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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지석 주한영국대사관 선임 기후변화담당관]기후변화는 가설 아닌 과학, 친환경경제로 대전환 이뤄야

‘기후불황’ 책 저술… “현대자동차, 수소연료전지차 고집하면 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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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79호 정의식 기자⁄ 2014.05.22 08:54:51

▲사진 = 이성호 기자


『‘온실가스’로 잘 알려진 기상이변과 기후변화는 모든 사람들이 체감하고 수많은 과학적 근거로 증명된 사실이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음모론’으로 외면받고 있다. 김지석 주한영국대사관 기후변화담당관이 집필한 ‘기후불황’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미국 브라운대와 예일대에서 환경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현대자동차에서 친환경차를 연구했던 그에게 기후문제의 위험성과 그에 대비할 방법론을 들어보았다.』


주한영국대사관 선임 기후변화담당관으로 나와 있는 김지석(남.39세)의 명함을 처음 받아본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묻는다. “대사관 직원이 왜 기후문제를 맡고 있지요?”라고.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사관 직원의 업무와는 다소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영국대사관은 왜 기후변화까지 개입하는 것일까? 아니 영국정부는 왜 남의 나라의 기후정책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기후변화는 영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살펴보면 영국이 1.5%, 중국 30%, 미국 25%, 유럽연합 15%쯤 됩니다. 영국이 0%로 줄인다 해도 딴 데서 많이 늘려버리면 헛수고가 돼버리는 구조입니다. 과거 영국은 기후변화 문제를 이대로 방치했을 때 세계가 어떻게 바뀌는가를 시뮬레이션 했습니다. 그 결과 해안국가인 영국은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나라들에 포함됐습니다.  ”

이러한 문제 때문에 영국 외무부는 2005년부터 전 세계 대사관에 기후담당관을 파견하고 있다. 현재 외무부의 기후변화팀은 중국에만 25명이 있으며, 일본은 7명, 한국은 3명이다. 주한영국대사관의 경제팀 인원이 3명인 것을 감안하면 영국이 생각하는 기후변화팀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기후변화팀이 조직될 당시인 2005년 집권 노동당의 캐치프레이즈는 “더 나은 세계, 더 나은 영국(Better World, Better Britain)”이었다. 영국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미국 브라운·예일대서 환경학·경제학 공부

김지석은 충청남도 공주 태생이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잘했지만 최상위권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중학생이 된 어느 날 아버지는 갑자기 “너 미국유학 한번 가볼래?”하고 제안했다. “가보죠 뭐”하고 답변했다. 덕분에 1990년대 초반에 흔치않았던 조기유학생이 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재력과 선견지명 덕분으로 생각합니다.” 남다른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었던 부친은 1970년대에 전파사를 운영하다 TV산업의 발전가능성을 예상하고 주변의 자금을 모아 지역TV 유선방송사업권을 따냈다. 덕분에 지역에서 알아주는 재력가가 됐다.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미국에 가면 애플2같은 최신 컴퓨터와 각종 게임기를 현지에서 가장 먼저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어라는 장벽도 다양한 최신 미국산 게임을 즐기던 그에게 큰 장애는 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초반의 언어 문제를 극복하고 대학 입학을 준비하던 고등학교 4학년 시기, 갑자기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하며 그는 ‘갑작스러운 죽음이 닥치더라도 여한이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도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낡은 차를 타시면서도, 저를 유학 보내거나, 사촌형의 불치병 치료에 3000만원의 거액을 선뜻 내놓으시는 등 돈을 써야할 때는 과감하게 큰돈을 쓰는 분이셨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던 시점에 학교에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다. 기상이변이 핵무기보다 파괴적이라는 얘기에 굉장히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별 관심 없는 학생들도 많았다. 이때 “남들이 다 안하니까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운대 환경학과에 지원하면서 입학서류에 “나를 받아주면 기후변화 해결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제출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아이비리그의 일원이기도 한 이 대학은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에 있는 사립대로 1764년에 설립됐다.

환경학과에 들어간 이후 2학년 때 경제학으로 전과하고, 3학년 때는 복수전공으로 환경학과 경제학을 함께 수강했다. 졸업할 때가 되서야 브라운대 180년 역사에 환경학과 경제학이라는 두 학문을 동시에 수료한 졸업생은 자신이 유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그는 예일대 환경대학원에 진학해 공업환경관리학을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곳에서 그는 친환경 제품을 평가하는 다양한 모델과 연구기법을 배웠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육군사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관으로 복무했다.

그가 생각한 인생의 목표는 ‘이산화탄소 줄이기’였다. 이산화탄소의 증가가 기후변화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친환경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기획실 환경경영전략팀에서 근무하며 친환경차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유럽 이산화탄소 규제에 대응하는 프로젝트를 4년간 수행했다. 많이 도전하고, 많이 깨지고, 많이 배웠다.

“아무도 원치 않는 제품을 기업 자체적으로 만든다는 건 굉장한 모험이지요. 소비자가 원하거나 국가적 규제가 있을 때, 그 대응으로 개선된 차가 나옵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팔릴지 안 팔릴지 모르는 차를 5000억원, 1조 들여서 개발한다는 건 어렵습니다.”

현대차의 친환경차 정책을 ‘실패’로 결론짓는 이유다. 특히 아쉬운 것은 하이브리드차, 전기차가 아닌 수소연료전지차에 집중하는 친환경차 전략을 바꾸지 못한 것이다.

“수소연료전지차는 대안이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수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수소를 만드는데 전기가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에너지 효율이 낮을 수밖에 없지요. 게다가 백금을 촉매로 사용하는데, 백금은 비싸고 양도 한정돼있지요.”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수소연료전지차는 현재 대부분의 자동차기업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가 수소연료전지차를 계속 만드는 이유는 “과거의 관성과 조직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현대차에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해 답답해하던 시기, 마침 주한영국대사관이 기후변화팀을 맡을 인력을 모집하는 것을 알게 되어 현재의 직함을 얻게 됐다. 이후 강연과 기고, 이벤트, 각종 협력사업 등을 통해 정부와 사회에 기후변화의 여론을 일으키는데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 동안의 논란과 연구결과를 집대성해 기후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단행본 ‘기후불황’을 집필했다.


현대자동차 4년 근무, 도전과 좌절 겪어

단행본 ‘기후불황’은 ‘조만간 기후문제로 불황이 닥칠 것이다’ 식의 미래예측을 ‘주장’하는 책이 아니다. 담담히 지난 100여년 간 일어난 기후변화 사례들과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정리하고 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기후변화가 ‘가설’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과학’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구체적 증거는 어떤 것들일까?

“먼저 반복되는 가뭄을 들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가뭄이 워낙 심해서 아몬드 나무 가지를 다 자르고 있습니다. 가뭄에 버티기 위해서죠. 텍사스에서 소를 키우는 농장들은 소를 다 도축해버렸습니다. 풀이 안 나고 물이 없으니 목장이 운영되지 않습니다. 북쪽은 건조해지고, 남쪽은 북쪽처럼 바뀌어 소 농장이 북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쇠고기 가격도 최고로 상승했습니다. 과거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 국내에서 광우병 논란이 있었지만, 이제는 한국에 수출할 고기 자체가 부족해진 상태입니다.”

▲사진 = 이성호 기자


올해 들어 브라질에 가뭄이 들어 커피값이 치솟았다. 때문에 스타벅스는 5월 커피 구입을 포기했다. 파운드당 1달러 미만이었는데 2달러가 넘어갔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10월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동부연안을 강타한 이후 미국 보험사들과 스위스의 재보험사들은 해안가 마을의 보험 가입을 거부하고 있다. 보험업이 유지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사고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시의 경우 허리케인 샌디에 파괴된 스탠튼 아일랜드 등 해안가 마을의 복구를 아예 포기한 상태다. 그래도 복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해일을 염려해 기존보다 2미터 높은 건물을 세우고 있는데, 뉴욕시측은 재건 포기를 권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후변화로 어떤 위기가 닥치게 될까? 예상되는 가장 큰 문제는 ‘식량난’이다. “사람들이 잘 실감을 못하는데, 온도가 3~4도 정도만 올라도 세상이 완전히 바뀝니다. 벼는 발아기에 한계온도를 넘은 날짜가 3~4일만 지속되면 다 쭉정이가 됩니다. 아무 것도 열리지 않는 거죠. 가뭄이 심하게 드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현대과학으로 아직 극복할 방법이 없습니다. 인공강우도 아직 실용화되진 못했습니다.”

현재 경제위기는 ‘에너지 불황’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리터당 600원이었던 휘발류 가격이 현재는 2000원 이상이다. 국제석유가격도 배럴당 100달러 선에서 줄어들지 않고 있다. 덕분에 수송비와 배송료 부담이 커지고,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이 와중에 기상이변이 닥쳐서 식량 가격은 나날이 상승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전 세계 식량 가격은 150% 상승했다. 식량 가격까지 올라가고 배송비, 보관료가 올라가면, 지구적 규모의 식량난이 발생할 수 있다.

“1985년엔 전 세계 식량비축분이 4개월 분량이었습니다. 현재는 2개월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명백한 증거와 예상되는 위험들 때문에 주요 선진국들은 국제공조를 통해 대응해왔다.

“영국 외에도 유럽연합 모든 국가들이 온실가스를 줄여 기후불황을 대비하고 있고, 미국도 오바마 대통령이 이달 6일부로 성명서를 내고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심지어 미군조차도 자체적으로 연구하고 대비하고 있다. 반기문 사무총장도 제일 열심히 기후문제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국제공조를 통한 기후변화대응의 좋은 사례는 바로 남극의 오존층이다. 1985년 영국 남극연구팀이 남극의 오존층이 얇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존층은 인간을 비롯한 많은 생물의 생존에 치명적인 자외선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냉장고의 냉매로 사용되는 프레온가스가 분해되면서 오존층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1979년경 서서히 얇아지기 시작한 남극의 오존층은 1987년경엔 남극대륙 전체를 덮은 커다란 구멍으로 확대 관측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유럽을 중심으로 20여 국가가 프레온가스의 사용을 제한하는 빈협약에 가입했다. 1987년 프레온가스 사용 금지와 오존층 복구를 위한 몬트리올의정서가 합의됐다. 이후 실제로 프레온가스의 유출이 줄어들면서 남극의 오존층 구멍의 확장은 멈췄다. 물론 아직 예전처럼 줄어들지는 않고 있다.


“기후문제 해결 위한 국제적 공조 절실”

오존층 문제와 비교하면 이산화탄소 감축은 훨씬 어려운 문제다. 모든 산업에서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여야하기 때문이다. 1997년 일본 교토에서 37개 선진국들이 앞장서 온실가스를 2012년까지 1990년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합의했다. 미국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유럽국가들은 목표달성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기후문제가 서구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저탄소·친환경 경제체제를 갖추지 못한 국가들에 대한 압력도 커지고 있다.

“최근 하버드대학생들이 총장에게 석탄·석유회사에 투자한 자금을 다 빼라고 요구했습니다. 예전 인종차별논란 때와 같은 운동방식입니다. 미국인들이 아직은 자국 내 환경문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시야를 외부로 돌리면 우리나라 같은 수출국은 호된 대가를 치를 수 있습니다. 열심히 싸고 좋은 물건을 만들었다 해도 화석연료로 만들어졌다면 친환경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아동노동을 착취해서 만든 비윤리적인 제품같은 취급을 받는 거죠, 우리가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면 외부로부터 변화를 강제 당하게 될 겁니다. 예전 IMF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는 겁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일단은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합니다. 밥을 안 먹을 수는 없지만, 자동차 운행은 꼭 필요하지 않으면 줄여야 합니다. 지금 여행하고 놀러 다니는 것이 후세 아이들에게 독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해외여행을 위해 비행기 한번 띄울 때마다 엄청난 에너지가 사용되고 온실가스가 늘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정치인들에게 정책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효율성을 이유로 화석연료 사용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제품가격이 비싸지더라도 비싸게 만들고 비싸게 사야한다는 것이다. “아이들 다 죽이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경제논리로만 가다보면 현재의 상황이 더 악화될 뿐이지요.”
마지막으로 그는 ‘태양광 투자’를 주장한다.

“저는 가족과 친척은 물론 주위의 모든 가정에 태양광 시스템을 설치하고 추천하고 있습니다. 자체 사용할 전기가 해결되고, 남는 전기를 발전소에 판매해 돈도 벌 수 있습니다. 노후를 위한 좋은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 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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