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2호 정지우 중국문화 동시통역사⁄ 2014.03.31 14:01:49
『한국과 중국은 1일 생활권이다. 양국민은 비즈니스와 문화 교류가 빈번하다. 만남의 성패는 문화의 이해 여부에 달려있다. 그러나 중국을 깊이 아는 비즈니스맨은 많지 않다. 문화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한국 기업인과 공무원, 여행객을 위한 중국 비즈니스 매너와 중국 문화 칼럼 시리즈를 시작한다. 글을 쓰는 정지우 칼럼니스트는 반기문UN사무총장의 중국어 통역, KBS 해피투게더에 출연한 홍콩 월드스타 성룡의 동시통역 등으로 잘 알려진 중국 전문가다. <편집자 주>』
“시엔셩, 쩨이비엔칭. 시엔흐어져챠덩이시아(先生, 这边请。先喝着茶等一下).” ‘고객님, 먼저 이쪽에 앉아서 차를 드시면서 잠깐 기다려주세요’라는 뜻이다.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이 식당에서 흔히 듣는 표현이다. 한국 비즈니스맨은 바로 테이블에 앉으려고 한다. 이 때 십중팔구, 중국 식당 직원은 제지하며 소파로 안내한다.
회사의 대표이사를 수행한 중국담당 직원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평소 서울에서는 얼굴 한번 뵙기 힘든 ‘대표이사님’이다. 중국담당 직원은 황급히 중국 파트너사의 이름을 댄다. 당황한 목소리로 “이분은 한국에서 오신, 오늘 이곳을 예약한 분의 고객사 대표이사님”이라고 소개한다. 이어 목소리를 낮춰 “왜 테이블에 앉을 수 없냐”고 살짝 묻는다.
식당직원은 “아직 예약한 분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소파에서 차를 드시며 기다려 주세요”라고 한다. 이 장면을 본 한국인 대표이사는 기분이 상해 미간을 찌푸린다. “이게 무슨 일이야? 중국 분들은 오지도 않고, 식사 장소가 여기가 맞아?”라고 화를 내기도 한다.
비즈니스를 위해 중국에 간 사람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다. 중국인 파트너는 코리안 타임에 우리보다 더 익숙한 듯하다. 서울의 한국인 회사 임원을 초청을 해놓고도 이삼십 분은 늦게 도착하기 일쑤다. 또 넉살도 좋게 “하오펑요(好朋友-좋은 친구, 라오펑요(老朋友-오랜친구)”라며 껄껄 웃는다. 한국인은 속으론 ‘진짜 개념이 없어‘라고 생각하게 된다. 겉으론 애써 웃음을 지으며 “우리도 이제 막 왔다”고 반가운 듯한 인사를 건넨다.
“고객님은 이쪽에 앉으시고요, 고객님은 저쪽에 앉아주세요.”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식당 직원은 이번에는 중국어를 못하는 대표이사를 철통호위 하려던 중국담당 직원을 제지한다. 아예 앉을 자리를 지정해준다. 중국 담당 직원이 대표이사와 멀리 떨어져 앉는 상황이 발생한다. 불안한 대표이사가 “중국담당 직원이 통역을 해야 한다. 내 옆에 앉혀 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른다.
이는 중국의 서열 문화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서열을 많이 따진다. 비즈니스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앉는 자리에 따라 역할이 각각 다르다. 그러나 한국인은 중국의 접대자리 상석을 잘 알지 못한다. 중국에서 공부한 사람도 상당수가 그렇다. 이는 중국인도 비슷하다. 중국은 각 지역별로 선호하는 술과 주도가 많이 다르다. 한국인 담당자뿐만 아니라, 중국인조차 타 지역의 문화에는 익숙지 않다. 특히 한국인은 유학 시절에 중국어 공부만도 벅차다. 학생신분으로서 이런 비즈니스 자리에 참석할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다.
식사가 시작되면 중국인은 인해전술을 펼친다. 한 명씩 돌아가며 한국 대표이사에게 술을 권한다. 또 사이사이에 앉은 한국 직원들에게도 틈틈이 술을 권한다. 이때, 자리 배치 상 한국인 대표이사를 보필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곁에 앉은 통역 한 명뿐이다. 다른 직원들은 점점 취해가는 대표이사를 보며 고민할 뿐이다.
중국 비즈니스는 접대석상 자리와 역할 잘 파악해야
중국인은들은 자기들끼리만 건배를 한다. 중국인 사장에게 “사장님께서 저희를 초대해 주셔서 이렇게 좋은 자리에 올수 있었다. 한국인 파트너들과도 만날 수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도 흔하다.
한국인 대표이사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상황이다. 실제로 한 사장은 직원들을 질책한 적이 있다. “내가 이렇게 취했는데 당신들은 가만히 앉아서 눈치만 보고, 누구하나 나서질 않아요! 중국 사람 보시오. 서로 자기가 대신 마시겠다고 난리잖아요. 일 제대로 못해요?”
중국 비즈니스는 접대 석상에서의 앉는 자리와 역할만 잘 파악하면 성공할 수 있다. 한국인 대표이사만 만취해 실수하는 모습을 막을 수 있다.
중국 접대자리에서의 상석은 어디일까? 문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다. 유독 높게 말아 올린 냅킨이 세워진 곳이 메인 호스트석이다.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이 접대를 총괄한다. 그는 술과 음식은 권하되 잘 마시지 않는다.
대신 상석과 마주보는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계속 권주, 음식 추가 주문 등을 지시한다. 문에서 가장 가깝고 메인호스트와 마주보는 사람은 서열2위다. 가끔은 권주를 주도하여 술상무의 역할을 한다. 서브 호스트로서 음식과 술을 챙긴다. 술 상무 역할은 그 다음 서열 인물이나 혹은 아주 밑의 사람이 맡는다.
그러나 술 상무 역할을 했다고 해서 절대 하위권자가 아니다. 외국인 파트너와 합석하는 사람은 사내에서의 직급이 상당하다.
한국인도 전략적으로 자리를 배치할 수 있다. 중국에서 가장 일반화된 자리 배치도를 참고한다. 대표이사는 술 대신 중국의 메인호스트와 음식을 들고 대화를 나눈다. 중국 측에서 한국인 대표이사에게 권주를 할 때마다 한국인 직원들도 한 번씩 일어나 감사를 표시하며 대신 마시면 된다. 직원이 대신하여 마시겠다는데 안 된다고 할 중국인 파트너는 없다.
한국인 직원도 중국 측에 양해를 구한 뒤 한국인 대표이사에게 “사장님 덕분에 중국을 방문해 좋은 음식을 먹게 되어 감사하다”고 건배제의를 하면 금상첨화다. 이 광경을 지켜본 중국인은 ‘단결이 잘되는 한국인과 회사’라는 평가를 할 것이다.
정지우 = ‘중국문화 통역사’로 비즈니스 매너 전문가다. SBS, KBS, MBC 등의 공중파 방송의 동시통역사로 인기가 높다. 대법원 등의 관공서에서 통역을 하고, 삼성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CJ 등 글로벌 기업에서 중국 비즈니스 매너에 대해 열강하고 있다. 중국 북경대 외교학과를 졸업했고, 중국 교육부가 인정한 유일한 외국인 CS 전문강사다. 주중한국대사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담당관, 인천시 중구청 국제교류담당관을 지냈다. www.chinacs.kr
- 정지우 중국문화 동시통역사 (정리 = 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