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자문을 하던 중소기업 T주식회사의 박 전무님으로부터 급히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이 이혼 하셨다는 증거를 찾았습니다. 형수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찾아뵙겠습니다.” 박 전무님이 급히 가져온 서류에는 오래된 이혼합의서가 있었습니다. “형님의 금고에 잘 보관돼 있었습니다. 형님과 형수가 이혼했다는 증거로 충분하겠지요?”
T주식회사는 박 전무님의 형이 대표이사로, 친동생인 박 전무가 전무이사직을 맡아 경영하는 핸드폰 부품제조 업체입니다. 워낙 성실한 형제가 회사를 10여 년 동안 잘 경영해 왔고, 대기업에 납품을 하고 있어 나름 탄탄한 회사로 업계에서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사장으로 계시던 박 전무님의 형이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사장님은 다른 혈육이 없고 박 전무님만이 유일한 피붙이였기 때문에, 모두들 박 전무님이 회사 지분을 승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박 전무님이 상속재산을 정리하기 위해서 가족관계등록부를 조회해보니, 15년 전에 이혼하고 집을 나간 형수가 사장님의 부인으로 등재돼 있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돌아가신 사장님께서 사회 초년생일 무렵, 하는 일마다 실패를 하고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지자 부인과 이혼하기로 합의하고 이혼합의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부인과는 15년 동안 따로 살았습니다. 돌아가신 사장님은 부인과 헤어진 것이 워낙 오래된 일이었고, 자신에게 자식이 없어 굳이 가족관계등록부나 호적등본을 발급받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자동 이혼이 된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박 전무님은 어렵게 수소문해 형수를 찾아갔고 그간의 사정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형수는 이제 돌아가신 사장님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박 전무님은 다른 재산은 둘째 치고라도 회사의 지분만은 지키고 싶었습니다. “변호사님 이거면 충분하지요? 이 회사는 형님과 제가 어렵게 키워왔습니다. 자동 이혼이 된 것이 맞지요?” 어쩌면 T 주식회사의 운명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박 전무님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판사 앞에서 이혼 의사를 확인 받아야
안타깝게도 ‘자동 이혼’이란 것은 없습니다. 부부 간에 이혼 합의가 있어도 판사 앞에서 협의 이혼 의사를 확인 받지 않으면, 이혼이 되지 않습니다. 회사의 지분은 돌아가신 사장님의 부인이 전부 상속을 하게 됐습니다. 중소기업의 경우 누가 회사 지분의 과반수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회사의 상황이 크게 달라집니다. 당장 대표이사가 결재해야할 서류와 자금 집행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T주식회사의 매출이 곤두박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변호사가 ‘법률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박 전무님과 함께 상속인과 협상을 하는 것을 도와 드릴 수는 있었습니다. 결국 박 전무님이 상속세를 부담하고, 일부 돈을 지급하고 회사 지분을 양수하는 것으로 잘 합의가 됐습니다. T주식회사도 몇 달 정도 고생을 하다가 지금은 완전 정상화 됐습니다. “그때, 회사 지분이 경쟁 회사에 넘어가기라도 했다면 정말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아직도 박 전무님은 그때의 급박한 상황이 잊어지지 않는 듯합니다.
가정 법률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은근 많이 받는 질문이 ‘자동 이혼’입니다. 부인이 오래전에 집을 나갔다든지, 남편이 장기간 행방불명이라는 사유만으로 자동 이혼이 되는 법은 없습니다. 집나간 남편의 거주지와 연락처를 모른다고 해서 이혼을 못한다고 생각하고 내버려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 필요한 경우 사실조회 등 절차를 거쳐 남편에게 서류를 보내던지, 공시송달 절차로 이혼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T주식회사의 사장님이 이미 자신이 호적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혼 소송을 제기해 호적을 정리했을 것이고, 모든 문제가 간단히 해결됐을 것입니다.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정리 = 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