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다이어리]슬픔에 대처하는 예술인의 자세
그림을 통해 마음의 평온과 사랑을 찾고 치유하자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다. 이제 막 열여덟이나 되었을 아이들은 시커먼 바다에 갇혀 공포와 싸우고 찬 바다에 자식을 놓은 부모들은 짐승의 울음을 운다. 비극적이고 참혹한 일이다.
20년 전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강다리가 무너질 때와 비교해 우리는 문화적으로 성숙했고 각자의 삶은 질적, 양적으로 풍부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반복해서 생기는 것은 개인의 삶을 포함한 국가의 수준이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다 해도 그 신열의 과정에 대한 희생은 너무나 가혹하다. 20년 전과 비교해 결코 나아지지 않은 대처상황은 여전히 부조리하고 미흡했다.
연일 계속되는 뉴스에 비통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먹먹함이 무뎌지지가 않는다. 기도하고 슬퍼하는 일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미술이 위로와 안식을 줄 수 있다고 할 수 있는지, 미술이 삶을 어루만지고 치유한다고 말해왔던 것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아마도 많은 작가들, 미술 관계자들도 필자와 같은 회의를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이후 미술계에서는 사전에 마련된 예정했던 행사를 취소하거나 축소하며 국가적 애도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은 지난 18일 서울관에서 열린 덴마크 비디오작가 예스퍼 유스트의 작품전 ‘욕망의 풍경’ 설명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객선 침몰사고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미술관도 전 국민적 애도 움직임에 뜻을 같이하기 위해 조용히 전시투어만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시립미술관도 미술관 웹사이트에 “여객선 ‘세월호’침몰사고 실종자 여러분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미술관에서 진행 예정이었던 4월 이후의 문화행사를 당분간 취소한다.”고 공지했다.
▲동경도미술관 전시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세월호 참사 국가적 애도에 미술계도 동참
세종문화회관도 19일 개최하려던 ‘세종예술시장 소소’를 전격 취소했고, 삼성전자와 함께 지난 11일 밤부터 세종문화회관 뜨락광장에서 매일 저녁 상영해온 미디어아트 영상쇼 ‘갤럭시 S5, 새로운 감각 문화가 되다’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전시에 관련한 부대행사를 취소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 당연히 문화소비도 줄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세월호 참사 이전 주말에 비해 6000여 명 가량 관람자가 줄었으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은 700명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이렇게 각자 애도의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새 슬픔도 잦아들 것이고, 이번 사고를 되새기자는 취지의 여러 기념행사 또한 생겨날 것이다.
필자도 잘못된 위로와 첨언이 오히려 아물어 가는 상처에 독이 되진 않을까 우려된다. 고민 없이 만들어낸 어설픈 작품 앞에 아픈 사고를 되새기게 하는 타이틀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작가와 기획자는 이번 사고를 기억함에 있어 누구보다 고민하고 신중해야 할 것이다. 조직과 제도 앞에 무력한 개인에 대해, 슬픔에 절규하는 인간의 본능과 나약함에 관해, 분열하고 있는 시대가 가진 과제에 대해 누구보다 통찰력 있는 관찰과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진심을 더해야 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자발적인 봉사와 희생이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한 SNS 게시판에는 “비난과 단죄는 아이들이 살아온 뒤에 해도 늦진 않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뭐라도 하자”는 게시 글이 올라왔다.
정부와 언론에 대한 신뢰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되었지만 구성원간의 온정은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미술의 여러 가지 기능 중에 하나는 치유이다. 직·간접적인 표현을 드러내는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마음의 평온과 사랑 그리고 기억을 할 수 있다.
평소 대중들의 관심이 적어 늘 외롭고 힘든 삶 속에서 예술 창작을 하는 화가들이라 할지라도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현실과 동 떨어져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잔인하다 못해 끔직한 마음의 상처를 온 국민에게 가져다 준 2014년 4월, 우리 모두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잊히지 않기를 기원할 뿐이다.
이를 위해 미술계 또한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방법으로 구조자의 역할을 할 수 없다면 조금 더 큰 호흡으로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땅을 살다간 많은 위대한 화가들이 그래왔듯이 진심을 더한 통탄과 공감, 희망이 필요한 때이다.
- 고경 산토리니서울 미술관 큐레이터 (정리 = 왕진오 기자)
고경 산토리니서울 미술관 큐레이터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