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9호 박현준⁄ 2013.10.21 14:38:18
미래 사회에서 제품의 가치는 디자인이 좌우한다. “디자인은 국가와 기업 혁신의 핵심이며, 서비스와 제품을 시장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주요 요소다”라고 명품학 대가 미셸 슈발리에 파리 도핀대 교수는 말했다. 또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조반노니는 “소비자의 감성과 기대에 부합하는 디자인이 중요하다. 그들은 항상 새롭고 놀라운 것을 열망하고 꿈꾸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해야 한다. 나아가 살아가는 시대와도 잘 어울리는 제품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역사와 문화에 대한 통찰력도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차별화할 수 있는 디자인과 소비자의 감성, 기대, 열망, 꿈에 부합하는 디자인은 어떤 것일까? 그러기 위해 디자이너는 어떤 아이디어로 무장해야 하고, 시대 변화를 어떻게 관찰해야 하고, 역사와 문화에 대한 어떤 통찰력을 갖춰야 할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모두 궁합에 있다. 기업 경쟁력이 기업의 주력제품, 성격, 부서, 업무와 CEO, 임직원의 얼굴 사이에 궁합에 달려 있었던 것을 상기해 보면 디자인에도 궁합이 있을 법하다. 그럼 디자인은 구체적으로 무엇과의 궁합일까? 바로 소비자의 시각 본능, 제품의 성격, 시대 등과의 궁합이다. 자동차 디자인을 보면 이런 궁합을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자동차 디자인을 색상과 형태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는데 먼저 색상이다. 2009년 3월 본격적으로 출시된 기아차 쏘울이 미국 박스카(Box car)부문에서 4월과 5월 연속해서 판매 1위를 차지했다. 그해 5월까지 전세계 시장에서 팔린 이 자동차는 3만 8328대였다. 쏘울의 바디컬러는 순백색, 바닐라쉐이크, 토마토레드 등 총 11종이었다. 한국에서는 판매 차량 중 순백색이 46%였다. ‘백의민족’다운 수치로 세계 시장에서 팔린 8%에 비하면 6배가량이나 많았다. 이어 바닐라쉐이크가 17%, 체리흑색이 10%였다. 이들을 합하면 무채색 계통이 73%로 압도적이었다. 미국의 경우는 체리흑색(19%), 티타늄실버(15%), 은빛실버(14%), 토마토레드(14%), 녹차라떼(11%), 순백색(10%) 등 다른 지역에 비해 고루 분포됐다. 동남아 지역도 다양한 바디컬러를 선택했다.
특히 토마토레드(18%), 녹차라떼(10%)가 다른 곳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칵테일오렌지(11%)는 세계 평균(3%)의 3배가 넘었다. 서유럽에서는 블랙, 실버, 그레이 등 세 가지 색상이 50%, 동유럽에서는 38%를 차지했다. 이들을 정리하면 무채색 계통의 색상(그림 1 왼쪽)은 북방형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화려하고 다채로운 유채색 계통의 색상(그림 1 오른쪽)은 남방형이 많은 동남아시아나 남방형과 유사한 유럽과 미국에서 잘 팔렸다. 이런 이유는 그들의 시각 본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북방형은 시베리아의 하얀 설원에서 동물사냥을 하면서 무채색을 선호하는 시각으로 진화했다. 이와는 반대로 남방형은 동남아시아의 화려한 환경에서 열매를 따면서 유채색을 선호하는 시각으로 진화했다. 서양인도 지중해 연안의 비교적 따뜻한 기후에서 열매를 따면서 진화했기 때문에 남방형과 유사한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눈으로 보면 각자의 시각 본능과 궁합이 맞는 색상이 잘 팔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시각 본능은 미국 페인트업체 듀폰이 조사한 지역(국가)별 자동차 인기 색상에서도 확연히 드러나 있다. 2009년 12월 조사에서 한국 소비자들은 은색(39%), 검정(29%), 흰색(14%), 회색(5%), 빨강(4%), 파랑(3%) 순으로 선호해 무채색 계열이 87%로 압도적이었다. 이런 무채색 선호도는 한국이 가장 높았고, 유럽 75.2%, 북미 64.5%, 인도 60.4%, 러시아 51.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런 비율을 보면 인류의 절반 이상은 무채색을 선호하는데 그 정도가 지역(국가)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동차 색상과 형태는 시각본능의 반영 이렇게 다른 시각 본능은 형태에도 나타나 있다. 한국 현대와 독일 벤츠 자동차 2012년 모델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현대 아반떼의 형태는 전체적인 모양, 그릴, 헤드라이트 등에서 유선형이다(그림 2 왼쪽). 이런 디자인은 아반떼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의 대부분 차종에서 볼 수 있다. 반면에 벤츠 M클래스의 형태는 아반떼의 유선형에 비해서 사각형에 가깝다(그림 2 오른쪽). 벤츠뿐만 아니라 유럽 차 대부분이 이런 디자인이다. 이런 디자인은 각자의 시각 본능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현대차의 유선형은 속도감을 느낄 수 있어 북방형의 운동시에 적합한 반면, 벤츠의 사각형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 남방형과 서양인의 물체시에 적합하다. 운동시는 움직이는 물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각으로 북방형이 동물을 사냥하면서 발달되었고, 물체시는 고정된 물체를 세밀히 관찰하는 시각으로 남방형이 열매를 따면서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동차의 색상과 형태는 각자의 시각 본능이 강하게 반영된 디자인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동차와 같은 내구소비재는 값도 비싸고 사용 기간도 길어서 자주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에 시각 본능과 궁합이 꼭 맞아떨어지는 디자인을 구매하려는 심리가 강하다. 이런 심리가 우리나라에서는 무채색에 유선형을 선호한 반면에 서양에서는 다양한 색상에 사각형을 선호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구매 성향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냉장고, 가구 등 내구재 대부분에서 나타난다. 이런 시각 본능은 오랜 진화를 통해 무의식 속에 뿌리깊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잘 변하지도 않는다. 그럼 내구재와는 성격이 반대인 비내구소비재의 디자인에는 이런 시각 본능이 어떻게 작용할까? 우선 한국 도자기를 보면 흰색(무채색)이고 무늬가 단순하다(그림 3 왼쪽). 반면에 서양 도자기는 색상이 화려하면서 다채롭고 무늬 또한 복잡하다(그림 3 오른쪽). 이런 디자인들에도 자동차 색상에서 본 것처럼 각자의 시각 본능이 작용했다.
도자기, 핸드폰 디자인으로 본 구매동향 그런데 비내구재의 디자인은 내구재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띄우기도 있다. 각자의 시각 본능으로부터 다소 동떨어져 파격적으로 보이는 디자인이 매력적이면, 새로움, 놀람, 신선함, 특이함으로 받아들여져 곧바로 구매로 이어진다. 비내구재는 가격도 싸고 사용 기간도 짧아서 바꾸기가 쉽게 때문에 소비자는 이런 디자인도 선호하는 것이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사람들은 각자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주로 먹지만 때로는 새롭고 특이한 맛을 즐기려는 심리와 유사하다. 도자기, 핸드폰 등에서 이런 예를 볼 수 있다. 한국도자기(그림 4 왼쪽)가 영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2009년 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프라우나 퀸즈 다이아몬드 주빌리 컬렉션’을 납품해 완판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들 도자기에서 백색 바탕은 북방형이, 아기자기한 무늬는 남방형과 서양인이, 화려하면서도 무채색이 섞인 색상은 둘 다가 선호할 디자인이다. 이런 디자인은 앞에서 본 서양의 시각 본능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잘 팔린 것이다. 영국 웨지우드(Wedgwood) 도자기도 파격적인 디자인을 해서, 두 디자인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그림 4 오른쪽). 이렇게 비내구재 디자인은 서로의 본능이 많이 퓨전되어 서로 비슷할 수 있다. 이런 디자인은 패션워치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로만손 트로피시(Trofish) 시계, 유럽에서 새로운 한류 상품이 된 우리나라 포대기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핸드폰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삼성전자는 2012년 세계 145개국에서 4억 대가 넘는 휴대전화를 팔았다. 한국은 핑크, 레드 계열의 색상이 몇 년째 인기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여성들은 원색보다는 화이트 톤이 섞인 연한 파스텔 계열을 좋아했다. 강한 무채색과 연한 유채색의 퓨전이다. 한편 유럽 시장에서는 보라가 섞인 분홍색이, 러시아에선 붉은색이 강한 분홍색이, 남미에서는 와인색에 가까운 분홍색이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강한 유채색에 무채색이 약간 섞여 있어 서로의 본능 퓨전이 역력하다. 이런 색상들은 시대별로 차이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2002년 ‘T100(이건희폰)’은 흰색(그림 5 왼쪽), 2003년 ‘E700(벤츠폰)’은 회색(그림 5 중앙) 등이다. 그때만 해도 휴대전화가 워낙 고가이어서 내구재로 인식되어 우리의 시각 본능대로 무채색을 선호했다. 그러나 휴대전화가 점점 보편화되어 비내구재로 인식되면서 색상은 매우 다양해졌다. 2007년 ‘컬러재킷폰’과 ‘고아라폰’, 2009년 ‘코비폰’ 등의 컬러가 24가지에 이르렀다(그림 5 오른쪽). 같은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제품 성격이 바뀌면서 디자인도 이렇게 달라진 것이다.
이제까지 말한 것을 종합해보면 미래 산업에서 성공할 디자인의 방향이 선명해진다. 그 방향을 차별화된 디자인, 제품 성격에 맞추는 디자인,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디자인으로 나누어서 알아보자. 먼저 차별화된 디자인이다. 제품의 디자인 요소에는 색상, 무늬, 형태가 있다. 이들 각각에게는 북방형과 남방형의 시각 본능에 부합하는 요소가 있다. 북방형은 무채색, 단순한 무늬, 유선형을 선호하고, 남방형과 서양인은 유채색, 복잡한 무늬, 사각형을 선호한다. 이들을 제품의 콘셉트에 맞게 어떻게 변형하고 조합하고 퓨전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로 차별화하는가가 미래 디자인의 관건이다. 북방형에게는 남방형의 요소가, 반대로 남방형에게는 북방형의 요소가 기대, 꿈, 놀라움, 새로움을 주기 때문에, 차별화 할 수 있는 요소이다. 도자기와 핸드폰에서 이런 요소들을 파격적으로 퓨전해서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미래 산업에서 성공할 디자인의 방향 다음은 제품 성격에 맞추는 디자인이다. 즉 비내구재와 내구재의 디자인 콘셉트를 달리하는 것이다. 비내구재의 경우 각자의 시각 본능과 다소 동떨어져 차별화된 디자인도 매력적으로 보이면 구매로 이어진다고 했다. 이와는 달리 내구재의 경우는 매력적으로 보여도 각자의 시각 본능과 맞지 않으면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런 성향은 자동차 디자인에서 여실히 드러나 있다.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는 2009년 YF쏘나타를 출시하면서 주력 컬러로 ‘섹시함’을 강조한 짙은 빨강(색명 : 레밍턴 레드)을 TV에 대대적으로 광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판매 비율은 고작 0.7%에 그쳤다. 우리나라 소비자는 그 색을 매력적인 색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구매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우리 시각 본능과 동떨어진 색이기 때문이다. 그럼 내구재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변화를 약간만 주는 것이다. 이런 디자인으로 성공한 예는 앞에서 말한 기아차 쏘울의 색상 중에서 바닐라셰이크이다(그림 1 왼쪽 아래). 이 색상은 크림색 계열로 유채색이라고는 하지만 무채색에 아주 가까워서 우리나라 판매대수 중 52%를 차지해 판매율 1위를 기록했다. 제품의 성격에 따라 디자인이 이처럼 다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디자인이다. 미래는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하는 시대이다. 이런 다양한 시대를 반영한 디자인은 핸드폰의 색상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핸드폰이 비싸서 내구재로 인식되었던 과거에는 무채색을 선호했지만, 싸서 비내구재로 인식된 현재는 개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유채색도 선호하고 있다. 현대와 벤츠의 형태 디자인에서도 시대의 흐름을 볼 수 있다. 2010년 모델부터 2012년에 부산국제모터쇼에서 선보인 미래 모델까지 비교해 보면, 두 회사 모두 유선형을 조금씩 더 강조하고 있다. 미래로 갈수록 빠르게 변화하니까 그런 디자인을 한 것이다. 그럼 이런 디자인을 하기 위한 매력적인 요소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의복, 춤, 그림 등 각 나라의 전통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전통문화란 그들의 시각 본능과 맞아떨어져 오랫동안 지속된 것이어서, 그 속에는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 있다. 이들 중 의복을 보면 우리의 백의는 흰색에 민무늬이다. 이런 요소는 자동차에서 무채색, 도자기에서 흰색에 단순한 무늬, 핸드폰에서 무채색과 일맥상통한다. 반면에 동남아시아 남방형과 서양인의 의복은 다양한 색상에 복잡한 무늬이다. 이 역시 자동차에서 유채색, 도자기에서 다양한 색상에 복잡한 무늬, 핸드폰에서 유채색과 일맥상통한다. 나아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콘텐츠에도 시청각 본능의 요소들이 숨겨져 있다. 예를 들면 K-POP에서는 서양의 멜로디와 일사분란한 군무, 강남스타일에서는 말춤과 화려하고 밝은 분위기, 대장금에서는 화려한 음식과 궁중 의상 등이 남방형과 서양인의 본능을 잘 나타내는 요소들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디자인, 콘텐츠, 전통문화를 색상, 무늬, 형태 등의 요소별로 분석·비교하고 종합적으로 통찰하면, 디자인에서 매력적인 요소들을 찾을 수 있는 안목이 훨씬 넓어진다. 삼성전자도 현지화 전략을 위해 디자이너들을 각 나라에 파견하고 있다. 이들도 이런 안목을 갖추면 제품의 디자인 방향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3회에 걸쳐 기업에서 경영, 업무, 제품디자인과 CEO를 비롯한 임직원의 얼굴, 소비자의 시각 본능 사이에 여러 가지 궁합을 말했다. 이런 궁합들을 잘 맞출수록 기업 경쟁력은 향상되고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제품이 만들어진다. - 최창석 명지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얼굴은 답을 알고 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