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 큐레이터 다이어리]죽음에 관한 예술적 시선
재불작가 남홍, 한 줌의 재가 다시 생명으로 피어나는 과정을 구현
세월호 참사로 정신을 빼앗긴 사회적 분위기가 가실 줄 모른다. 어찌 할 수 없는 죽음 앞에 산 이와 죽은 이 모두의 무력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무력감에 발버둥 치는 모습은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수많은 행사들이 취소되는 것, 자원 봉사를 가는 것, 구호 물품을 보내는 것, 실시간 애도의 글을 남기는 것 등 몰입이 상당하다.
구조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동요하고 정치에 일격을 가하는 극도의 예민상태. 그 이면에는 정치와 사회시스템만을 탓하기에는 우리도 그 시스템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신의 무능력함에 더 화가 나는 심리가 서려있는 듯하다. 비판의 대상이 적이 아니라 바로 우리라는 것에 황폐해진 마음이 슬픔을 가중시키고 애도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피폐한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사회 전반의 시스템에 대해 의구심을 품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삶의 괴로움을 이 사건에 이입하고 있는지 목도하게 되니 씁쓸함이 밀려온다.
이러한 형국에서 나라는 존재는 그 어느 때 보다 한낱 미물 같았다. 나라는 우주는 지금 이 세상에서 너무도 중요치 않은 느낌이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은 저기 어딘가에서 잠자코 있어야 하는 느낌. 감히 예술을 논해서 무엇 하겠는가 하고 취급을 당할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죽음 앞에 더 강인한 생명력이 꿈틀대는 법. 내 생명에 대한 감사를 증명하고 싶은 의지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내게 있어 노란 리본을 묶는 행위만큼의 예술적 실천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고, 전하고 싶었다.
누구는 죽음을 맞고 나는 살아있으니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 자체는 잔인하다. 감사의 행위로 승화시키는 것만이 이 잔인한 부조리를 넘어 삶을 축복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이다.
▲진화랑 남홍 작가 퍼포먼스 장면. 사진 = 왕진오 기자
침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만이 최선일까. 죽음도 삶과 맞닿아 있는 인생의 일면이다. 삶은 아름답고 죽음은 비참하기만 한 것인가. 죽음에 대한 시각을 확장시키는 예술의 가치에 다시금 주목해본다.
영국 작가 데미안 허스트는 죽음 관련 화두를 돌직구로 표현함으로써 세계를 제패했다.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박제된 동물사체, 수 만 가지 약품의 진열,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의 등장. 이는 모두 사후를 궁금해 하는 욕망, 여타의 죽음에게 갖는 관음증적 욕망, 죽음을 유보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장면이다.
그 진실을 터부시해온 우리는 당혹스럽지만 금기를 깨준 통쾌함에 이내 찬사를 보내게 되었다. 인간의 생에서 최고로 두려운 쟁점을 표현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엄청난 환희를 제공하는 것임을 깨우치도록 하는 것. 예술의 유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진화랑 남홍 작가 퍼포먼스 장면. 사진 = 왕진오 기자
얼마 전 진화랑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재불 작가 남홍의 작품세계를 보면 우리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에서 느꼈던 묘한 역설을 한 차원 아름다운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남홍은 한지를 태운 재를 이용하여 나비형상을 만든다. 그의 화면은 수백 마리 나비의 파닥거리는 날개 짓으로 생명력이 넘쳐난다. 죽음은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그녀는 한 줌의 재가 다시 생명으로 피어나는 과정을 구현함으로써 생과 사의 순환에서 일어나는 에너지가 이 우주에 더할 나위 없는 활기를 준다는 것을 펼쳐 보인다.
진정한 애도는 아름답게 생을 성찰하는 실천
여기서 죽음은 곧 자유를 의미한다. 내일 죽는다는 생각은 잠자던 세포까지 깨어나게 하며 지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을 준다는 것이 그 작업의 모토이다.
죽음은 삶을 다시 보게 한다. 세상 어딘가에 빛을 부여할 기회를 준다. 이 생에서 감사할 수 있는 대상을 더욱 따뜻하게 끌어안을 수 있는 기회. 그것은 내 자신일 수도, 풀잎 혹은 바람 소리일 수도 있다.
예술로서 죽음을 포용하는 마음의 양식을 얻도록 영감을 주는 역할에서 나는 내 존재의 희망을 거듭 찾아본다.
▲남홍, 가슴속에흐르는 강, 148x200cm, acrylic, pigment on canvas, 2008
사회적 기류 때문에 의미 있는 행사들까지 무분별하게 취소되는 현상은 열정 다해 준비한 이들을 또 하나의 피해자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 어두운 마음에서 헤어 나오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흑(黑)이 있기에 백(白)이 더 백답게 밝게 느껴지는 것처럼 죽음이 있기에 생은 더 찬란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 생을 아름답게 살펴보는 실천이 떠난 이들을 보내는 가장 좋은 애도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는 오늘 가장 소중히 여기는 친구를 만나고, 내일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내 생명의 감사를 행하려 한다.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
- 신민 진화랑 실장 (정리 = 왕진오 기자)
신민 진화랑 실장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