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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큐레이터 다이어리]사유의 시간

종일 예술과 접하며, 자기신념을 통한 가치관 되돌아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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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7호 김연희 나무 모던 앤 컨템포러리 큐레이터⁄ 2014.07.17 08:45:04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늘어만 가는 삶의 무게만큼이나 부모로서, 친구로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개개인의 역할이 늘어 가고 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언제나 늘 바쁘다. 과도한 업무의 양과 더불어, 자기개발에 할애해야 하는 시간까지 이 모두를 완벽하게 해내고자 하는 욕심들로 넘쳐나는 세상이다.

필자 또한 큐레이터임과 동시에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는 현대인이다. 많은 양의 업무 속에 지칠 때도 많지만, 딸로서의 도리, 누나로서의 도리, 친구들로서, 한 무리 안의 일원으로 맡은 바 역할을 다하고자 늘 항상 바쁘다. 이렇다 보니 시간의 주체자로서 살아가기보단 끌려가며, 쫓기며 살고 있는 것이 맞는다고 해야 한다.

물론 애정을 갖고 있는 일을 끝마쳤을 때의 성취감, 희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보내는 따뜻한 시간 등 그곳에서 오는 다양한 감정으로 만족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나는 오늘 이렇게 바쁜 현대인들 속에 필요한 ‘사유의 시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한다. 필자 스스로 요즘 가장 열망하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문득 우연히 접한 책 속의 한 부분을 발췌해 보았다. 

“꼭 살인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다.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 이주국을 총괄했던 이이하만. 일제 강점기 관료로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많은 독립군, 무고한 조선인들을 잡아 넣었던 친일 부역인들. 단지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면, 이들에게는 ‘순전한 무사유’의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상부의 명령이 유대인에게 그리고 조선인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지, 자신이 수행할 의무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 지 성찰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 해야만 할 ‘의무’이다.” -사유의 의무- <<철학이 필요한 시간>>

▲오르세미술관전에 전시된 카롤루스 뒤랑의 ‘앙포르티 후작 부인’ 초상을 관람객이 감상하고 있다. 사진 = 왕진오 기자


위의 언급 된 내용과 같이 인간의 살생 여부의 중대한 선택의 기로 복면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이 글귀를 읽는 순간, 우리는 과연 ‘사유’의 중요성을 내 삶에 있어 얼마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그것에 할애를 하고 살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전시를 기획하면서 안타까운 점

아침에 헐레벌떡 일어나 출근하고, 정신없이 업무를 마치고 퇴근 후 밀려오는 피곤 감으로 하루를 마치며 매번 반복되는 패턴의 일상 속에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 안에 우리는 얼마나 확립된 가치관으로 나만의 인생 퍼즐을 맞추어 가고 있는 것인지, 나의 근접한 미래의 청사진을 점검하고 되돌아 봐야 할 일이다.

습관적 사유를 통한 매 순간의 선택이 10년 후 당신의 위치를 정해주고, 당신의 인생을 정해주는 것. 때문에 끊임없는 사유를 통하여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자기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Tobias REHBERGER ‘타자’설치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현대인들은 이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며 물 흐르듯 시간에 몸을 맡기며 떠밀려 가고 있음이 안타깝다.

자기답게 산다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삶 , 자신의 가슴과 신념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삶을 말한다. 당신은 어떠한 신념을 가졌는가? 라고 물으면, 면접관 앞에서 질문에 답하듯 외워서 암기 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사유를 통한 자신의 신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고 서로의 욕망과 관계를 조절해 나가야 하는 존재이다. 때문에 흑백논리의 이분법적인 선택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더욱더 자신만의 후회 없는 결정에 가장 가깝기 위해서 올바른 선택은 중요하다. 사유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이 바로 사람답게 자기답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읽어내는 입체적 시각, 인문학적 소양을 통한 넓은 견해, 이를 방탕으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진정한 사유의 방법이다.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전시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요즘 나는 자의적인지, 타의적인지 간에 나만의 이러한 시간을 가져 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예술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예술의 대상을 온전한 사유의 시간으로 자기화 시키는 시간이 없었다. 다양한 인문학적 책을 읽으며, 나만의 가치관을 되돌아볼 여유조차 없던 요즘이었다.

전시회를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좋은 전시를 보며 감상할 틈조차 없었다. 참으로 창피한 일이다. 오랜만에 반성문 써내러 가듯 쓰고 있는 이 글이 나에겐 더 없는 바쁜 삶 속의 쉼표 같은 나만의 ‘사유의 시간’ 이었던 것 같다.

지금 당신도  잠시 시간을 내어 복잡한 현대 사회에 살면서 근면과 성실이라는 미명하에 사유의 의미와 중요성을  방기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보는 건 어떨까?

- 김연희 나무 모던 앤 컨템포러리 큐레이터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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