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고향언덕에서 발견한 염소의 눈, 그 알 수 없는 신비에 찬 눈빛에 매료되어 그리게 된, 마른 풀을 뜯는 사색의 염소! 그 염소의 눈을 통해 비춰지는 삶의 표정과 때때로 떠올려지는 어떤 생각의 가닥을 잡아 심상적 조형 세계에로 침잠하여 관조의 미학에 접근해 보고자 하였다. 말하자면 구체적인 이미지를 지닌 염소라는 대상으로부터 어떤 인식과 깨달음을 이끌어내고, 이를 토대로 삶의 자세를 그려낸 다음 그것을 다시 구체적인 이미지로 승화시켜 내는 구성이라 하겠다. 염소는 그 옛날 자신을 통째로 태워서 속죄의 제물이 되기도 하였고,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가는 유목문화의 희생양이기도 했던, 이른바 죽어야 사는 창조적 사유개념이다. 그것은 참된 자아를 찾아 새로운 삶을 탐구하는 사유적 성찰의 개념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색의 여행 그리고 묵시찬가, 사유문자, 사유하는 몸짓, 사유하는 갈대, 사유몽유, 사유의 꽃, 사유득리, 새가 만난 염소의 사유, 사유지대, 사유비행, 묵시적 사유 등 일련의 사유에 대한 흐름은 화력 36년을 관류하는 나의 자서전적 고백이기도 하다. 관조와 사유, 그것은 지금까지 나에게 줄곧 따라다니는 화두이다. 오랜 묵상 끝에 결국 언어적 도상인 ‘사유문자’가 나오게 되었고, 그것은 묵시적 특성을 지닌 해독할 수 없는 문자로서 전생의 윤회와 미래에 대한 기억을 문자적 코드로 읽어가는 채집여행이 아닐까.
존재를 담아내는 묵시적 시선과 사유의 표상 염소작품에 등장하는 새는 하늘과 함께 유기체적 관계로 존재한다. 즉, 하늘이라는 절대자의 메시지를 새를 통해 염소에게 전하여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콘셉트다. 조상의 얼굴 속에서 연기구조를 깨닫듯이 모든 생명체는 무한한 시간과 무변의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관계 속에서 생명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유비행’은 자유를 향한 비상, 탈속의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묵시적 사유’는 불가사의한 존재의 아우라를 담아내는 묵시적 시선이며 사유의 표상이다. 이러한 동양적 사유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염소의 시원적 무위성과 관조적 자세는 존재론적 성찰과 근원적 자유를 찾고자하는 열망에 기인한다.
사색의 염소작가 윤여환(59)의 23회 개인전이 10월 16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인사동 그림손갤러리에서 개최되고, 이어서 10월 24일부터 11월 3일까지 대전 둔산동 보다아트센터에서 진행된다. 그의 작업은 염소의 눈을 통해 비춰지는 삶의 여정과 어떤 생각의 가닥을 잡아 인식과 깨달음을 이끌어내고,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표정을 담아내는 구성이다. 그것은 참된 자아를 찾아 새로운 삶을 탐구하는 사유적 성찰의 개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전시회는 그의 사색과 사유에 대한 철학적 시선과 미학적 조형언어를 조망해 볼 수 있는 자리로 마련한다. 윤여환 작가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4차례 특선 수상과 초대작가, 심사위원, 운영위원을 지냈고, 유관순, 논개, 박팽년, 김만덕 등 국가표준영정도 다수 제작하여 초등국어교과서와 중학교와 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도 그의 염소작품과 영정작품이 등재가 되었고 표준영정작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글·윤여환 작가 / 원미정 그림손갤러리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