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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안성하]담배에 담긴 현대인의 초상

독성과 감미로움의 양면성 묘사, 기존 하이퍼리얼리즘과 차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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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62호 김현경 큐레이터⁄ 2014.01.22 13:17:55


누군가가 피웠던 담배들이 비벼 끈 듯 까만 재와 함께 투명한 유리용기 안에 수북하게 쌓여있다. 자칫 무심하게 지나치기 쉬운 풍경이지만 클로즈업한 것처럼 커다랗게 확대된 담배꽁초들이 실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 것임을 아는 순간, 시선을 때기 어려워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끝없이 반복되는 걱정과 고민, 무거운 일상의 그림자를 불현듯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순간은 이내 흩어지는 담배연기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배경 속으로 향기 없이 사라진다.

안성하 작가는 2000년부터 자신의 작업실 곳곳에서 발견되는 피우다만 담배나 혹은 다 태우고 버려진 담배를 소재로 하여 매우 사실적인 기법으로 재현해왔다

▲Cigarettes, 2013, 182x259cm, oil on canvas


이를 위해 그릴 대상을 찾아낸 다음 다소간의 연출을 통해 본인이 원하는 이미지를 클로즈업 촬영한 후, 그것을 다시 화폭으로 옮기는 과정을 거친다.

프랑스 화가 페르낭레제는 “클로즈업은 부분적인 것들을 인격화 시킨다”고 말한 바 있다.  안성하의 작품 속에서 담배꽁초들이 제멋대로 구부러져서 켜켜이 쌓여있거나 거무스름한 잿물 속에 짓눌러져 담겨있는 모습은 마치 쓰디쓴 일상 속에 던져진 현대인의 일그러진 초상과도 같다.

▲Cigarettes, oil on canvas, 162x130cm


이러한 정서적 환기는 하이퍼리얼리즘에서 감정을 배제한 채 즉물적으로 대상을 다루는 방식과는 분명히 다르다. 입에는 쓰고 몸에는 해로운 담배이지만 그 담배연기 한 모금이 가져다  주는 정신적 위안은 감미롭다. 안성하에게 ‘담배’라는 주제는 현대사회의 상징물로서 의미심장한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기계적인 정밀묘사에만 치중한 채 현실 자체를 해석하고 그려내는 적절한 방법을 잃어버린 하이퍼리얼리즘과는 거리가 있다.

▲Untitled, 182x259cm, oil on canvas, 2013


일상적인 소재의 상징적인 의미에 주목

2004년경부터 시작된 사탕시리즈나 최근에 선보인 코르크마개시리즈도 자신 주변에 먹다 남은 사탕이나 술(샴페인이나 와인)을 마시고 남겨진 코르크 마개를 소재 삼아 그린 것으로, 담배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독성’과 ‘감미로움’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특히나 입에서 막 녹아내린 듯한 사탕의 사실적인 표현은 끈적끈적한 감촉과 함께 달콤한 향과 맛이 느껴지는 듯 강한 여운을 남긴다. 형형색색의 알사탕이나 막대사탕으로 인해 이전보다 조형적으로 다양해진 연출이 엿보인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실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안성하의 작품은 담배나 사탕, 코르크 마개를 통해 환기되는 야누스적인 이율배반적 감정 속에 완전히 동요되지 않고, 기호품들이 지닌 특유의 긴장이완이나 각성 등의 효과가 일시적이듯 다시금 차갑고 이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Untitled, 2012-2013, oil on canvas, 130x162cm


사실 물감을 얇고 옅게 반복적으로 붓질로 인해 형성된 대상의 투명한 깊이감과 매끈한 표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이 극적으로 쏠리는 것을 막는다. 또한 어떠한 원근법적 공간도 설정되어 있지 않은 화면 위에 익숙한 대상, 혹은 일상적인 경험이 그 자체로 부각될 때 우리의 감각은 낯설고 생경해지며, 소위 추상화되기 때문이다.

한편 유리를 통해 굴절된 오브제들은 캔버스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관찰할수록 구체적인 형태의 윤곽선은 희미해지고 색채의 흔적들로 이루어진 화면으로 변모한다.

이처럼 안성하의 작품은 해석적인 면은 중의적으로(심층적으로) 설정하면서 특히 표면은 차가운 물상으로 부각시키는 점에서 일견 ‘독성’과 ‘감미로움’과 같은 여러가지 대립항들 속에 놓여있다.

▲Untitled, 2013, oil on canvas,194x130.3cm


또한 매우 사소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대상이 담고 있는 개인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들에 주목하며, 일시적인 감각에의 탐닉, 심리적 위안, 현실의 긴장으로부터의 도피와 자유 등과 같은 탈일상적인 영역을 이야기 한다. 이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현실의 모습들 가운데 무수한 감정의 고리들로 연결되고 끊임없이 순환하는 삶의 모습과 닮아있다.

유리 재질의 오브제에 담긴 사탕과 담배를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로 그려낸 작품들로 그간 국내외 미술계의 큰 주목을 받아온 안성하의 개인전이 1월 23일부터 2월 16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1, 2 전시장에서 마련된다. 신작 20 여 점이 발표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샴페인이나 와인 병에 쓰이는 코르크 마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처음 선보인다.

- 글·김현경 큐레이터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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