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의 놓여있는 인물들은 대지의 소리를 들으려 엎드리고,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고, 고개를 들로 저편 너머를 기억한다. 다소 무겁고 우울한 표정의 인물들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내면 깊은 곳의 감성을 드러내며 관객들에게 인간 본성에 대해, 존재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며 인간의 원초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인간 존재에 대한 조형적 물음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조각가 배형경(58)이 10월 18일부터 12월 6일까지 서울 통의동 갤러리 시몬에 펼쳐놓은 '암시'라는 주제의 조각 작품들의 설치 모습이다. 배형경 작가는 서울대학교 조소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아홉 번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기획전에서 꾸준하게 작품을 선보여 왔다. 2010년 김종영 미술관 '오늘의 작가' 수상 작가이기도 한 배 작가는 한국 구상 조각계의 보기 드문 여성작가로서 30여 년 동안 한국 조각계의 비주류로 전락한 표현주의 구상조각, 그 중에서도 인체 조각만을 고집해 왔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출발한 작가는 자코메티와 로댕의 거친 조각 양식을 수용해 인간 내면의 고뇌와 실존의 물음을 끊임없이 표현해 내고 있다. 특히 서구 표현주의와 동양 불교 조각의 요소가 결합해 종교적이고 초월적인 사유의 영역을 넓혀온 것으로 평을 듣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브론즈와 스틸로 제작한 신작 작품이 선보일 예정이며, 전시장 1층 '암시', 2층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3층 '꿈을 꾼다'라는 소제목으로 구성해 관객들에게 다양한 사색의 시간을 제공한다.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