕적인 구절로 시작되는 기록은 없다. 유월절이면 그들의 식탁에는 몇 가지 상징적인 음식을 차린다. 패배의 쓴맛을 곱씹기 위한 쓴 나물, 노예생활 중 먹었던 고난의 떡인 마쪼, 그리고 고난 속에서 신념과 결의가 굳어진다는 의미의 삶은 달걀을 먹고 식후에는 아라자라는 달콤한 음료수를 마신다. 이는 최후의 승리와 해방을 상징한다. 이렇듯 유태인들은 과거의 비참한 노예생활을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직접 체험하고 뼈저리게 느껴 다시는 그러한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이런 식으로 기념하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자녀를 사브라(sabra)라고 부른다. 이는 선인장의 열매라라는 뜻인데, 선인장처럼 역경을 이기고 강하게 살라는 깊은 의미가 달려있다. 우리나라의 부모관은 해병대 스타일과도 같다. 그래서 혹자는 ‘한 번 부모는 영원한 부모’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부모라는 이유로 먹이고 입혀주며, 교육과 결혼까지 시켜준다. 그것도 모자라 평생 고생하며 호의호식 제대로 못하고 모은 재산까지도 자녀에게 물러주고 간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한마디로 자녀에게는 불로소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불로소득이나 다름없는 유산을 지키는 2세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그들 세대는 비록 고난의 삶을 살았을 지라도 자식들만은 무조건 잘 살도록 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신념과 그에 대한 실천이 과연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얼마만큼 도움이 될까.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물질적인 것을 물려주기보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진정으로 필요한 좋은 습관과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주는 것이 부모로서 더 바람직한 역할이 아닐까. 다른 나라들이 승전의 날만을 기념하는 것과는 달리 패전한 날을 기념일로 정한 나라는 세계사를 통틀어 이스라엘이 유일하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발 딛을 자신들의 조국도 없었던 유태인들이 이렇게 번성할 수 있었던 까닭은 유태인의 독특한 가정교육, 즉 독서를 중히 여기고 책을 사랑하는 그들의 작은 실천 속에서 자녀에게 과거의 실패에 대한 교훈을 찾는 방법을 은연중 체득하게 하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의 가정교육은 부존재나 다름없다. 눈앞에 보이는 성적 올리기에 급급하여 자녀를 학원에 보내거나 고액과외 시켜주는 걸로 부모노릇 잘하는 것으로 여긴다. 우리의 가정교육은 강인한 자녀교육은커녕 나약한 자녀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래서야 사랑하는 자녀들이 어떻게 총성 없는 무한경쟁의 글로벌시대를 살아갈 수 있겠는가. - 구병두 건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