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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 강치원 경기도율곡교육연수원장]대한민국의 미래 토론에 달려있다

토론불모지에 20년간 ‘토론교육’ 혁파, ‘논술토론’ 개념 만든 장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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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66호 정의식 기자⁄ 2014.02.17 13:15:24

▲사진 = 정의식 기자

『영재로 꼽히는 국내 학생들이 해외에서 토론식 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 강치원은 ‘토론 문화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한국 교육의 미래는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절실하다는 점을 깨닫고 1993년부터 ‘토론 문화 전파’에 앞장서왔다. 수많은 토론회와 강연회를 통해 대한민국에 토론의 중요성을 알려온 강치원 경기도교육청 직속 율곡교육연수원장(강원대 사학과 교수)을 만나보았다.』



수많은 한국의 영재들이 해외유학을 떠나지만, 이들 중 절반 가까이는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다고 한다. 강치원 원장은 이들이 실패하는 이유를 “객관식 시험으로 대표되는 한국식 교육이 아이들의 지적 성취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강 원장에 따르면 OECD 국제학력평가에서 우리나라 중학생들이 2위를 차지하는 것도 그다지 기뻐할만한 일은 못된다. 국제학력평가가 객관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객관식 문제를 유소년 교육과정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유럽과 미국이 이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는 얘기다. 핀란드는 교과과정에서 객관식 문제 테스트를 일부 진행한다. 핀란드와 우리나라가 국제학력평가에서 1·2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해외에서는 수학시간조차 교사가 개념과 원리를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답을 찾고 고민하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지식을 확고하게 학생들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해외로 유학 간 한국 학생들은 이 과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뒤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듯 객관식·주입식 교육의 한계는 명확하다. 반면 토론식 공부는 출발속도가 느려도 뒷심이 강해 시간이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토론’에 집중하게 된 세 가지 계기

강 원장은 자신이 토론단체를 만들고 수많은 강연과 토론회를 진행하게 된 배경에 대해 “역사교육과 토론, 웅변과 토론, 독일 교육과 토론이라는 세 지점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고려대 사학과를 나온 강 원장은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친 후 1982년부터 강단에 섰다. 수년간 강의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레 역사 교육은 토론 방식으로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일제시대엔 우리 선배들이 한국사와 한국어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실천적 항거였습니다. 역사 교육과 토론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토론’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어린 시절 웅변대회가 유행이었는데 이를 토론 방식으로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웅변대회 한번 나가고 싶었는데, 원고를 써오라 하는데 어린 제가 쓸 수가 없더라구요. 알고보니 다른 애들은 어른이 돈 받고 써준 원고로 대회에 나왔더군요. 어머니께서 마흔다섯에 막내로 저를 낳으셔서 형들은 다 서울에 있고, 돈 주고 원고를 써서 대회에 나간다는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독일 교육의 현장을 엿보게 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1994년부터 이듬해까지 독일에 객원연구위원으로 가족과 함께 하이델베르크대학에 1년 반 정도 체류한 적이 있습니다. 독일 대학의 수업 현장을 봤지요. 그리고, 제 아이가 둘인데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다녀야해서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수업 현장을 보게 됐죠.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참여식·토론식 수업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토론 교육의 중요성을 알게 된 후 가장 먼저 1993년 ‘역사문화아카데미’라는 토론 단체를 설립했다. 독일에 객원연구원으로 있다가 귀국한 1995년부터 그는 1년 동안 준비한 끝에 96년부터 ‘전국 고등학생 논술토론 광장’을 개최하며 토론교육운동을 시작했다.

“그때는 우리사회에서 논술이 유행할 때라, 신문을 중심으로 상업논술이 범람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논술’이란 말은 있어도 ‘논술 토론’이란 말은 없었지요. ‘논술 토론’이란 말을 처음 만들었습니다. ‘독서토론’이란 말도 없었는데 제가 많이 썼고, 요즘은 ‘답사 토론’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1996년 전국의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은 ‘논술토론광장’은 98년부터 ‘원탁토론광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전국 고등학생·학부모·교사 원탁토론 광장과 전국 중학교·초등학교 교사·학부모 원탁토론 광장 등을 계속 진행했다.

그런 과정에서 토론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 서서히 토론 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수많은 토론교육단체와 토론전문 강사들이 배출되었고, 토론회도 많이 개최됐다. 하지만 좋은 변화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오프라인 토론은 오히려 취약해졌습니다. 스마트폰과 SNS의 발달 때문에 토론을 못하는 학생들이 늘어났지요. 댓글로는 주장을 잘 펴는데, 마이크를 주면 말을 못합니다. 입술 근육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말을 잘하려면 입술 근육이 중요합니다.”

강 원장에 따르면, 입술 근육은 뇌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신경세포가 가장 많은 곳이 손과 얼굴, 발 등이기 때문이다.

▲사진 = 정의식 기자


“찬반토론은 토론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니다”

“입술 근육이 발달해야 뇌 근육이 발달합니다. 근데 우리 학생들이 입술 근육이 발달하지 않아서 말을 잘 못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적절한 말로 대처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잘하는 애들은 더 잘하고, 못하는 애들은 더 못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학부모·교사들이 자녀·학생들과 원활한 토론을 진행해 ‘토론 지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강 원장은 최근 ‘토론의 힘’이라는 단행본을 발간했다. 이 책은 다양한 토론 방법과 기술들을 소개하며 ‘일상속에서 절차가 있는 토론’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해외에서는 가족은 물론 회사에서도 회의를 열면 자연스럽게 토론이 시작되는데, 국내에서는 토론이 아닌 지시나 전달 위주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강 원장은 “유교적 전통으로 인한 한국적 위계질서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우리나라는 상대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 경어가 무척 발달해있습니다. 한국의 특수한 언어습관은 자유로운 토론에 방해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방송에서 접하는 토론의 대부분이 상대의 주장을 억누르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찬반토론’ 방식으로 진행되는 점도 문제다. 일부 학부모들은 “아이가 토론을 잘했으면 하지만, 이 때문에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싸가지 없는 아이’가 될까 걱정”이란 말도 한다. 강 원장이 말하는 토론은 찬반토론과는 좀 다른 방식이다.

“토론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찬반토론으로 가기 쉽지만, 찬반토론은 토론의 일부이지 토론의 전부는 아닙니다. 토론이 논쟁, 찬반토론으로 흐르는 것은 토론을 충분히 연습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로 발생합니다. 어설프게 토론을 배운 사람만이 싸워서 이기는 게 전부라 착각하고 상대방을 공격하고 무시하지요.”

제대로 토론을 배우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자기 생각과의 차이를 논리적으로 설득할 줄 알게 되고, 저절로 인성이 좋아지게 된다고 한다. 토론을 잘 하려면 말투와 말하는 방법도 상대를 배려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성질·성격·인격·인품 등으로 표현되는 인성도 좋은 쪽으로 바뀐다는 얘기다.


율곡교육연수원장 맡아 경기도 교육 혁신 추진

2012년 10월 경기도 율곡교육연수원 원장에 취임해 경기도의 교육 혁신을 위해 일하고 있다. 율곡교육연수원은 과연 어떤 단체일까?

“저희 연수원은 경기도 교육청 직속의 교직원 연수 기관으로, 교원과 직원 중 행정직 교원을 주로 연수하는 조직입니다. 교장·교감의 연수도 일부 하고 있습니다.”

강 원장은 율곡교육연수원 원장으로 일하게 된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이 추진하고 있는 경기 혁신 교육이 대한민국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혁신 교육이 잘되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또, 제가 가지고 있는 토론교육의 노하우를 우리 교육을 바꾸는데 접목하고 싶어서 입니다.”

율곡교육연수원 원장으로, 토론문화 전도사로 강 원장은 바쁘게 뛰고 있다. 지난 6일 강 원장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야탑초등학교를 찾아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토론이 아이의 미래를 바꾼다’라는 명칭의 강연회를 진행했다.

토론회에서 강 원장은 학부모들에게 아이들과 토론을 잘 하기 위한 다양한 요령들을 알려주며 “가정과 학교에서의 토론 교육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자녀들과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다녀왔을 때 네 가지 질문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억나는 것’과 ‘느낀 것’, ‘하고 싶은 것’, ‘궁금한 것’을 물어봄으로써 자녀와의 원활한 소통과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경청’이라고 덧붙였다. “아이와 대화할 때는 우선 아이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왜냐하면’ ‘예컨대’ 등과 같은 사고력을 유도하는 질문을 자주 하면 토론을 잘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습니다.”

‘다중 지능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지능은 IQ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성 지능(IQ), 감성 지능(EQ), 인성 지능(HQ), 영성 지능(SQ) 등으로 구분된다. 이를 좀 더 세분화하면 언어와 논리수학, 음악, 공간미술, 신체운동, 인간친화, 자기성찰, 자연친화, 종교적 실존 지능 등 9가지로 구분된다. 이 9가지 지능을 골고루 조화를 이루며 발달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토론 지능’이라고 강 원장은 역설한다.

“IQ와 EQ는 어느 정도 타고나는 부분이 있지만, ‘토론 지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 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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