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하면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대부분이 소설가일 것이다. 첫 번째로 ‘화가’를 떠올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글 뿐 아니라 그림 그리는 작가이다. 인터뷰를 위해 서울 동부이촌동 그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도 곳곳에 걸려 있는 그림들이 눈에 띄었다. 모두 직접 그린 작품이다. “나도 화가”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글을 쓰고 모교인 연세대에서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그림을 그리는 그는 전시도 꾸준히 열어왔다. 올해 10월에는 우리은행 강남갤러리에서 시각장애인 개안수술돕기 자선전시회에 참여했고, 내년 또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미술이 문학보다 좋아요. 문학은 문법의 지배를 받고, 언어의 장벽이 있어요. 그런데 미술은 어느 나라에서나 통하죠. 번역을 잘못한 책은 찢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데, 미술은 시공을 초월하며 감동을 줘요. 가장 자유로운 예술 분야가 바로 미술이죠.” 그는 원래 고등학생 때 화가가 되기를 꿈꿨다. 미술반에서 연 첫 전시회에서는 그의 작품이 가장 먼저 팔리는 등 주목을 받았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미대와 국문과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국문과의 길을 택했지만 미술은 늘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소설가로 유명한 마광수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는 미술이었다. 이는 그의 젊은 시절에서 비롯된다. 소설가 외에 따라붙고 있는 꼬리표가 있는데, 바로 ‘19금’ ‘변태’ ‘야한 작가’ 등이다. 1992년 집필한 ‘즐거운 사라’가 성행위 장면을 노골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음란문서 제조, 반포혐의로 구속됐다. 한 번도 없었던 초유의 사태는 더욱 화제가 됐고, 그를 변태 작가라는 이미지로 점점 몰고 갔다. “마치 장발장 같아요. 그 사건을 겪은 뒤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처럼 ‘변태 작가’라는 꼬리표가 지금까지도 따라다녀요. 어떤 글인지 읽어보지도 않고, 단지 마광수가 썼다는 이유로 민망해서 못 보겠다는 사람들이 많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 지쳤어요.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뒤 정말 힘들었는데 그때 미술에 위로받았어요. 아무 글도 쓰지 않고, 1년 동안 그림만 80점을 그려서 개인전을 열었죠. 그림을 그리면 스트레스가 풀렸습니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사전을 찾아가고 문법을 체크하면서 심혈을 기울여야 하지만 즉흥적으로 손이 가는대로 그려지는 그림은 그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줬다. 최근엔 현대회화를 많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대회화에는 비구상이 많더라”며 “그동안 구상 작업을 주로 해왔는데 이젠 비구상을 그려볼까 생각 중이다”라며 미술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장발장 같이 늘 붙어 다니는 ‘야한 작가’ 꼬리표 지친 현실에서 직접 그림 그리며 위로 받아 아마 이는 글로는 깨지 못했던 표현의 한계를 마음껏 펼쳐보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닌가 싶다. “룰을 깨버리려고 한다”고 포부를 보인 그가 말하는 룰은 미술계에서 유화를 선호하는 풍토이다. “수채화와 파스텔화는 정말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화를 최고로 치고, 인기가 많아서 작가들이 선호하지 않죠. 또 그림은 무조건 기본적으로 캔버스에 그려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요. 하지만 종이만큼 또 매력적인 재료가 없어요. 전 종이에 크레파스, 파스텔 등으로 작업을 하며 이런 틀을 깨보고 싶어요. 미술은 물감 원가 싸움이 아니라, 바로 아이디어 싸움이에요. 편협 된 시각으로 한정된 재료를 사용할 게 아니라 보다 다양한 그림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의 힘이 담긴 먹을 사용한 그림도 더욱 많이 그릴 예정이다. “국보인 추사 김정희의 ‘세안도’도 먹으로만 그린 그림인데 정말 멋지다”며 “우리가 그런 전통을 계승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고 의견을 피력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굳이 골라서 가기에 늘 힘들고 외롭다. ‘한국의 외로운 에로티카’라는 말을 들었다는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하지만 몸은 지쳤을지언정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쓰고 싶은 것을 쓰겠다는 의지는 여전히 빛났다. “괴짜를 인정해주는 사회여야 문화가 발달해요. 사람들은 제게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고들 하기도 하죠. 제가 죽기 전 표현의 자유가 인정받지 못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싸구려처럼 굴지 않고, 저와 제 작품들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그림 또한 글처럼 ‘야하다’는 선입견이 따라다니긴 했다. 그렇지만 ‘야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2011년 산토리니서울 갤러리에서 열린 ‘소년, 광수’전에서는 동심에 대한 이야기를 먹과 파스텔로 그려냈는데, 순수한 이미지가 호평을 받았다. 결국 그의 손에서 탄생하는 모든 작품들이 야하고 퇴폐적이라고 일찌감치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마광수는 아직 글과 그림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의 말처럼 고되고 외로운 여정이지만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졌다.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