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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임안나]날 것 같은 생생함, 비단결의 평온함

사진력 20년의 신인 같은 중견, 이미지-기호로 이루어진 꽉 짜인 상징계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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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6호 박현준⁄ 2014.07.10 09:30:27

▲임안나 작가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사진가이자 교육자, 기획자 및 번역가로 다양한 활동을 해 온 임안나는 신인처럼 여겨지는 신선한 중견이다.

이름은 알지만 의외로 작업은 잘 모르는, 혹은 작업에 앞서 마음 좋고 속 깊은 사람이라는 평판이 커서 작품세계가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소문 속의 작가였기 때문이다. 아니면 날것의 생생함과 ‘비단결의 평온함(安羅)’이 조심스럽게 공존하는 작업의 특성상, 작품만 봐서는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첫 개인전을 연 것이 1995년이었으니 올해로 사진력 20년이 되었다. 70년대 생으로 생의 절반 이상을 사진만 해 온 임안나는 우리 시대에 가장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발산체인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매체와 함께 태어나고 자란 첫 세대에 속할 것이다.

즉 매스 미디어가 변형시키고 유포한 이미지들을 소비하는(읽어내는) 주체의 탄생인 것이다. 올해는 임안나에게 이미지 연금술사로서의 터닝 포인트가 될 중요한 해이다. 스스로 밝혔듯이 전업 작가로서의 선언이 있었고, 사진가로서의 이력도 사춘을 지나 선명한 성인에 이르렀다.

▲Romatic Soldiers s#7, Pigment Print, 2011


작업에서도 중요한 변화의 분수령을 맞았는데 초기의 작업들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집중하였다면 후기로 올수록 상징계 너머의 ‘실재’에 이르려는 불가능한 시도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이미지세대답게 우울, 상실, 두려움, 환각 등의 내면풍경을 다양한 기법들을 동원하여 보여주었다면 후기에 이르면서 세계와 직접적으로 부딪치며 강렬한 은유와 상징들을 끌어들인다. 그렇게 이미지-기호로 이루어진 꽉 짜인 상징계의 상징들은 임안나 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임안나의 작업들이 비교적 읽기 쉬운 상징코드들과 명확한 구도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새롭고 낯선 이유와 그 미지의 생소함에 대해 이 자리에서 짧게 이야기해볼 계획이다.(중략)

▲Romatic Soldiers s#13, Pigment Print, 2011


임안나의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오브제들도 현실과 경험을 중시하는 초현실주의의 심미적 방식과 연결된다. 이러한 오브제를 통해 현실을 낯설게 보여주거나, 무의식적이고 꿈같은 이미지로 이성(낮, 인식)의 세계에서는 억압되고 통제된 것들을 꿈(밤, 무의식)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호출해낸다.

임안나의 작업세계의 큰 전환이 되었던 ‘White Veil’(2008)의 사물들이 소박하고도 지극히 순수한 상태의 내밀한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다면, ‘Romantic Soldiers’(2011), ‘Irony addicted’(2012)에서는 캐스팅된 사물마다의 적절한 신화소와 상징, 이미지와 리듬을 긴밀하게 조응키시고 있다.

신비로움과 일상, 꿈과 현실, 만날 수 없는 것들의 우연한 조우, 새장 속에 갇힌 비행기의 상승과 하강, 전쟁과 사랑, 여성과 무기, 꽃과 장병, 여성성에 잠재된 삶과 죽음의 이중성,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변증법적으로 연결된, 아이러니한 결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슬립과 의자, Pigment Print, 2008


언뜻 보면 차이와 유사, 대조와 비교 등의 이항대립체계를 통해 작품의 텍스트를 만들어내려고 한 것 같지만 임안나의 작품들은 손쉬운 해석으로부터도 조금씩 달아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사물과 예술 작품의 이분법을 해체하려는 아방가르드적 지향이 보이기도 한다.

서로 비슷하거나, 반대되는 것들의 이분법을 취하되 다시 허물어트리고, 이분법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의미들을 파생시키는 것. 삶과 예술은 서로 변증법적으로 연결된, 궁극에는 그 경계가 해체되고 예술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예술이 되는 임안나의 가벼운 유희들이 로맨틱하고 아이러니하게 펼쳐진다. 

▲Hello Kusama #3, Pigment print, 2013


스펙타클 전략 - 이미지 전쟁

임안나의 작업에서 풍자와 반성, 희극과 비극은 격렬하지만 가볍다. 매스 미디어에 끝없이 노출되어 온 영상세대답게 은폐와 조작된 허구들에 특히 눈이 밝아서 일 것이다. 사진 이미지의 생산자이자 소비자이고, 사진으로 세상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사진가의 자리는 빵과 케이크와 꽃들과 함께 등장하는 용사(프라 모델 병정)들의 조우처럼 이항 대립적이다. 세계의 분열을 자신의 분열로 받아들이지만 총을 쏘지도 못하고 수동적으로 포즈만 취하게 되는 것이다.(중략)

▲셔츠와 나비, Pigment Print, 2008


임안나의 상징들

임안나의 작품 속에는 많은 오브제들과 동화, 영화, 음악 등 각종 문화적 기호들이 등장하며 특유의 풍자로 기존의 거시 담론을 가볍게 재생시키고 있다. 불온한 동화속의 이 주인공은 오늘날 자본주의 일상 속의 세속적 시간에 균열을 내지만, 결코 창백한 비관이나 허무로 빠지지 않고 오히려 이를 따뜻하게 포용하고 고양시키며 섬세한 감각들을 보여줬다.

“내 몸무게 중 기억은 몇 kg이나 차지할까. 설레임은 또 얼마이며 행복은 어느 부위에 모여 있을까. (……) 소리도 냄새도 그리고 체온도 담아내지 않은 사진인데, 정말 나의 생각을 담을 수 있을까. 내일은 어떤 작업을 할까? 아이들이 버리고 간 우주선을 타고 집으로 향한다.” ‘어느 해 9월 21일’이라 적힌 그녀의 노트는 연륜이 더해갈수록 더욱 맑고 순수한 니오타니(neoteny)의 설렘과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임안나에게 태양이 에너지를 계속 공급해주는 한 잉여의 에너지가 모두 사진에너지로 전환되는 즐거운 게임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 최연하 (전시기획, 사진비평가)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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