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2호 고충환 미술평론가⁄ 2014.01.20 13:44:43
▲이종철 작가. 사진 = 왕진오 기자
▲Baroque 2.0 -C004, 162.2x130.3cm, acrylic colour, acrylic pigment print on canvas
▲Baroque 2.0 -C002, 162.2x130.3cm, acrylic colour, acrylic pigment print on canvas
▲Baroque 2.0 -C003, 162.2x130.3cm, acrylic colour, acrylic pigment print on canvas
▲Baroque 2.0 -D001, 162.2x130.3cm, acrylic colour, acrylic pigment print on canvas
그렇다면 작가의 작업에는 무슨 심오한 의미라도 숨겨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숨겨져 있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주지하다시피 작가의 작업에서 의미는(형식은 물론이거니와) 대비로부터 온다. 그리고 대비는 사실상 근작에서 뿐만 아니라 전작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변주돼 왔던,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문법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특히 전작 중 일련의 사진작업들에서 이런 의미론적인 대비가 확인된다. 예컨대 LINK라는 영문자가 기록된 화면과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 이미지를 대비시킨 사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링크라는 영문자는 접속과 연결을 의미하는 인터넷의 전문용어로서,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와는 적어도 외관상으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일어난다. 말하자면 어떤 링크, 어떤 접속, 어떤 연결, 어떤 관계는 낚시 바늘에 걸려든 물고기의 처지에서처럼 예기치 못한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고, 때로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이 의외의 일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바로 작가가 제안하고 있는 대비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대비에 의해서 서로 무관한 두 개의 다른 시각정보가 하나로 연결되고 접속되는 것은, 그럼으로써 제 삼의 전혀 다른 의미를 파생시키는 것은 바로 연상 작용에 의해서이다.
말하자면 작가는 일종의 의미론적인 링크, 의미론적인 접속, 의미론적인 연결, 의미론적인 관계에 대해서 주지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론적인 링크에 대한 작가의 발상은 일종의 화용론에 연동된다. 알다시피 의미란 그 자체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발화되는 지점 곧 실제로 말해지고 활자로 옮겨지는 지점에서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화용론의 입장이다. (중략)
작가의 근작에선 어떤 종류의 의미론적인 링크가 일어나는가. 보다시피 작가의 그림은 무채색의 꽃그림과 원색의 색면 추상화면이 대비되고 있다. 여기서 무채색의 꽃그림은 꽃의 실재를 형태로 환원한 것이고, 원색의 색면은 색채로 환원한 것으로 볼 수는 없을까. 그래서 이 두 화면을 합치면 비로소 꽃의 실체가 온전하게 복원되고 재현된다고 볼 수는 없을까.
작가는 꽃의 실재를 각각 형태와 색채로 분리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색면에는 화면의 가장자리에 별도의 색상 띠가 부가돼 있어서 그 자체가 색 분해를 연상시키고, 화면에 띄워진 땡땡이 문양 역시 그 자체로는 고정된 것이지만 보기에 따라선 유동화 된 모니터 화면의 픽셀을 떠올리게 한다. 이 모든 정황들이 어우러져 여차하면 무채색의 꽃그림에다 색채의 옷을 덧입힐 태세이고, 이로써 색면 자체가 무채색의 화면에 의미론적으로 연동된 것 곧 링크된 것임을 주지시킨다. (중략)
▲Baroque 2.0 -A001, 324.4x130.3cm, acrylic colour, acrylic pigment print on canvas
▲Baroque 2.0-B001, 324.4x130.3cm, acrylic colour, acrylic pigment print on canv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