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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 주목 작가]최성철, 삶의 미로에서 실종된 ‘노마드’ 찾다

방황의 정서를 세 편의 비디오 클립으로 압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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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50호 왕진오⁄ 2013.10.28 11:04:28

조각가 최성철의 작업이 변했다. 그동안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재료의 물성을 감추기 위해 작품 표면에 채색을 한 후 하단에 스테인리스 스틸이 주는 거울 효과를 내는 작업과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작업을 하던 그였다. 전통 조각의 이단자로 비쳤던 최 작가는 사실 이탈리아 카라라에서 수학한 후 소재와 재료, 색채 표현 등을 토해 신화적, 상징적 문맥의 소통을 시도해왔다. 최 작가는 작업 초기에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한국의 전통적인 오방색(적, 청, 황, 흑, 백)을 기본으로 원색적인 색들을 작품에 표현했다. 이 다섯 가지 색감에 기초한 원색들의 조합은 몬드리안이나 칸딘스키의 작품처럼 선과 면으로 조합된 기호들의 집합체와 동일하다. 그런 그가 10월 25일부터 11월 3일까지 경기도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 '삶의 미로에서 실종된 노마드'란 타이틀로 11번째 조각 개인전에 그를 상징하는 작품이 아닌 색다른 형태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장에는 세 개의 비디오 설치가 놓여있어, 마치 미디어아티스트의 작품을 보는 듯한 형상을 띠고 있다. 또 작품들이 복수로 구성되어 전시되고 있다.

작가는 삶의 노마드이고, 또한 그 미로 속에 길을 잃은 자다. 길을 잃었을 때 사람들은 어떤 감정일까? 특히 각성의 상태가 아닌 일상의 피로 속에서 방황은 어떤 정서를 보여주는가에 대해 세 편의 비디오 클립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간단해 보이는 싱글채널의 영상에는 '출구 없는 서울외곽순환도로', '내릴 곳이 자꾸 잊혀져간다' 그리고 '도요새의 긴 한 숨소리는 홍콩의 무덥고 습한 날씨에 묻히고 말았다'를 보여준다. 제목은 영상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설명해준다. 알레고리나 암시가 아닌 직설적인 내레이션으로서 제목을 붙였다는 의미이다. 관람객들은 고민 없이 영상을 자연스럽게 관람한다.

“불혹 넘겨서도 꿈 잃지 않아 감사” 외적 설명이 필요치 않은 상태로 이 화면들은 한정된 공간과 시간 속에 설정된 미로 속으로 끊임없이 몰입하는 자아 혹은 타자를 보여준다. 결국 여러 의미들은 또 다시 의미의 감옥 속에 감금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최 작가는 "한국에서 작업 활동을 정리하는 의미로 봐주기를 바란다. 그동안의 작업의 고민을 이번 작품에 쏟아 부었다"며 "이번 전시를 마무리 하고, 해외에서 작업 활동을 펼치기 위해 방랑의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Neo-Nomad-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라는 작품은 이번 전시의 메인이자 에필로그 같은 느낌을 강하게 준다. 바닥에 넓게 깔린 빈 깡통들 사이에 발이 묶인 하얀 색 자동차 그리고 차 지중 위에 실린 보따리들이 전시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마드가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하지만 길을 가야할 의지와 길을 잃어버린 현실에 봉착하면서 만들어지는 비장한 감정은 우연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최 작가가 그간 작품에 표면을 덮기 위해 사용했던 수많은 페인트 깡통은 자신의 창작활동를 상징하는 매개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깡통 속 페인트 안료가 첨단의 과학과 지식이 만들어낸 생산품이라는 것을 작품 속에 내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깡통들은 현대사회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는 노마드의 상징이며, 그 위에 실린 보따리 또한 노마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마드는 그 차를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발이 묶인 자동차는 외롭게 전시장 바닥을 지키고 서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최 작가는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아직까지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난 하지만 삶이 순간순간 고단 하지만 그래도 꿈이 있기에 살며시 웃을 수 있습니다”고 세상에 이야기를 전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자신의 자문자답(自問自答)의 현장을 구성했다. 물론 여러 작가들에게 자신들의 전시는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작가의 모놀로그는 어쩌면 무언가 보여주려는 전시의 기본적인 성격을 배제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은 세상과의 소통을 갈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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