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도 간장게장 같이 그 가치가 숙성에 달려있어
예전에 유명세를 탔던 광고 카피 중 “니들이 게맛을 알어?” 가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아마 이를 응용한 나만의 카피 “니들이 미술을 알어?”를 가슴 속으로 수차례 외쳐댔기 때문이다.
예술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경우가 예술을 존중하는 이들보다 많다고 느껴지는 현실에서 자존감을 잃지 않기 위한 일종의 소심한 방편이다. 아마도 모든 예술 종사자들에게 예외는 없을 것 같다.
생소한 예술 앞에 위축되고 싶지 않은 심리가 부정적 발언으로 이어지는 모습은 흔한 광경이다. 예술은 어느 개인의 이야기이므로 생소한 것이 당연하다. 작품이 탄생하기까지도 그렇고 공감을 하기에도 기승전결이 필요하다. 그런데 즉각적으로 수용할 수 없으면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평가가 도처에 난무한다.
이러한 환경에 자주 놓이다 보니 종종 허탈한 기분을 피할 수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즉각 공감 가능한 소재를 찾았다. 생각지도 못할 간장게장의 숨겨진 비법이 그것이다.
얼마 전 일 년에 수만 명이 다녀간다는 간장게장 식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 자주 먹기 힘든 음식이라 그 맛을 잊고 지낸 지 오래였다. 그 곳의 게장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게장을 매우 짠 음식의 종류로 기억했는데 반전이었다. 전혀 짜지가 않고 매콤하면서도 상큼, 달콤하기까지 미각이 원하는 것을 모두 충족시키는 맛이었다. 듣자하니 이미 일본으로 진출해서 한류열풍에 합류한 상태였다. 운영하시는 대표님께 그 비결을 물었다.
대박집을 더욱 대박집으로 만드는 비결은 숙성의 시간이었다. 초반에는 짜지 않은 간장게장을 개발한 것만으로 차별화가 되었고, 손님이 몰리다 보니 회전력이 좋아서 재료가 싱싱함을 잃을 틈이 없었다. 무엇보다 관건은 오랜 시간 터줏대감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동안 간장의 숙성도 세월만큼 깊어진 점이다. 숙성이 곧 맛의 깊이이자 품격인 것이다.
▲대림미술관 전시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미술작품도 마찬가지로 그 가치가 숙성에 달려있다. 필자는 전시를 기획하며 다양한 작품을 꽤 장시간 동안 직접 감상하는 경험을 해왔다. 이로써 얻게 된 심미안 중 하나는 작품마다 지닌 깊이의 묘한 차이를 분별하는 일이다.
자신의 철학을 수년간 시각적으로 구현하려는 몸부림을 통해 작품의 아우라 즉, 내공이 형성된다. 특히, 회화작품의 경우 끊임없는 습작은 곧 식지 않는 집념과도 같아서 유사한 주제를 다룰지라도 내뿜는 광채가 달라진다. 재료의 탐구, 붓의 놀림이 성실하게 쌓여간 시간 속에서 작품의 중량감은 더해져 간다. 작품의 숙성도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강도와 측정할 수 없는 무게감의 다른 말이다.
보통 작가들은 몇 년에 한 번씩 개인전을 통해 신작을 선보인다. 한 작가의 작품세계가 이전의 것과 완전히 뒤바뀌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개인전은 이전과 비슷한 작품을 전시하는 행사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숙성이라는 시점에서 작품을 바라보면 그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작품의 발전상을 발견하는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시간이다.
작품의 성장은 아주 조금씩 어렵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그 과정을 마치 정독하듯 따라가다 보면 미묘한 차이 및 진전된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이 정도를 인식하게 되면 이후에 어떤 작품을 접하여도 섬세한 가치평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된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전시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예술작품의 감동은 사골국물처럼 깊고 진한 맛
음악을 예로 들면 더욱 이해가 쉽다. 뮤지션은 자신의 앨범을 발표하고 수많은 무대에서 그 음악을 선보인다. 몇 년 후 새로운 앨범이 나오면 신곡과 함께 기존의 곡들도 계속해서 공연한다. 신곡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 덩달아 이전의 곡들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재평가를 받게 되기도 한다. 음악이 만들어지고 분출되는 흐름 속에 한 개인의 인생사가 녹는다.
사랑을 하고 있을 때와 큰 시련을 겪었을 때 표현되는 음악이 다르다. 아픔을 딛고 일어선 후의 노래는 심금을 울리고 관객은 그 음악에 빠져들면서 위로 받는다. 같은 음악을 연주해도 시간이 갈수록 연주자들의 인간적 음악적 교류가 더욱 좋은 합을 이끌어내고, 같은 노래를 불러도 부를수록 짙어지는 감성의 농도가 청중을 사로잡는다. 특정 뮤지션의 공연을 매번 관람하는 팬의 존재는 매회 볼 때마다 사골을 한 번 더 우려낸 맛을 느끼는 훌륭한 존재일지 모른다.
예술작품의 감동은 긴 시간 우려낸 사골국물처럼 깊고 진한 맛에서 나온다. 아직 시작하는 단계의 작품은 신선함은 있어도 오래 두고 바라보았을 때 여운의 길이가 짧다. 한편, 순간 사로잡는 현란함은 아닐지라도 바라볼수록 질리지 않고 깊게 몰입되는 작품들이 있다. 숙성의 시간덕분에 맛있게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 신민 진화랑 실장 (정리 = 왕진오 기자)
신민 진화랑 실장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