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와 차 한 잔 - 세브란스 연세암병원 노성훈 초대원장]병 치료는 기본, 환자에게 감동을
환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미래의 병원 모델이 목표
한 해에 600여 회의 위암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있다. 지난 14일 개원한 연세암병원의 노성훈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국내 위암 수술의 일인자라고 할 수 있는 노 원장은 수술 시 메스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신 전기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꾸는 전기소작기라는 기구를 이용한다. “1990년 전후부터 전기소작기를 사용했으니 이미 25년 정도 됐다. 미세한 혈관으로부터 나오는 출혈을 열로 지혈하기 때문에 수술 중 출혈을 최소화할 수 있다.”
수술 중 출혈이 심하면 수혈을 하게 되고, 수술 시간이 길어지기 마련이다. 전기소작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수술시간은 4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었다. 수혈받는 환자도 전체의 5% 정도로 줄었다.
“환자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전기소작기를 사용했다. 전기소작기를 사용하면 수술 시간이 짧아져 마취제를 덜 쓰게 되고 신체적으로 스트레스도 적어 후유증도 훨씬 적다.”
수술 후의 환자를 상징하는 콧줄이나 심지도 노 원장과는 관계없는 얘기다. 위암 수술 환자들은 수술 부위에 분비액과 가스가 빠져 나가도록 콧줄을 달아야 하는데 이는 환자들에게 무척 고통스러운 조치다. 심지는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겼을 때 고름을 배출하기 위해 환자의 배에 넣는 호스다.
환자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노 원장은 콧줄을 다는 대신 수술 중 주사로 가스를 빼내는 방식을 채택했다. “환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면 수술 후 통증 때문에 특히 고통스럽고, 콧줄이나 심지, 소변줄 등이 제일 불편하다고 한다. 콧줄은 목이 붓고 그로 인해 염증이 생길 수도 있다. 의사로서 그게 없으면 환자들이 얼마나 편할까 생각하게 됐다. 산부인과의 무통마취를 도입해 통증을 완화했다.”
환자를 고려하는 노 원장의 열정은 ‘무작위 임상실험’이란 과학적 방법을 통해 학술적으로 연구되어 외국 저널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환자를 배려해온 노 원장의 자세는 원장으로서 병원을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14일 연세암병원 초대원장직을 맡은 이후, 노 원장은 암 치료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를 갖추는 것은 물론 환자에게 가장 이상적인 병원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현실화하고 있다.
연세암병원은 1969년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암전문 치료기관 연세암센터에서 시작됐다. 45년의 역사와 전통, 축적된 경험과 연구 네트워크 등을 토대로 세계 최고 수준의 암병원을 만드는 것이 노 원장의 목표다. 이를 위해 환자의 고통과 불편을 최소화하고 환자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노 원장은 지난 15일 암병원 개원 기자간담회에서 ‘3저(低)3고(高)’ 병원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즉 통증, 대기시간, 불안은 낮추고 전문가 확보, 정확한 설명, 새로운 환자경험은 더욱 높이자는 뜻이다.
“그동안 치료에만 집중하느라 암 환자의 정서적인 부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이를 개선하기로 했다. 치료는 기본이고 불안이나 우울 등 감정적 변화까지 고려해 환자가 받는 고통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Family Friendly Cancer Center’는 환자는 물론 환자의 가족까지 배려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슬로건이다. ‘3저3고’와 같은 맥락이다. 암 환자의 가족도 환자 못지않게 힘들다는 점을 고려해 기존에는 새벽에 받았던 채혈과 각종 검사를 오전 6시 이후로 미룬 것이 좋은 예이다.
“보통 채혈 등과 같은 검사는 외래 환자의 진료보다 빨리 이루어져서 이른 새벽에 진행했는데 이에 대한 환자들의 불편이 대단했다. 이를 조절해서 환자와 가족들이 새벽에 방해받지 않고 병원에서도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다.”
‘굿닥터팀’을 구성한 것 또한 환자의 입장에서 병원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고민한 결과다. 의사 49명, 코디네이터 17명 등 총 66명으로 구성된 굿닥터팀은 진료를 시작하기 전부터 치료 후 관리, 교육 등 전 과정에서 환자에 대한 서비스를 책임진다.
환자와 가족들이 최적의 환경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세심한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효과적인 암의 치료다. 이를 위해 연세암병원은 이번 개원에 맞춰 최신의 치료장비를 대폭 확충했다.
우선 로보틱 IMRT(세기조절 방사선 치료기)를 아시아 최초로 도입했다. 광자선 에너지를 6개의 관절로 구성된 로봇에 장착해 치료 효율을 극대화하는 장치다.
LINAC 방사선 치료기도 3대를 추가 도입해 총 6대를 가동하고 있다. 토모테라피 3대도 세브란스 본원에서 이전 가동되며, 암 수술에 특화된 다빈치 로봇수술기도 새로 1대를 도입해 총 3대를 운영한다. 특히 ‘꿈의 암 치료기’라 불리는 양성자 치료기도 조만간 도입할 예정이다.
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체계를 만들기 위해 연세암병원은 ‘다학제 진료’ 시스템을 또한 운영하고 있다.
이는 환자들이 자신의 진료를 책임질 전체 의료진을 한자리에서 보며 각 분야별 전문 의료진으로부터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노 원장은 “최근의 암 치료는 수술, 항암 약물치료, 방사선치료 중 어느 한 가지 방법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복합치료가 필요하다”며 “여러 진료과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베스트팀’, ‘암 생존자 통합관리’ 등 프로그램 마련
암 질환 특성상 정확한 진단, 치료 계획 수립 그리고 효율적인 치료를 위해선 관련 진료과의 유기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노 원장은 연세암병원의 전신인 연세암센터 때부터 ‘팀 어프로치’라는 개념으로 다학제 진료를 도입, 운영했다. 현재는 지난 45년간 축적된 팀 어프로치 치료 경험과 노하우를 더욱 발전시켜 ‘베스트팀’이라 명명하고, 운영하고 있다.
노 원장은 현재의 베스트팀을 점차 확대할 방침이다. 베스트팀을 운영하는 센터는 간암, 갑상선, 대장암, 두경부암, 식도암, 위암, 유방암, 폐암 등 8개인데 차츰 모든 센터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현재 다학제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진료할 수 있는 4개의 진료실을 확보했다.
또 하나,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방과 재발 방지다. 연세암병원 내에 암예방센터를 운영하면서 ‘암 생존자 통합관리(cancer survivorship)’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 원장은 “연세암병원 한 공간 안에서 암과 관련한 모든 치료와 교육, 예방, 사후 관리까지 할 수 있으므로 효율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암의 조기발견 비율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치료 성적도 좋아지면서 5년 이상 생존하는 완치자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해서 모든 걱정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환자들은 치료 후에도 2차 암 발생이나 재발, 전이암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린다. 암 치료 후 발생하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치료 기간 동안 체력이 떨어져 있거나 암 발생 부위의 장기가 제거되어 다른 질병 위험에 노출되는 위험도 있다.
암 생존자 통합관리는 암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각 분야 암센터와 유기적으로 연계해 재발 방지는 물론 각종 연관 질환과 후유증 등을 종합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다.
‘노아의 방주’와 ‘빛의 기둥’은 연세암병원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노아의 방주’에서 생명을 구하고 암 완치의 희망과 약속의 상징인 ‘빛의 기둥’으로 향한다는 의미”라고 노 원장은 설명한다.
‘노아의 방주’는 병원 출입구 전면에 설치됐고, 삼나무로 만들어져 배의 앞부분을 형상화했다. 암 진단 후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치료를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연세암병원이 완치를 위한 가장 확실한 길잡이가 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재준 작가의 재능기부로 완성된 ‘빛의 기둥’ 또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표현한다.
노 원장은 “세브란스 병원의 오랜 역사를 고려해서 상징물을 구상하게 되었다. 병원의 의사와 각 구성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제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의 의미도 있다. 암의 완치는 물론, 환자들의 입장에서 다양한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통해 치료하고 위로하면서, 나아가 감동을 줄 수 있는 병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 안창현 기자
연세암병원의 3대 특화 센터(Signature Program)
연세암병원은 위암, 간암, 대장암 등 15개 암 전문센터와 더불어 3개의 특화 센터를 신설했다. 암 전문센터와 특성화 센터는 서로 연계해 암 예방부터 진단, 치료, 교육까지 모두 맡는다. 기존 암 치료가 질병 자체의 신속한 치료에 무게를 두다 보니 환자의 다양한 신체적, 정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했고, 더욱이 환자 가족이 겪는 심적 부담을 덜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서다.
암예방센터 : 암 예방과 관리를 위한 통합 의료서비스 제공
암 치료를 넘어 궁극적인 암의 예방과 치료 후 관리에 중점을 둔다. 일차적으로 암 치료 이후 5년을 경과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의학적으로 치료 후 5년 내에 재발이나 2차암이 발병하지 않으면, 치료 목표가 달성된 것으로 보고 정기적인 진단만을 진행한다. 그러나 상당수의 암환자는 재발에 대한 심적 부담과 보다 전문적인 질환 관리를 손쉽게 받기를 원하고 있다.
센터는 암 치료 후 통합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암 종별 특성에 맞는 정밀 진단과 함께 암 발병 및 치료에 따라 발병 위험이 높아진 질환군(심혈관질환, 골다공증, 당뇨 등)에 대한 예방과 조기 진단을 한다.
환자 가족들에 대한 관리도 함께 진행된다. 환자의 식습관과 유전적 특성을 공유하는 가족들은 암 발병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므로 조기 진단에 의한 초기 치료와 예방을 위한 생활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센터에서는 암의 가족력이 높은 ‘위암, 대장암, 혈액암, 유전성 암, 대사관련 암’ 등 5대 암 고위험군 프로그램을 집중 운영할 예정이다.
암지식정보센터 : 모든 암에 대한 길라잡이
세브란스가 그동안 축적한 암에 대한 모든 정보와 국내외 최신 정보를 한자리에 모은 곳이다. 환자와 보호자는 물론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센터에서 검증된 상세 자료를 접하게 해서 암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고 조기 진단을 이루고자 마련됐다.
센터는 이용자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고자 인쇄 매체는 물론 다양한 동영상 자료와 인터넷을 통한 정보검색을 가능하게 했다. 다양한 암 건강강좌가 교육실에서 정기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센터 내 위치한 상담실에는 전문 의료진이 상주하면서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HELP(Health & healing, Education, Look good, Psyco-social support & Prevention) 통합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이를 통해 환자는 물론 그 가족까지 암에 대해 알고 이를 극복하면서 건강한 일상의 삶을 되찾게 된다.
완화의료센터 : 치료를 넘어 돌봄의 진료서비스 제공
완화의료센터는 암 치료 전 과정에 걸쳐 환자는 물론 가족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부담의 완화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통합 진료서비스 기능을 맡고 있다. 이를 위해 센터는 독립된 외래진료실과 치료실 및 병동을 확보하고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다양한 진료 및 상담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모든 암환자들이 호소하는 ‘통증관리 프로그램’이다. 기존에도 암 치료 과정이나 치료 후 발생하는 다양한 통증(암성 통증, 수술 통증, 스트레스성 통증 등)은 주치의를 통해 완화치료를 받아 왔으나 치료의 연속성과 전문성이 다소 부족했다.
완화의료센터에서는 15개 암센터로부터 의뢰된 통증 환자에 대한 전문적인 완화 치료를 함으로써 이를 해소한다. 불가피한 치료 부작용 증상은 물론 우울증과 경제적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전문 간호사와 사회사업사와의 상담 창구도 개설된다. |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