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다이어리]바람직한 작가-컬렉터 관계는?
거래에 대한 대가, 네트워크에 대한 책임과 신뢰 깊이 새겨야
거래에는 대가가 따르고 관계에는 책임이 따른다. 미술작품의 거래도 예외는 아니다. 작품을 사는 사람이 그에 대한 값을 치름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컬렉터와 작가라는 관계가 시작되는 셈이다. 미술작품은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거래보다도 관계에 대한 책임이 중요해진다.
미술작품을 구매할 때는 여러 가지 계기가 있다. 원하는 그림을 사기 위해 직접 화랑이나 작가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화랑 대표의 권유나 지인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구매해 주는 경우도 있다.
또는 직접 구매하지 않더라도 선물로 받게 되는 일도 있다. 계기야 어찌 되었건 작품을 소장하게 된 이상 자신이 가진 작품을 그린 작가가 누구보다 활발히 활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마찬가지 일 것이다.
평소에 작품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거나 미술에 대한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자신이 소장하게 된 작품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는 지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물며, 누군가의 추천이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내가 선택한 작가가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길 바라는 것은 그것이 곧 자신의 안목에 대한 반증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마음에 들어오는 작품을 만나면 작가의 경력이나 배경에 개의치 않고 작품을 구매 할 때가 더러 있다. 중견작가의 대형 작품을 구매할 형편도 안 되지만 신진작가의 작품 중에도 작품성 있는 좋은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품을 구매 후 몇 해가 지나도록 작가의 개인전은커녕 미술계에서 작가의 소식조차 들을 수 없을 때 알 수 없는 허탈함이 밀려온다. 작품을 소장하고 감상할 때는 그것을 누리는 기쁨 이상으로 작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보람이 있는데, 작가를 향한 응원의 마음이 외면당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소장가가 좋아하고 갖고 싶어 했던 작가의 작품이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보여 지고, 대중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면 내심 흐뭇한 기분도 들것이다. 더불어 작가가 꾸준한 활동을 하고 때에 맞게 신작을 선보임으로서 자신과 작품의 가치를 높여간다면 그것을 지켜보는 구매자의 입장에서 그것만큼 자랑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와 컬렉터 간의 바람직한 관계를 위한 역할은 무엇일까?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사랑해주고 기꺼이 대가를 지불해준 사람을 위해서 꾸준한 활동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성의를 다하는 노력이다. 반드시 개인전이 아니더라도 꾸준한 전시참여로 소식을 알리고, 팸플릿 한권, 작은 엽서 하나라도 보내주는 성의가 받는 사람입장에서는 일상의 기쁨이 된다. 하지만 전시가 어렵다면 자신의 신작을 SNS나 온라인 서신으로라도 전하며, 근황을 알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행동들을 자칫 작품을 팔기위한 세일즈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르게 생각하면 자신을 응원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예의이자 배려라고 생각한다.
▲지서울2013을 관람하는 관객들. 사진 = 왕진오 기자
작가와 컬렉터는 후원자이자 친구 겸 동반자
또한 컬렉터는 작가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친구로서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미술계에는 한 번의 개인전을 위해 감당하기 힘든 대가를 치르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작가가 부지기수다.
그런 작가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기위해 작품을 구매해 준다면 좋겠지만 형편에 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작가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응원은 없을 것이다. 작가의 전시에 찾아가 진심어린 축하와 우정 어린 조언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작가가 보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협조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관계는 오랜 시간 지속되고 신뢰가 두터워 질수록 그 빛을 발한다. 구매자와 판매자는 이렇게 컬렉터와 작가의 관계가 되고 이어 후원자와 친구이자 동반자로 발전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경 산토리니서울 미술관 큐레이터(정리 = 왕진오 기자)
고경 산토리니서울 미술관 큐레이터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